그노시스와 연금술 그리고 잃어버린 600년과 영적 연금술 by 연금술 이야기

Realize 2021. 2. 10. 13:32

연금술 이야기 p33

에 있는 내용으로~

당시 연금술과 관련된 시대적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어용☆

서양의 연금술은 그노시스교, 즉 기독교가 탄생하기 전에 번성하여 기독교가 발생하며 부흥하고 있는 동안에도 줄곧 번성하였던 이중철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노시스교에는 많은 종파들이 있었는데 아마 마니교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였을 것이다. 아니 악명이 높았을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종파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향을 미쳐서 그를 통하여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노시스교도들은 모두 한결같이 2개의 동일한 힘, 즉 선한 신과 사악한 조물주가 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겨루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선한 신은 인식할 수가 없는데 그는 눈물의 베일 저 너머에 존재하며 그노시스교도들에게 재난이 되는 일을 만드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사악한 조물주는 교활하게도 이 세계를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감옥으로 만들어서는 인간들을 능란하게 이 감옥 안으로 유혹하였다.

그노시스교도들에게 인간이란 전혀 자신의 실수가 아닌 실책으로 인해 어둠 속에 삼켜져버린 잘못 놓인 불꽃과 같은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지 발버둥을 쳐서 이 속세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원래 자신이 왔던 그곳, 천상으로 날아올라 가야만 하였다. 이를 위한 노력은 어렵다. 삶 속에 깃들여 있는 죽음, 무지한 자들은 살아 있다고 여기는, 이 죽음에 압도되어 인간은 잠시 동안 자신의 본성을 잊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노시스(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경험을 통하여 이를 다시 기억할 수 있다. 그노시스 경험은 인간으로 하여금 여전히 육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신의 자식으로 변화할 수 있게 한다. 이 묵시로 인해 그노시스교도들은 <식자>라 불렸다.

서양 연금술의 비밀스럽고 영적인 측면들의 대부분은 그노시스교의 생각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초기 그리스 그노시스교도에 속한 연금술사들, 멘데스의 볼로스, 조시모스, 클레오파트라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는 이름을 썼던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특히 분명해진다. 이들은 화학 작용을 그노시스교 용어로 표현하였으며 그노시스교의 교리에 화학이라는 옷을 입혀놓았다. 이들 연금술사들의 증류기 안에서는 이들이 화합물을 만들어내거나 분해하여 이들 물질에 새롭고 더욱 순수해진 생명을 불어넣을 때마다 선과 악의 힘이 싸움을 벌였다.

조시모스는 연금술에 관한 환상에서 이 그노시스를 경험하였다. 클레오파트라를 따르던 철학자중의 한 사람도 그런 경험을 하였다. <클레오파트라여, 당신은 우리에게 들려준 그 말로써 나를 매료시켰소. 은총받은 자, 그는 셋을 잉태한 자궁이로다.>

그노시스의 구세주,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혹은 위대한 헤르메스는 서양 연금술의 전설적인 창시자였다.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이 헤르메티스주의자라 불리는데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일을 <헤르메스 기술>이라 칭하였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3만6천 권의 원전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작이 에메랄드 타블렛이었다. 이 에메랄드 타블렛은 활자로 된 페이지는 한 페이지를 넘지 않았고 36장의 편지, 수수께끼 같은 표상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 표상들은 후세 연금술사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하여 주었다.

에메랄트 타블렛에 관한 어떤 것도 불명료하여 그 출처까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전설은 이러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에메랄드 타블렛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 타블렛에 페니키아 문자로 헤르메스의 무덤이라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문헌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헤브론 인근에 있던 한 동굴에서 우연히 한 타블렛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것을 캐내 보니 헤르메스의 뻣뻣해진 손가락들이 나왔다고 한다. 한 아랍인 저자, 이븐 아르파 라스(1197년 죽음)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헤르메스는 아듬의 아들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인도(경험이 아직은 일천한 현인들은 당시에 이곳으로 가야만 하였다)를 여행하다가 후에 실론(인도 남방의 섬)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대단히 귀중한 재화들이 숨겨진 동굴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이 재화 중에는 자신의 아버지 초상화도 있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보석들 사이에 특별나게 커다란 보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에메랄드 타블렛이었다.

최근에는 이 타블렛이 얻었던 최고라는 명성이 학자들 사이에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타블렛이 알려진 바대로 가장 오래된 연금술 문헌 중의 하나인가 아니면 초기 중세에 제작된 것인가는 여전히 불명료하다.(여기에 씌어진 연금술에 관한 언급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이 언제 씌어졌든 그 출처가 무엇이건 간에 에메랄드 타블렛은 연금술사들의 사도신경이 되었고 13세기 부터 내내 연금술에 관한 저작들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 타블렛은 주로 그노시스교의 신비주의와 실험 화학의 결합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은 서양 연금술을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였다.


p39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그노시스교와 기독교 사상이 지닌 공통적인 토대로 인해 그노시스교의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양쪽 모두 구원, 구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죽음과 재생이라는 용어로 갱생의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이 유사성은 그러나 거짓이다. 어떤 근본적인 상반성이 기독교 교회로 하여금 그노시스에 깊게 뿌리박혀 있던 연금술사들을 대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였다. 교회는 인간은 원죄의 결과로 원래부터 타락한 존재라고 가르쳤다. 반면에 그노시스교에서는 인간은 신성한 존재이며 일시적으로 추방되어 있는 신과 동일한 창조주로 여겼다. 연금술이 끼친 그노시스교의 영향이 종종 기독교주의 연금술사들을 이단의 경계까지 이끌어가거나 그 경계를 넘어 무례하게도 스스로 신임을 자처하게까지 하였다. 교회는 이것을 신에 대한 불경이라 보았고 이에 대해 그들의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연금술은 고대에서 직접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6~12세기 사이의 오랜 기간은 그리스 철학과 과학이 유럽에서 거의 잊혀진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은 아랍인들에 의해서 생생하게 보존되었다. 아랍인들은 636년, 그들의 예언자가 죽은 직후 이슬람의 기치 아래 엄청난 팽창기로 돌입하였다. 635년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다마스커스를 점령하였고 636년에는 예루살렘을 자신의 영지로 삼았다. 그로부터 그들은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 대부분의 소아시아 지역, 크레타, 시실리, 로데스, 사이프러스와 북아프리카로 이동해 갔다. 8세기 무렵에는 스페인까지 진출하였다. 나머지 유럽은 두려움에 싸여 이들의 행군이 마침내 832년 포이티어의 전투에서 찰스 해머에 의해 저지당하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스 학문의 아랍 전파는 아랍의 위대한 제국(알렉산드리아, 하란, 니시빈, 에데사르와 준비 사푸르)에서 이루어졌다. 아랍인들은 이들 학문을 전수받는데 특히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도(5세기 시리아의 성직자 네스토리우스가 주창한 예수에서의 신성과 인간성의 공존설을 믿었던 종교)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이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의 철학, 의학과 과학 저작들을 보존하고 있었다. 개화된 바그다드의 칼리프(무하마드의 후계자들)들은 이들 기독교학자들로 하여금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히포크라테스, 갈렌 저작들을 비롯하여 기타 많은 그리스 저작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도록 시켰다. 그리스 문헌을 번역, 소화하는 작업은 8~13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리스 학문을 가르치는 유명한 학교들이 바그다드, 다마스커스, 코르도바와 톨레도에 세워졌다. 많은 중요한 아랍 철학자들이 탄생하였는데, 이들이 서구 사상에 영향을 끼친 연구는 지금도 평가되고 있느 중이다. 가장 유명한 학자들로는 알킨디(873년 죽음), 알 파라비(950년 죽음), 아비세나(1037년 죽음)와 아베로스(1198년 죽음)가 있다.

서구 기독교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고유한 유산을 남유럽을 정복한 비기독교도인 모슬렘에게서 재발견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시실리와 스페인 일부를 정복했던 11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이 정복으로 인하여 라틴어를 사용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아랍과 헤브라이 학문에 접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장서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스페인에 진출하여 이들 필사본들을 찾아내어 번역작업에 들어갔다. 톨레도의 대주교 레이몬드(1126~1151)는 번역 대학을 세웠는데 이곳에서 최초의 연금술 문헌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연금술의 성분에 관한 책>이었다. 저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한데, 모리누스라는 이름의 기독교 수도자라는 설이 있다. 그는 연금술의 비밀을 아랍의 왕자 칼리드 이븐 야지드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라틴어본은 체스터(영국 체셔주의 수도)의 로버트(그는 최초로 코란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던 인물이다)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 번역본은 1144년 2월 11일에 완성되었다.(이에 대해 <연금술의 성서>를 편집한 스트라벤하겐은 이 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후에 이 책의 번역자를 체스터의 로버트 이름으로 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모리누스는 고대 연금술사와 예루살렘의 은자에 대한 비밀을 칼리드 이븐 야지드에게 누설한다)

대부분의 경우 서구인들이 모어인에게서 재발견한 고전 학문들에서도 아랍 영향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것은 연금술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연금술에 관련된 많은 영어식 용어들은 아랍어를 그저 음역해 놓은 것이다. 이 용어들은 처음에는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전화되었다가 다시 영어화되었다.

서구 연금술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아랍출신 저자는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 또는 722년에 태어남)이었다. 자비르(라틴어 이름으로 게버라 칭하기도 한다)의 저서로 알려진 연금술 저작들은 실제로는 9~10세기에 살면서, 이스마일리 신비주의자 그룹중의 하나였던 시트파에 소속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씌어진 것이었다. 그노시스교의 연금술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실험 화학과 신비적인 교리를 결합시켜 놓았다. 자비르 저작이 연금술 이론에 가져다준 중요한 업적은 유황/수은 이론으로 이 이론은 이때 처음 서구 연금술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곧 서구 연금술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자비르는 <균형의 방법>이라 알려진 다른 이론들도 개발하였다. 비록 이 이론의 자세한 모든 내용이 서구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이론은 연금술사들이 곳곳에서 수를 가지고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자비르의 <방법> 이론이 추구한 바는 연금술을 수와 측량의 바탕 위에 새로이 세우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목적이었다. 그러나 자비르가 설명하는 이론의 근거는 우리와 달랐다. 수와 수 사이의 관계를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갖가지 상상에 의존해야 한다.

자비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받아들여 물체는 4가지 성질과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물체에 각각의 원소가 얼마나 들어 있는가를 수학적으로 정확히 결정하면, 물체의 정확한 구성을 밝힐 수 있다고 믿었다.


p45

자비르는 또한 아랍의 알파벳 문자와 4원소 혹은 4가지 성질 사이에서 어떤 연관을 끌어내었다. 그는 아랍어로 납을 뜻하는 usrub이라는 단어를 분석하면 납의 질적, 양적 성질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가정의 배경에는 전형적인 연금술적 세계관이 놓여 있었다. 즉, 연금술사들은 단어와 기호들로 그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사물을 여느 방법보다도 사실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납을 뜻하는 또 다른 아랍어 rasas를 본석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이 자비르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에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회의하게끔 한 것 같지는 않다.


p47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스토아 학파 효모가 약간 가미되고, 후에 그노시스교의 신비주의가 섞이고 다시 아랍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생각에 의해 걸러진 이론이 서구 연금술 이론이다. 유럽인들이 연금술 연구를 시작할 무렵에는 연금술이 이미 위풍당당한 과거를 지닌 확고한 교리로 존재하고 있었다. 연금술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은 고대 과학의 일부였다. 이 이론은 또한 사물이 자연에서, 실험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실용적이면서 그럴 듯하게 설명해 주었다.


p126

연금술은 처음 탄생부터 철학과 종교와 연관을 맺고 있었다. 페트루스 보누스는 이 기술의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한 많은 연금술사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연금술은 인간의 물질적인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정신적인 안녕을 위해 신이 계시해 준 것이라고 하였다.

연금술사들에게 모세, 다니엘, 솔로몬, 그외 몇몇 예언자들 그리고 복음 전도자인 세례 요한이 연금술에 관해 알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들에게는 하느님 자신이 직접 이 비법을 전해 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 성인들은 금이나 은을 얻을 목적으로 이 기술을 즐겨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의 아름다움, 물질의 영혼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통찰력 때문에 연금술에 매달렸던 것이다.

모든 연금술사들이 페트루스 보누스처럼 영혼의 고속도로를 질주해 간 것은 아니었다. 실험실에 매달려 일하던 연금술사들 다수는 주로 실용적인 물질을 발견하는 일에 관계하였는데, 이 일은 결국 채광, 야금술, 도기 제조나 기타 수공예, 제조 기술의 향상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이 연금술사들이 행한 발견은 근대화학 발전에 초석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금술사들은 영적인 문제들에 점차로 매달려 연금술의 실용적인 측면은 장인이나 기술공의 손에 맡겨두게 되었다.

중세 연금술은 초기에 합리적이고 실험에 경도되어 있던 기술이었는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런 연금술이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경우, 중세 연금술사들은 그리스나 이집트 그리고 아랍에서 유래된 이론들로부터 자신들이 재발견한 이론을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스콜라주의적인 합리주의 언어로 표현해 놓아서, 이 이론들은 신비스러운 장식 등으로 윤색되어 있지도 않다. 게바는 중세식 표현을 잘 드러내주는 예이다.(이상스러우리만치 예외적으로 게버 이름으로 발간된 라틴 저서들은 자비르의 아랍어로 된 논사의 논문을 번역해 놓은 것이 아니라 13세기 후반에 살았던 한 스페인 연금술사의 논문을 번역해 놓은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대부분 동의한다) 그는 탐구하는 정신, 체계적인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화학적인 반응을 일관되고 정확한 방식으로 묘사해 두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오면서 그의 실용적인 접근방식은 시대에 뒤진 것이 되어버렸다.

많은 경우, 연금술사들은 실험실 밖으로 나가 수도사의 방으로 들어가버리거나 철학자의 방으로 옮겨갔다. "우리의 금은 일반적인 금이 아니다"라고 <철학자의 묵주> 저자는 쓰고 있는데, 이 저자 역시 정신주의에 몰두해 있었다. 연금술사들은 심상이나 상징주의만이 그들로 하여금 연금로와 불을 계속 다루게 하였다. 야콥 뵈메(1575~1624)가 순수하게 정신적인 목적으로 연금술 용어들을 사용한 신비주의자의 한 예가 된다. 그의 제자였던 영국인 윌리엄 로는 이로 인해 그의 저서르 읽는 독자들이 일으키는 혼동을 이렇게 묘사해 두었다. "그의 저서가 영어로 처음 발간되었을 때 많은 영국 사람들, 특히 대단히 재치 있고 능력 있는 이들이 그의 독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저서의 원래의 유일한 구상, 즉 땅의 생명으로부터 하늘의 생명체로 그들 스스로 재생하는 구상을 파악하는 대신에 화학자가 되어서 금속을 재생시키려고 연금로를 갖추어 현자의 돌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깊이 있게, 실로 저 밑바닥에서부터 끝내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끝없는 노동이나 일종의 침묵을 지키며 불을 사용하더라도 성공의 가능성이라고는 일말도 보이지 않는 연금술에 자신을 맡기려 들지 않는다.>

서구에서 전해지는 영적인 연금술의 절정기는 16~17세기인데, 이는 르네상스기에 일어난 종교적인 권위와 사회적 조직체계의 붕괴와 일치하고 있다. 영적인 영금술은 수많은 사상이 부딪치는 망망한 논쟁의 바다를 떠가고 있던 시대에 종교적인 요구를 채워주고 있었다. 파라켈수스는 루터와 교황이 서로 순결을 주장하는 두 매춘부에 비유함으로써 당시의 종교적인 환멸을 표현하고 있다. 종교상의 논쟁은 많은 이들을 교회로부터 과학으로 눈을 돌리게 하였는데, 교회는 이전에 그들이 안락과 안전을 느끼던 곳이었다. 연금술은 영적인 지침이 찢겨 없어져버린 이들이 새롭게 고안해 놓은 구원이라는 괴상한 기획을 담은 이상적인 틀을 제공했다.

서구에서나 동양에서나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오로라 콘주르켄스(연금술에 나오는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다루어놓은 문헌)>의 저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연금술사들은 건강하고, 겸허하며, 경건하고 순결하고 덕이 있으며, 신뢰성도 지니고, 희망에 차 있고, 자비로우며, 선하고, 인내심이 있어 삼갈 줄도 알고, 이해심도 깊으면서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게버는 자신의 저서 <완전성의 총체>에서 한 장을 할애하여 "연금술사 정신 일부에서 유래하는 장애들에" 관해서 서술해 두었다. 페트루느 보누스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연금술 집단에 들어오기 전에 자신들의 마음과 정신을 먼저 들여다볼 것을 충고하고 있다. 그들이 도덕적인 자질을 갖추기 않은 이상, 그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고. <당신이 정말로 가치 있고, 인내의 정신과 인내할 힘을 함께 지니고 있다면, 밤이고 낮이고 열심히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신의 영도 아래 자신을 둘 자신이 있다면, 신이 부여한 때에 당신이 갈구하는 지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엘리아스 아시몰의 중요한 문구를 빌리자면, 오직 이러한 사람만이 <선택된 연금술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금술사의 선택이라는 생각은 쉽게 신의 선택이라는 관념에 합치되어 버렸다. 연금술 지식에 관한 캘빈주의 연금술사 윌리엄 브롬필드의 문구에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즉, "이것은 신으로부터 온다. 신으 선택된 몇몇에게는 이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이것을 부정하도록 한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연금술은 묵시에 의존하고 있다. 연금술사가 자신을 옳은 길로 인도할,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는 한, 숱한 자신의 노동은 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만일 현명한 스승의 조언도 얻기 전에 중요한 신의 방법을 발견한다 해도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중국의 갈홍은 서술하고 있다. 갈홍 자신의 스승과의 결연(연금술에서는 이것을 양자를 입양한다는 의미의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은 서약을 암송하고 자신의 피로써 이 서약에 날인하던 제단 앞에서 이루어졌다. 토머스 노턴은 스승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시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신이 그에게 자신을 지도해 줄 거장을 보내주지 않는 한 이 과학에 도달할 수는 없다.


p137

기독교도이자 연금술사였던 이들은 물질에 관한 3원리, 즉 유황 수은 소금의 원리를 삼위일체론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다. "오, 물질의 통일이여. 그리고 하느님의 삼위일체여"를 서두로 리플리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연금술의 화합물"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당신이 혼돈에서 일체를 만드셨던 것처럼 제게도 한 물질로 된 우리의 미시우주를 마그네슘과 유황, 수은의 세 모습으로 변성시킬 수 있는 기술을 지니게 해주소서." <바실 벨렌틴의 유언(1671)>에서는 "거룩한 삼위일체와 현자의 돌 사이에 존재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제목이 붙은 장을 볼 수 있다. 램스프링은 삼위일체적인 측면들, 화학에서의 소금, 유황, 수은과 철학의 육체, 영혼, 정신 그리고 성자와 성신, 성부의 측면들로 현자의 돌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18세기 초에 씌어진 <삼위일체에 관한 서>에는 기독교의 상징과 연금술 사이에 보여지는 또 다른 일치점이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는 금속의 변성이란 불의 도움으로 금속이 그들의 원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불이 물질을 정화하고 변성한다는 생각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종교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교훈이다.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 역시 트리프톨레무스(데메테르가 총애하던 소년으로 데메테르에 의해 인간에게 농업을 가르치도록 보내졌다고 함)를 불 속에 넣고 정련시켜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는데, 이 일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히스테릭한 성격을 지닌 소년의 어머니는 불행히도 여신이 작업을 막 끝내려고 할 때 방해를 놓았다. 구약성경에는 신의 노여움을 "정제자의 불"(말라기3:2~3)로 묘사해 놓았고, 인간은 "용광로 속에 있는 금처럼 시련을 겪는다"(솔로몬의 지혜 3:6)라고 씌어 있다. 아빌라의 성 테레사(1512~1582. 카르멜파 교구를 개혁하고 17개의 수도회를 창설하였다는 스페인 전설의 인물. 그의 저서로 영적인 자서전과 완전으로 가는길이 유명하다)는 자신의 자서전에 당시로서는 이미 다 낡아빠진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이런 표현을 써서 자신의 종교적인 경험을 묘사해 두었다. "나의 영혼은 나로 하여금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하는 영민함과 순수함을 지닌 채 금처럼 호된 시련의 도가니로부터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연금술에서는 검은색 단계(흑화)를 <영혼의 검은 밤>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혼이 불에 의해 모진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의 원죄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순수하게 태어나는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을 하느님에 비유하곤 하였다. <영광의 세계>의 저자는 현자의 돌은 "지상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원형"이라 부르고 있다. <현자의 돌>의 저자는 똑같은 돌을 더 장황하게 표현해 두었다. "지상에 존재하는 현자의 돌은 참으로 정신적인 천상의 돌, 예수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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