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욕을 먹어야 해!?

Realize 2024. 4. 13. 23:17

 

 

 

 

열심히...

노력했어...!

노력했다고!!!!

 

왜 욕을 먹어야 해!?

 

당연히 필사적이지!!

진심으로 꿈을 이루고 싶으니까!!

 

노력은 안 하면 안 한대로

의욕이 없다느니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뭐냐고 진짜!!

 

너네한테 막을 권리가 있냐고!!

뭐!? 안 막았어? 막았다고!

자기도 모르게 막고 있었다고!!

너네들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조그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의 가능성을 빼앗고 있다고!!!

 

단지 그것만으로... 왜...

내가 꿈을 빼앗겨야...

하는 건데...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싫어... 다들 싫어... 다 싫어...

......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제일 싫어...

 

...응

그렇지 정말...

남 눈치 보며 살기 힘들지...

 

 

- 마법소녀 삼십대 19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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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신과 헤스티아 여신 숭배 by 임영근의 철학산책

Realize 2024. 4. 13. 13:16

 

 

6편: 조상신과 헤스티아 여신 숭배 - [재단법인 바람]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 임영근의 철학산책: 6편 조상신과 헤스티아 여신 숭배 세계를 변화와 운동으로 파악하려고 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영원히 계속되는 이 세계의 이미지를 불로 표현하였다. 이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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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신과 헤스티아 여신 숭배

 

세계를 변화와 운동으로 파악하려고 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영원히 계속되는 이 세계의 이미지를 불로 표현하였다.

 

이 세계는, 모두에게 동일한데, 어떤 신이나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어 왔고 있고 있을 것이며, 영원히 살아 있는 불로서 적절히 타고 적절한 만큼 꺼진다.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30」, 김인곤 등 옮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사물들이 대립과 모순의 긴장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운동하는 이 조상신과 세계의 역동적 모습을 표현하는 데 “영원히 살아 있는 불”만큼 잘 들어맞는 이미지도 없다. 이렇게 거창한 의미까지는 아니겠지만, 불이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일깨운다는 점에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렸을 적 불장난의 추억 하나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캠핑 열풍에 불놀이의 즐거움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통제된 불만 사용하는 일상생활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진짜 불을 피우는 즐거움을 맛 본 사람에게는 쉽게 떨칠 수 없는 매혹으로 남게 된다. 그 무거운 화로대가 이제는 캠퍼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불에서 느끼는 우리의 정서, 너무나 친숙하지만 이제는 거의 잊혀진 정서를 표현한 백석의 시가 있다. 바로 「모닥불」이다.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닢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갓신창: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또는 가죽으로 만든 신의 창. 개니빠디: 개의 이빨. 너울쪽: 널판지 쪽. 닭의짗: 닭의 깃털. 개터럭: 개의 털. 재당: 재종, 육촌. 문장: 한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 갓사돈: 새 사돈. 몽둥발이: 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

 

고대 희랍에서 철학이 탄생한 것을 두고 많은 서양인들이 경이로운 일로 받아들이며, 어떻게 그 시대에 그러한 사유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 탐구해 왔다. 기하학의 발달과 함께 나타난 과학적 사유, 무역과 화폐제도 같은 경제활동에서 생겨나게 된 추상적 사유 따위를 드는 학자들도 있고, 광장 문화를 낳은 정치 사회 조건에서 그 기원을 찾는 학자들도 있다. 여기에 더해 종교적 사유에 대한 비판적 작업에서 철학적 사유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도 있다. 뻔한 말이겠지만, 이러한 여러 요소들의 작용으로 고대 희랍의 철학이 독특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대사회의 역사 전체를 종교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것도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조상신 숭배를 중심으로 희랍과 로마의 역사 발전 과정을 해석한 것이어서 더더구나 흥미 롭다. 19세기 유럽의 역사학자 퓌스텔 드 쿨랑주가 쓴 『고대 도시』다.

 

쿨랑주는 “조상을 숭배의 대상으로 그리고 불을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삼고 있는” 가족 종교가 고대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불을 상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희랍인들이 집안의 중심에 놓여 있던 화덕hestia의 불을 수호신으로 삼은 것을 말한다. 호메로스 시대보다 훨씬 이전, 까마득히 먼 구석기, 신석기 시대부터 내려온 가족 종교에서 희랍의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가설이다. 희랍, 로마, 인도의 아리아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함께 살던 시대부터 지니고 있던 원초적 신앙, 조상숭배에서 최초의 종교가 생겨났다고 본 것이다. “영혼이 자신의 두 번째 삶을 지내게 될 곳은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아니었다. 영혼은 사람들 가까이 머무르며, 땅 밑에서 계속 살아갔다.” 영혼은 육체와 함께 태어났고 죽음도 이 둘을 갈라놓을 수 없었다. 영혼은 육체와 함께 무덤 속에 갇혀 있다. 이러한 신앙은 매장 의식 속에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자신의 무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영혼에게는 집이 없었다.” 죽은 자의 안식을 위해서 죽은 자는 반드시 매장해야만 했다.

 

희랍인들에게 매장 의식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이었는지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오이디푸스가 파멸적 비극을 맞고 테바이를 떠나 떠돌다 죽은 뒤의 이야기다. 오이디푸스의 아들 폴뤼네이케스는 아버지가 지배하던 도시인 테바이를 정복하기 위해 아르고스 군을 이끌고 테바이 성을 공격한다. 테바이 성을 지키는 장수는 오이디푸스의 또 다른 아들 에테오클레스. 두 형제는 “서로 치고 맞는 가운데/ 서로 형제의 피로 물든 채, 이중의 운명에 의하여/ 같은 날 죽고” 말았다. 이제 두 형제의 외삼촌인 크레온이 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일어난다. 크레온이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포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에테오클레스는 우리 도시를 위하여 싸우다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창수로서 전사하였으니,/ 그를 무덤에 묻어주고 지하의 훌륭한/ 사자死者들에게 어울리는 온갖 의식을 베풀 것이오. ”또 다른 형제 폴뤼네이케스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내려진다. “아무도 그에게 장례를 베풀거나 애도하지 말고,/ 새 떼와 개 떼의 밥이 되고 치욕스런 광경이 되도록/ 그의 시신을 묻히지 않은 채 내버려두라.”

 

이런 포고를 들은 오이디푸스의 두 딸은 너무도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시민들이 돌로 쳐서 죽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오빠를 매장하겠다는 안티고네에 대해 이스메네는 아버지 어머니 두 오라버니의 슬픈 운명을 되새기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리 두 자매”도 왕의 명령에 맞서다가는 비참하게 죽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강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만큼,/ 이번 일들과 더 쓰라린 일에 있어서도 복종해야 해요.”

 

목숨을 걸고 오빠의 시신을 매장한 안티고네는 결국 크레온(안티고네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의 오라비) 앞으로 끌려온다. 어떻게 감히 법을 어길 수 있느냐는 크레온의 추궁에 안티고네는 답한다. “그대의 명령이, 신들의 확고부동한 불문율들을/ 죽게 마련인 한낱 인간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죽은 자를 매장하는 것은 신들의 불문율이고 크레온의 명령이 신의 불문율보다 강하지 않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불문율들은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한 인간(크레온)의 의지가 두려워서 불문율을 어김으로써 신들의 벌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당당히 밝힌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말처럼 “제단들과 화덕들이 모조리/ 새 떼와 개 떼가 불행하게 전사한 오이디푸스의 아들에게서/ 뜯어낸 먹이에 의해 더렵혀졌기 때문에” 신의 불문율을 어긴 통치자에게 닥칠 재앙을 피할 길 없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 이어서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리디케까지 비참한 파멸이 닥친다.

 

 

헤스티아 여신과 가족 종교

 

조상신 숭배는 인류 보편의 문화일 텐데, 희랍의 경우는 조상신 숭배가 집안으로 들어와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서 독특해 보인다. 헤스티아 여신(로마에서는 베스타 여신) 숭배, 제단 역할을 하는 화덕 중심의 조상신 숭배가 그것이다. 집 안에 놓여 있던 제단의 불은 꺼뜨리지 않고 계속 타올라야 했다. “꺼진 불과 꺼진 가족이라는 말은 고대인들에게 같은 말이었다.”

 

이렇게 신성한 불은 백석의 불과는 사뭇 달랐다. “너울쪽도 짚검불도” 타는 불이 아니었다. 불을 피우는 데 아무 나무나 사용할 수 없었고, 신성한 나무만 태울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강아지는 물론 “새사위도 갓사둔도” 제단 주위에 설 수 없었다. 외부인은 철저히 배제되고 가족들만 참여하는 의식이 행해졌다. 집안의 가장이 제단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을 주관하는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의 지위는 남자에서 남자에게로만 전해졌다. 여자들은 숭배 의식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취급받았다. “딸로서 여자는 아버지의 종교행위에 참여하였으며, 결혼한 후에는 남편의 종교행위에 참여하였다.” 그러므로 결혼 의식도 집안의 화덕 주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방인인 신부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랑 가족의 조상신인 화덕의 신이 허락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상신 숭배에는 각 가정이 안녕과 질서를 이루고 자손들이 번성과 행복을 누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헤스티아 여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희랍의 가족 종교는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서도 그런 기본 정신을 잃지 않았다. 가족oikos에서 씨족phratria, 부족phyle, 도시국가polis로 확대되면서도 기본 정신이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희랍 인들은 가족신을 theoi patrooi, 씨족신을 theoi phratrioi, 부족신을 theoi phyloi, 그리고 국가의 신전을 hestia koine, 즉 공공의 화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희랍인들의 사고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고, 공동체의 규모가 확대되어도 그것은 가족의 동심원적 확대에 지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고대 희랍의 종교에는 조상신 숭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쿨랑주는 가족 종교만이 아니라 자연 종교도 말한다. 이 또한 조상신 숭배만큼이나 뿌리 깊은 종교였다. 고대 희랍인들은 물리적 자연에서도 신의 모습을 보았다. 땅, 나무, 구름, 강물, 태양 같은 자연물에서 자기를 닮은 존재를 보았고 그들을 신으로 만든 것이다. 제우스, 헤라, 아테네 같은 신들로 후에 올림포스의 신으로 발전하게 된다. 올림포스 신을 모시는 의식은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기원하기 위해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공적 의식이었다.

 

이렇듯, 고대 희랍인들은 가족 단위의 헤스티아 숭배, 국가 단위의 올림피아 의식이라는 이중의 종교 생활을 영위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적으로 사적·공적 종교 의식에 참여한 희랍인들은 개인적 차원의 행위가 정치적 차원의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일찍부터 자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희랍의 철학이 폴리스와 시민의 관계를 유기적 관계로 바라보면서 폴리스의 정의와 이상적인 정치 제도를 모색하는 데 몰두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신성한 불

 

희랍의 ‘신성한 불’의 전통이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올림픽경기 때의 ‘성화’일 것이다. 올해는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므로 지금도 지구촌 어디에선가는 누군가가 열심히 성화를 나르고 있을 것이다.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올 즈음에는 성화를 나르는 마지막 주자는 누구인지, 성화대에 불을 붙일 사람은 또 누구인지 추측하는 기사가 쏟아지곤 한다. 또한 주경기장 성화대의 디자인이 어떻고, 거기에 과연 어떤 방법으로 불을 붙일지 하는 기사로 흥미를 끌려고도 한다. 성화에 불이 붙을 때에는 아나운서가 과장된 목소리로 “열전 십오 일의 열기를 달굴 성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며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경기를 중계하는 사이사이 성화가 타오르는 모습도 비춰 줄 테고.

 

하지만 성화를 보면서 ‘신성한 불’이라고 느낄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성화봉의 불을 볼 때마다, 불이 붙어 있나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꺼지지 않을 정도로 겨우 ‘불’맥을 유지하고 있다고나 할까?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맛을 도무지 느낄 수 없다. 성화를 나르는 주자의 안전 문제도 있을 것이고 절대 꺼지지 않도록 기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리라. 성화대의 불도 활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로 보인다. 중계 화면에 비친 성화는 창백한 느낌이 들 때마저 있다. 이 또한 꺼지지 않는 게 사명인 불. 성화聖火는 더 이상 성스럽지도 않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역동성도 백석의 따뜻함도 전하지 못하는 불인 것 같다.

 

 

♠참고도서

퓌스텔 드 쿨랑주, 김응종 옮김, 『고대 도시』, 아카넷.

김인곤 등 옮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소포클레스·아이스퀼로스, 천병희 옮김,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외』, 문예출판사.

박희영, 「제1장 그리스 철학의 탄생」, 박희영 외 지음, 『서양고대철학 1』, 도서출판 길.

 

♠ 임영근 연구원의 <철학산책>은 월간 『좌파』 <서양철학 산책>으로 연재되어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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