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왕후귀족과 연금술

Realize 2021. 1. 30. 17:25

도해 연금술 p110

No.051 왕후귀족과 연금술

지출이 많은 왕후귀족들 중에는 연금술에 열중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훌륭한 연금술사를 고용하여 황금변성에 도전시켰다.

● 연금술사를 원조한 군주들

유럽의 군주들 중에는 황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연금술에 흥미를 가지고 연금술사를 원조하거나 스스로 연금술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옛날에는 14세기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가 연금술의 대가 라이문두스 룰루스를 초대하여 십자군 원정을 위한 자금을 연금술로 만들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16~17세기에는 군주들 사이에는 연금술 붐이 일었다. 특히 유명한 사람은 신성 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다. 그는 오컬트학에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유명한 연금술사, 마술사, 점성술사를 우대했다. 그 중에는 미카엘 센디보기우스와 에드워드 켈리도 있었다. 루돌프 2세와 마찬가지로 그의 후계자들도 연금술사를 보호했다. 페르디난트 3세의 시대에는 JP 호프만과 리히트하우젠이라는 연금술사가 황금변성을 성공시켜, 리히트하우젠은 귀족에게 발탁되었다. 다음은 레오폴드 1세는 동으로 된 그릇을 금으로 바꾼 연금술사 웬첼 자일러에게 귀족 작위를 하사했다.

덴마크의 왕가도 연금술사에게 호의적이었다. 크리스티안 4세는 연금술사 카스파 하바크를 고용하여 그가 변성한 금을 금화로 만들었다. 또한 프리드리히 4세는 도메니코 마누엘 체타노라는 연금술사에게 황금변성을 의뢰했다. 하지만 체타노는 왕으로부터의 출자금을 가지고 도주했기 때문에 후에 처형당했다고 한다.

왕비와 귀족의 부인들 중에도 연금술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루돌프 2세와 같은 시대, 작센 선제후의 부인 덴마크의 앤은 성내에 아주 개인적이고 훌륭한 실험실을 소유하고 있었다.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도 연금술에 열중했었다. 그녀는 바스티유 형무소의 죄수였던 연금술사 가이 드 크루센부르크에게 현자의 돌 조합용으로서 2만 크라운이라는 큰돈을 지불했지만 그는 그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다.

No.052 루돌프 2세

유명한 연금술사, 마술사, 점성술사를 우대하고 프라하를 마술의 중심지로 만든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는 그 자신이 연금술사라는 말을 들었다.

● 유럽의 마술계를 리드한 황제

연금술에 열중한 수많은 왕후귀족 중에서도 신성 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1552~1612)는 특별했다. 그는 기인으로서 유명했으며 각종 예술과 과학, 나아가서는 오컬트학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양한 예술 작품, 보석류, 진품류를 유럽 각국에서 수집했다. 그리고 유명한 연금술사, 마술사, 점성술사를 잇달아 초대했다. 이 결과 그의 궁정이 있는 프라하는 당시 유럽에서 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루돌프 2세는 신앙의 자유를 보증했기 때문에 당시 반종교 개혁으로 탄압 당했던 프로테스탄트 과학자, 예술가도 많이 찾아왔다. 그 중에는 케플러의 법칙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케플러도 있었다. 특히 16세기 말경부터 그는 정치에 대해 관심을 잃고 성에 틀어박혀서 연금술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의 궁정에서는 어느 나라의 연금술사도 환영 받았다. 궁정을 찾아온 연금술사들은 먼저 황제의 의사이며 연금술의 달인이었던 새디어스 폰 하이엑이 면접을 하고 능력을 인정하면 알현이 허락되었다. 이렇게 해서 루돌프 2세를 알현한 연금술사로 미카엘 센디보기우스와 에드워드 켈리가 있었다. 센디보기우스는 그곳에서 황금변성을 성공시키고 황제의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즉 그런 대로 결과를 보이면 충분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반대로 사기라는 것이 발각된 연금술사들은 가차 없이 감옥에 갇혔다. 프라하에는 그런 이유로 백탑이라는 특별한 감옥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인물이기 때문에 루돌프 2세 자신이 연금술사이며 현자의 돌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졌다. 황제가 죽은 뒤, 그 실험실에서 작은 벽돌 모양으로 주조된 대량의 금과 은, 그리고 회색 분말이 발견되었는데 사람들은 당연하게 그 분말이 현자의 돌이고 대량의 금은 현자의 돌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No.053 페르디난트 3세

연금술에 매력을 느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제국이 위기 상황에 빠져서도 이룰 수 없는 꿈을 쫓고 있었다.

● 고난 속에서도 연금술에 열주한 황제

페르디난트 3세(1608~1657, 재위1637~1657)는 제국령을 무대로 한 30년 전쟁(1618~1648)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분주했던 신성 로마제국 황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에는 전승국인 프랑스와 스웨덴에 제국령의 일부분을 양도해 버리는 형태로 신성 로마제국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페르디난트 3세는 연금술에 적극적으로 몰두했다. 30년 전쟁 종결 직전인 1647년, JP 호프만이라는 연금술사가 뉘른베르크에서 황제의 앞에서 황금변성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으로 황제는 이 연금술로 만든 금으로 아름다운 메달을 만들었다고 한다.

1648년 1월에는 프라하에서 연금술사 리히트하우젠이 황금변성을 시도했다. 페르디난트 3세는 그 자신이 연금술사였다고도 알려진 인물로 연금술사의 속임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험에는 자신 이외에 광산 감독관인 룻츠 백작을 입회시켜서 사기 행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의 준비를 했다. 그래도 황금변성은 성공하여 현자의 돌의 분말 1그레인으로 2.5파운드의 수은이 금으로 변했다고 한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이것을 기념하여 메달을 주조했다. 그 표면에는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손에 든 태양신 아폴로의 전신상과 라틴어의 문구가 새겨졌다. 그 문구는 "페르디난트 3세의 앞에서 1648년 1월 15일 프라하에서 신성한 변화가 일어났다"라는 내용이었다. 1650년에 황제는 리히트하우젠의 분말로 이번에는 스스로 금속 변성에 도전해서 역시 성공했다. 그리고 리히트하우젠의 공적을 인정하고 귀족으로 세웠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그런지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 레오폴드 1세도 연금술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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