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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의 신 아브라삭스 글모음
영지주의의 신 아브라삭스 글 모음이에용~☆
초유명한 주문 "아브라카타브라"와 관련있는 그노시스파의 신 아브라삭스!
여담인데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는 아브라카타브라가 아닌 "아브라하타브라"로 고쳐서 썼죰ㅎ
즉 Abracadabra를 Abrahadabra가 맞다고 본거죵.....
연초부터 임시저장되어 묵혀지고 있는 아브라하타브라 글도 언렁 임시저장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네요.
암튼 아브라삭스가 무엇인지 대충 한번 보세용★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B8%8C%EB%9D%BC%EC%82%AD%EC%8A%A4
1. 위키백과의 아브라삭스
아브라삭스(ΑΒΡΑΣΑΞ · Abrasax)는 기원후 2세기의 나스티시즘 교부였던 바실리데스의 철학 체계에서 사용된 낱말로 신비적인 의미를 띄는 낱말이다. 아브라삭스는 때로는 아브락사스(ΑΒΡΑΞΑΣ · Abraxas)라고도 한다. 이들 중 전자의 낱말이 후자보다 훨씬 더 자주 사용되었다. 바실리데스의 나스티시즘 철학 체계에서, 아브라삭스는 365 영역들의 수장인 대아르콘(Great Archon)이다.[1]
아브라삭스(ΑΒΡΑΣΑΞ)는 일곱 그리스어 문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일곱 문자들은 나스틱파의 우주론에서 서양의 고대의 일곱 행성인 태양 · 달 · 수성 · 금성 · 화성 · 목성 · 토성을 의미한다.[2] 아브라삭스라는 낱말은 《불가시의 위대한 스피릿의 신성한 책》과 같은 나스티시즘 문헌에서 발견된다. 또한 《그리스 마법 파피루스》에서도 나타난다.
아브라삭스라는 낱말이 고대의 보석들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보석들을 아브라삭스 보석(Abrasax stones)이라 한다. 아브라삭스 보석은 호신부나 액막이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아브라삭스 보석들에 새겨진 초기 문자들이 아브라삭스(ΑΒΡΑΣΑΞ)였기 때문에, 아브락사스(ΑΒΡΑΞΑΣ)라는 낱말은 후대에 그리스어 낱말을 라틴어로 음역할 때 그리스어 문자 시그마(Σ)와 크시(Ξ) 사이에 혼동이 생겨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아브라삭스라는 낱말은 마법사의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견해도 있다.
바실리데스의 교의, 고대 나스티시즘 문헌들, 그리스 · 로마의 마법 전통들, 현대의 마법 및 밀교 저작들에서 보이는 아브라삭스에 대한 견해는 어떤 점에서는 서로 간에 유사하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는 전혀 다르기도 하다. 아브라삭스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이다. 최근 수 세기 동안에 아브라삭스는 이집트 신화의 신들 중의 하나이며 또한 악마들 중의 하나라고 주장되었다.[3]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칼 융은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이라는 짧은 나스티시즘적인 글을 썼다. 여기에서 칼 융은 모든 대립물이 한 존재 안에 결합된 신이 아브라삭스이며, 아브라삭스는 기독교의 신과 사탄의 개념보다 더 고차적인 개념의 신이라고 하였다.
https://cafe.naver.com/purifymoon/2671
원천 자료
바실리데스의 교의에 대한 원천 자료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이 저술한 자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바실리데스의 교의에 대한 1차적이고 직접적인 지식을 가진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바실리데스의 나스티시즘 체계에서 아브라삭스의 실제 역할과 기능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비록 부족하기는 하나 이 원천 자료들에 의거하여 아브라삭스의 역할과 기능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의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아르콘으로서의 아브라삭스: 아르콘은 지배자 또는 통치자를 의미하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아브라삭스는 최고신(God)이 만든 영적 세상, 즉, 365 하늘들의 최고 지배자인데 365 하늘들 중에서 마지막 365번째 하늘이 물질 세상이다. 하지만 아브라삭스가 최고신인 것은 아니며, 최고신의 최고 대리 통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삭스는 하위신(god)이다.
최고신으로서의 아브라삭스: 이 견해에 따르면 아브라삭스는 최고신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온으로서의 아브라삭스: 이 견해에 따르면 아브라삭스는 빛의 세계인 플레로마의 최외각부로 물질 세상과 접하고 있는 엘레레트(Eleleth)라는 빛의 영역에 거주하는 한 아이온(Aeon)이다. 즉, 최고신의 여러 발출물들 중의 하나이다.
대아르콘으로서의 아브라삭스
이레나이우스(2세기)가 기술하고 있는 나스티시즘 체계에서 아브라삭스는 다음과 같이 대아르콘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불생의 아버지(Unbegotten Father)가 누스(마음)가 나오는 근원자이다. 누스로부터 로고스(말씀)가 나오고, 로고스로부터 프로네시스(지성)가 나오고, 프로네시스로부터 소피아(지혜)와 듀나미스(힘 · 권능)가 나오고, 소피아와 듀나미스로부터 프린스팰러티들(주품천사?)과 파워들(역품천사?)과 천사들이 나온다. 이들 중 가장 마지막 존재들이 첫 번째 하늘을 창조한다. 그런 후 다시 이들은 두 번째의 일련의 존재들을 낳고 이 두 번째의 존재들은 두 번째 하늘을 창조한다. 이런 과정이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되어 마침내 365 하늘들이 현재 존재한다. 마지막 365번째 하늘, 즉 인간의 육안에 보이는 하늘의 천사들이 인간이 살고 있는 물질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365 하늘들의 지배자가 아브라삭스이다. 이 때문에 아브라삭스는 365 숫자들을 그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다.
아브라삭스라는 이름은 로마의 히폴리토스(170?~236?)의 저서 《모든 이단적 교설의 논파》(vii. 26)에도 나온다. 이 저서에 나오는 바실리데스(2세기) 관련 내용은 바실리데스가 저술하였지만 현존하지는 않는 문헌인 《해석(Exegetica)》의 내용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히폴리토스는 복음(Gospel · 말씀)이 여덟 아르콘들인 오그도아드(Ogdoad)와 일곱 아르콘들인 헵도마드(Hebdomad)로 현현한다는 내용을 기술한 다음에, 덧불이는 말로 바실리데스주의자들이 상위 세상의 여러 층 또는 사이 공간들에 존재하는 수많은 창조물들과 파워들에 대해 긴 설명을 하고 있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히폴리토스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다루는 중에 바실리데스주의자들은 365 하늘들에 대해 말하고 아브라삭스가 바로 이 365 하늘들의 최고 지배자로서의 대아르콘이라고 말한다. 바실리데스주의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아브라삭스라는 이름에는 숫자 365, 즉 1년의 날들의 총 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어 낱말 아브라삭스(ΑΒΡΑΣΑΞ)의 모든 문자들의 숫자값을 더하면 365가 되기 때문이다.
ΑΒΡΑΣΑΞ(아브라삭스)
= Α (알파) + Β (베타) + Ρ (로) + Α (알파) + Σ (시그마) + Α (알파) + Ξ (크시)
= 1 + 2 + 100 + 1 + 200 + 1 + 60
= 365
최고신으로서의 아브라삭스
에피파니우스(310/320?~403)의《파나리온》(69, 73 f.)을 보면, 그는 한편으로는 이레나이우스(2세기)의 견해를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히폴리토스(170?~236?)의 상실된 저작인 《콤펜디움(Compendium)》에 나오는 견해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4] 에피파니우스는 아브라삭스에 대해 더 명확히 그 의미를 기술하였는데, 그는 아브라삭스를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파워로서 제1 원리(First Principle)라고 하였으며 또한 만물의 원인이 되는 제1 원형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숫자 365는 1년에 들어 있는 날의 총 수일 뿐만 아니라 인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총 개수이기도 하다고 바실리데스파가 주장한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160?~220?)의 《이교적 교설에 대한 처방》(c. 4)의 부록의 저자도 유사한 방식으로 히폴리토스(170?~236?)의 《콤펜디움》에 나오는 견해를 따르고 있는데,[5] 이 저자는 또한 다음과 같은 취지의 좀 더 상세한 나스틱파의 주장을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삭스는 누스(마음)를 낳았다. 그리고 365 하늘들 뿐만 아니라 물질 세상도 아브라삭스에게 경의와 찬미를 바치기 위해 창조되었다. 그리고 크라이스트를 내려 보내는 존재는 물질 세상의 창조자(즉, 데미우르고스)가 아니라 아브라삭스이다.
히에로니무스(347?~420)는 아브라삭스에 대해 《저명한 인물들에 대하여》(21)에서는 가장 위대한 신, 《루시퍼주의자에 반대하는 대화》(23)에서는 가장 높은 신, 《아모스서 주해》(iii. 9)에서는 전지전능한 신, 《나훔서 주해》(i. 11)에서는 창조주라고 말하고 있는데, 위의 내용과 같은 내용이다.
테오도레트(Theodoret: 393?~457)의 《이교 교설 집론》(i. 4),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이단에 대하여》, 프라에데스타나투스의 저작 《프라에데스타나투스》(i. 3)에 들어 있는 나스틱파에 대한 소개와 비판 자료들에 담긴 내용도 위의 것들과 차별되는 내용이 없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 즉 교부들의 의견에 따른다면 아브라삭스는 최고신(God)이다. 이것은 테르툴리아누스의 《이교적 교설에 대한 처방》(c. 4)의 부록의 저자가 "아브라삭스는 누스(마음)를 낳았다"라고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누스는 이레나이우스와 히폴리토스가 열거하고 있는 누스 · 로고스 · 프로네시스 · 소피아 · 듀나미스의 다섯 원초 발출물들 또는 아이온들 중에서 제일 첫 번째이기 때문이다.
아이온으로서의 아브라삭스
나그함마디 문서와 같은 나스티시즘의 1차 자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삭스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불가시의 위대한 스피릿의 신성한 책》에서는 아브라삭스를 엘레레트(Eleleth)라는 루미너리(Luminary: 발광체, 영적인 빛의 구체)의 빛 속에 거주하고 있는 하나의 아이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엘레레트에는, 소피아를 포함하여, 플레로마 즉 빛의 세계의 다른 몇몇 아이온들도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여러 나스티시즘 문헌들에서 엘레레트는 발출되어 나온 여러 루미너리들(Luminaries: 영적인 빛들, 영적인 빛의 구체들, 빛의 영역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의 것이다. 그리고 아이온들 중 소피아도 이 가장 마지막 루미너리인 엘레레트와 연관되어 있다. 소피아는 어둠을 만나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는데, 그 결과 데미우르고스가 물질 세상을 지배하게 되고 데미우르고스가 인간의 영혼을 물질 세상에 속박시키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후 곧이어 데미우르고스의 지배로부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크라이스트를 물질 세상으로 파견하는 등의 구원의 워크가 시작된다.
이와 같이, 마지막 루미너리인 엘레레트에 거주하고 있는 아브라삭스와 소피아와 다른 여러 아이온들이 담당하는 역할은 플레로마(빛의 세계)의 최외각 경계선에서 결핍의 세계(빛이 결핍된 세상, 즉 물질 세상)의 무지를 만나서 상호 작용하여서는 물질 세상 속에 있는 무지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다.
아브라삭스 보석
아브라삭스 보석(Abrasax-stones)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많은 보석들이 지금도 존재하는데 이 이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이름이다. 아브라삭스 보석들에 새겨진 그림들은 신화적인 존재들인데 특히 인간과 동물의 공상적인 형상을 결합시킨 그로테스크한 존재들이다. 이 그림들에는 다양한 글자들이 또한 새겨져 있는데 ΑΒΡΑΣΑΞ(아브라삭스)라는 단어가 주로 나타난다. 이 단어는 단독으로 나타나기도 하도 다른 단어들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보석의 전체 면이 이 단어로 채워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에서 기원한 마법서들 중에는 ἀβραξάς(아브락사스) 또는 ἀβρασάξ(아브라삭스)라는 단어가, 여러 아브라삭스 보석들에서 흔히 이 단어들과 함께 나타나곤 하는 다른 이름들과 함께 발견된다.[6] 또한, 여러 신비적인 단어들 중에서도 ἀβραξάς(아브락사스) 또는 ἀβρασάξ(아브라삭스)라는 단어가 특히 그리스의 금속인 테세래(tesseræ)에 새겨진 상태로 발견된다.
아브라삭스 보석들에 새겨진 다른 문자들은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이 보석들 중의 어떤 것들은 호신부임이 분명하며, 모든 아브라삭스 보석들이 호신부일 가능성도 있다.
앵귀피드
많은 아브라삭스 보석에서 아브라삭스라는 이름은 앵귀피드(Anguipede)라고도 불리는 한 특이한 도상(圖像)과 관련되어 있다. 앵귀피드의 어원을 이루는 앵귄(anguine)의 뜻은 "뱀 같은" 또는 "뱀의"이다. 앵귀피드 도상은 그리스 신화의 키마이라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소간 바실리스크나 그리스 태초신들 중의 하나로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와 닮았다. 왈리스 버지(Wallis Budge: 1857~1934)는 앵귀피드 도상(圖像)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아브라삭스가 판테우스, 즉 전체 신(All-God)으로서 호신부들에 나타날 때는 아브라삭스의 머리는 수탉—포이보스(태양신)—의 머리나 사자—라 또는 미트라—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몸은 사람의 몸을 하고 있으며, 두 다리는 각각 한 마리 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뱀은 전갈처럼 구부린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리스 신화의 아가토다이몬(Agathodaemon)의 한 형태이다. 아브라삭스는 오른손에는 곤봉이나 도리깨를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방패를 들고 있다.
— E. A. Wallis Budge (1930). 《Amulets and Superstitions》, 209–210쪽
위의 설명과 함께 왈리스 버지는 아브라삭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측하였다: "아브라삭스는 카발라의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의 한 형태이며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원초 인간(Primal Man · 최초의 인간)의 한 형태이다."[7]
앵귀피드 도상에서 적어도 그 일부는 태양을 상징하는 상징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바실리데스파의 아브라삭스는 명백히 태양과 관련되어 있다. 요한 요아킴 벨러만(Johann Joachim Bellermann: 1754~1842)은 앵귀피드 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전체적으로 아브라삭스는 5대 발출물을 가진 지고의 존재를 나타낸다. 이 5대 발출물들 각각은 아브라삭스 도상(圖像)에 사용된 특정 상징물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간의 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브라삭스의 몸으로부터 좌우 두 발의 형태로 두 지지자들 즉 누스와 로고스가 나온다. 인간의 몸은 대체로 신을 상징하는데, 왜냐하면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스와 로고스는 내적 감각과 활성화시키는 이해력을 상징한다. 이들 두 속성들은 전형적으로 뱀을 이용하여 상징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이유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뱀을 팔라스(아테나)를 상징하는 둥물들 중의 하나로 여겼다. 아브라삭스의 머리, 즉 수탉의 머리는 프로네시스를 나타낸다. 수탉은 선견지명과 깨어있음을 상징한다. 아브라삭스의 두 팔에는 소피아와 듀나미스를 나타내는 두 개의 상징물들이 들려 있다. 이들은 각각 지혜의 방패와 권능(파워 · 힘)의 채찍이다.[8]
— Charles William King (1887). 《The Gnostics and Their Remains》, 246쪽
히브리어식 이름들
이 아브라삭스 보석들에는 다음과 같은 히브리어식 신의 이름들이 종종 나타난다: 이아오(Iao), 사바오트(Sabaoth), 아도나이(Adonai), 엘로아이(Eloai). ΙΑΩ (이아오)라는 이름이 앵귀피드 도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ΑΒΡΑΣΑΞ(아브라삭스)라는 이름이 앵귀피드 도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보다 훨씬 더 흔하다. 그리고 때로는 ΙΑΩ(이아오)에 ΣΑΒΑΩΘ(사바오트)라는 이름이 더해진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ΙΑΩ(이아오)와 ΑΒΡΑΣΑΞ(아브라삭스)가 함께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앵귀피드 도상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발견된다: IAΩ ABPAΣAΞ AΔΩN ΑΤΑ(이아오 아브라삭스 아돈 아타). 이 문구의 의미는 "이아오 아브라삭스여, 당신은 주님이십니다"이다.[9] 또한 아브라삭스 방패에서는 사바오트 이아오(Sabaoth Iao), 이아오 아브라삭스(Iao Abrasax), 아도나이 아브라삭스(Adonai Abrasax) 등의 신의 이름들이 발견된다.
마법 파피루스
그리스 마법 파피루스들에는 아브라삭스 보석과 동일한 관념이 들어 있다. 다음과 같은 예만으로도 그러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아오 사바오트(Iao Sabaoth), 아도나이(Adonai) . . . 아브라삭스(Abrasax)".[11]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등과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주요 조상들은 때때로 신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이아코우비아, 이아오사바오트 아도나이 아브라삭스(Iakoubia, Iaosabaoth Adonai Abrasax)" 이름군[12] 에서 첫 번째 이름 이아코우비아(Iakoubia)는 야곱(Jacob)과 야(Ya)로 구성된 것 처럼 보인다.
레이덴 파피루스(Leyden papyrus)에서는 다음 기도와 주문을 달에게 바칠 것을 권하고 있다:
[24] 호(Ho)! 삭스(Sax), 아문(Amun), 삭스(Sax), 아브라삭스(Abrasax)시여. 당신은 달입니다. (25) 별들 중에서 으뜸이신 달이시며, 별들을 만드신 존재이십니다. 내가 말한 것들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따라 주소서. 당신을 나에게 드러내어 주소서. 탄(Than), (26) 타나(Thana), 타나타(Thanatha) 또는 테이(Thei). 이것이 나의 바른 이름입니다.
주문 또는 마법어인 "아브라나트아날바(Ablanathanalba)"는 그리스어로는 앞에서 뒤로 읽을 때와 뒤에서 앞으로 읽을 때에 서로 철자와 발음이 동일한 단어인데 이 단어는 마법 파피루스들 뿐만 아니라 아브라삭스 보석들에서도 나타난다. 이 단어는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אב לז את AB LZ AT)"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아람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대체로 인정되고 있는데 또한 아브라삭스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글이 칼스루헤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 금속판에 새겨져 있다:
АВРАΣАΞ 아브라삭스
ΑΒΛΑΝΑΘ 아브라나트
ΑΝΑΛΒΑ 아날바
기원
기독교 교부들의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래전부터 아브라삭스 보석이라고 통칭하여 불리게 된 이 기이한 고대의 유물들의 이름이 바실리데스파에서 기원하였으며 바실리데스파에서 사용한 이름이 아브라삭스였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해서, 이러한 점이 곧 이 유물들의 기원을 확정하는 충분한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유물들의 기원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초기 수집가들과 비평가들은 이 일군의 유물들이 모두 나스틱파의 것이라고 가정했었다. 반면, 지난 3세기 동안 전혀 나스틱파적이지 아닌 것들, 특히 바실리데스파적이지 아닌 보석들, 또는 아브라삭스와는 연관성이 없는 보석들을 걸러내는 작업이 계속 이루어져 왔다. 이와 같이 보석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많은 석학들의 독창성과 뛰어남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보석들을 제대로 확정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는 하나, 현재 시점에서 그래도 분류를 해본다면, 도상(圖像)이 새겨져 있는 모든 보석들을 대체로 다음의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아브라삭스(Abrasax): 바실리데스파에서 기원한 보석들
아브라삭스테스(Abrasaxtes): 나스틱파가 자신들의 예배에 차용한, 고대의 예배 의식에서 기원한 보석들
아브락소이데스(Abraxoïdes): 바실리데스의 교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보석들
현존하는 보석들이 모두 나스틱파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견해이다. 그러나 그 보석들의 전부 또는 일부가 나스틱파에서 기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아브라삭스라는 이름이 수탉, 사자, 또는 당나귀의 머리와 뱀의 꼬리를 가진 앵귀피드 도상과 함께 나타난다는 것은 이레나이우스가 바실리데스파에 대해 말한 다음과 같은 진술을 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된 견해이다:
또한 이 사람들은 마법을 행하고 상 · 주문 · 기도를 비롯한 기타 모든 종류의 기이한 기예를 사용한다. 또한 특정한 이름들을 만들어냈는데 그것들은 마치 천사들의 이름과 비슷하였다. 이들은 이 이름들 중의 어떤 것은 첫 번째 하늘에 속하고 다른 어떤 것들은 두 번째 하늘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상상으로 만든 365개의 하늘들의 이름들 · 원리들 · 천사들 또는 파워들을 세우고자 애를 썼다.
— 이레나이우스. 《이단적 교의들에 대한 반박》, I. xxiv. 5;
cf. 에피파니우스. 《파나리온》, 69 D; 필라스트리우스. 《Suer.》, 32
신비적인 이름들을 이용한 주문들은 기원후 4세기 말과 5세기 초에 스페인과 골 남부에서 형성된 혼성형 나스티시즘의 특징이었다. 이 나스티시즘을 히에로니무스는 바실리데스와 연결시켰는데 히에로니무스의 《서간(Epist.)》(lxxv)에 따르면 이들은 아브라삭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일부 나스틱파에서 호신부를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취지의 현대의 저술가들의 주장은 아직 권위 있는 근거가 전혀 없는 상태이다. 아이작 드 뷰소브레(Isaac de Beausobre: 1659~1738)는 반지들과 보석들 그리고 이들 위에 새겨졌을 도상들의 바른 사용법에 대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가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인들을 가르치고 있는 두 구절들에서 나타난 그의 침묵이 의미심장하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Paed.》, 241 ff.; 287 ff.). 그러나 이 보석들에 새겨진 도상들이 나스틱파의 신화에 등장하는 어떤 존재라는 것을 밝히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다. 그리고 이 도상들과 동반하는 전설들에서 아브라삭스라는 이름만이 다른 종교나 신화에는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나스틱파 단어이다. 그러므로 현재까지의 증거들은 이 도상들을 조각한 사람들과 바실리데스파의 교인들 모두가 지금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공통 원천으로부터 아브라삭스라는 신비적인 이름을 전수받았다는 것을 시사(示唆)한다.
마법 파피루스들에는 유사한 도상과 공식이 새겨진, 마법에 필요한 보석들을 제작하고 사용하는 방법들이 들어 있으며 또한 아브라삭스 보석에 나타나는 미해독된 이름들 중 많은 것들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점을 정당히 고려할 때, 아브라삭스 보석들의 중의 다수가 비기독교 종교의 호신부들이었으며 마법 도구들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브라삭스의 어원
가이우스 줄리우스 하이기누스(BC 64?~AD 17)는 《파불래》(183)에서 "아브락스 아슬로 테르베에오(Abrax Aslo Therbeeo)"는 호메로스가 언급한 태양의 말들의 이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당 구절은 형편없을 정도로 틀린 곳이 많다. 그러나 이 이름에서 첫 세 음절을 따면 아브라삭스(Abraxas)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스 저술가들인 히폴리토스(170?~236?) · 에피파니우스(310/320?~403) · 디드무스(313~398) · 테오도레트(393?~457)와 라틴 저술가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와 프라에데스티나투스의 문헌들에 나타난 문자들과 대다수의 보석들에 새겨진 문자들에 따르면, 바른 이름은 명백히 아브라삭스(Abrasax)이다. 이레나이우스(2세기)의 번역자와 다른 라틴 작가들의 문헌들에서 아브락사스(Abraxas)가 나오는 것은 음운 도치에 의한 것일 것이다.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은 마법 파피루스들에서 나타나며 보석들에 새겨진 형태로는 아주 가끔 나타난다.
아브라삭스라는 이름이 콥트어 · 히브리어 · 그리스어 혹은 다른 언어의 특정 단어들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밝히려는 다음과 같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 모두가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집트어 기원설
클라디우스 살마시우스(Claudius Salmasius: 1588~1653)는 아브라삭스가 이집트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약속했던 증거를 내놓지 못하였다.
프리드리히 뮌터(Friedrich Münter: 1761~1830)는 아브라삭스를 두 개의 콥트어 단어로 분리하여 그 의미가 "새로 유행하는 호칭"이라고 하였다.
요한 요아킴 벨러만(Johann Joachim Bellermann: 1754~1842)은 아브라삭스는 두 이집트어 단어 아브락(abrak)과 삭스(sax)가 결합된 말이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영광스럽고 거룩한 말씀" 또는 "말씀은 사랑스럽다"라고 하였다.
새뮤얼 샤페(Samuel Sharpe: 1799~1881)는 아브라삭스가 신을 부르는 이집트어 주문이며 그 의미는 "저를 다치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기원설
아브라함 가이거(Abraham Geiger: 1810~1874)는 아브라삭스가 축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베라카(ha-berakhah)의 그리스어화 된 형태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찰스 윌리엄 킹은 문헌학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견해라고 하였다.
J. B. 파세리우스(J. B. Passerius)는 아브라삭스는, 아버지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브(abh)와 창조하다를 뜻하는 바라(bara)와 부정을 뜻하는 아(a)가 합쳐진, "비창조된 아버지(uncreated Father)"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들에서 유래하였다고 하였다.
기우세페 바르질라이(Giuseppe Barzilai)는 아브라삭스에 대해 설명함에 있어 그 기원을 랍비 네후냐 벤 하-카나(Nehunya ben ha-Kanah)의 기도문의 첫 번째 구절에 두었다.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오 [신이시여], 당신의 강대한 오른손으로 불행한 사람들을 구원하소서"인데, 이 구절의 각 단어의 첫문자와 끝문자를 따서 아브라카드(Abrakd: 아브라크드라고 발음하지 않는다)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며 그 의미는 "날개 달린 존재들의 무리", 즉, 천사들의 무리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아주 독창적인 견해는 최대한 받아들인다 하여도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라는 신비적인 단어에 대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아브라카다브라와 아브라삭스가 서로 관련이 있다고는 결코 단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리스어 기원설
웬델리(Wendelin)은 4개의 히브리어 단어와 3개의 그리스어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 그리스어로 표기된 구절인데 각 단어들의 첫 문자의 숫자값들을 합하면 365가 되는 다음 한 구절을 발견하였다: "ab, ben, rouach, hakadōs; sōtēria apo xylou (아브, 벤, 루아크, 하카도스; 소테리아 아포 크실로우)". 번역하면, "아버지, 아들, 스피릿, 성스러운; 십자가로부터의 구원"이다.
아이작 드 뷰소브레(Isaac de Beausobre: 1659~1738)의 저작에 있는 한 주석에 따르면, 쟝 하르도우인(Jean Hardouin: 1646~1729)은 웬델리의 일곱 단어들 중 처음 3 단어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나 나머지 4 단어는 그리스어 구절 "anthrōpoussōzōn hagiōi xylōi (안트로포우소존 하기오이 크실로이)"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 뜻은 "성스러운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함"이라고 하였다.
아이작 드 뷰소브레(Isaac de Beausobre: 1659~1738)는 아브라삭스가 그리스어 하브로스(habros)와 사오(saō)에서 유래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단어들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구세주"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아마도 아브라삭스라는 단어는 아돌프 폰 하르나크(1851~1930)가 논의했던 신비한 어구들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14] "이 어구들은 어떤 알려진 말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어구들만의 독특한 자음과 모음 결합 형태는 이들이 어떤 신비한 언어에 속한 것이거나 혹은 어떤 신적인 영감으로부터 기원한 것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위의 여러 견해들과는 달리, 아브라삭스라는 단어가 외래 신화에서 기원했으며, 아브라삭스의 그리스어 숫자값이 365인 것은 아브라삭스의 기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며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브라삭스가 더 두드러지게 종교적으로 사용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렇게 판단할만한 더 나은 근거가 있다.
ΜΕΙΘΡΑΣ(메이트라스 · Mithras · 미트라)와 ΝΕΙΛΟΣ(네일로스 · Nile · 나일강)의 숫자값이 아브라삭스와 동일하게 365인 것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이집트인들의 신비 가르침에 대하여(Theurgia, or De Mysteriis Aegyptiorum)》라는 책의 저자인 이암블리코스(245?~325?)는 포르피리오스(234-305?)(vii. 4)에 대한 답신에서 이암블리코스 자신은 신성한 것들에는 자국어(즉, 그리스어)로 된 이름들 보다는 야만어(즉, 이집트어 또는 아시리아어 등)로 된 이름들을 더 선호하여 사용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면서 이암블리코스는 이집트인과 아시리아인 같은 특정 민족들의 언어들에는 특출한 신성함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리겐(?185~254)은 《셀수스에 반대하여(Contra Celsum)》(i. 24)에서 이집트의 현자들과 페르시아의 마기들과 인도의 브라만들이 사용했던 전능한 이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 전능한 이름들의 각각은 해당 언어들에서 특정 신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현대 문화에서의 사용 예들
칼 융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
이 부분의 본문은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입니다.
아브라삭스는 칼 융의 저서인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Seven Sermons to the Dead)》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심리학자였던 칼 융은 인간의 의식이 그 대립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양자가 통합된 보다 성숙된 개체로 나아가는 심리적인 발전 과정을 나스틱파의 아브라삭스에서 보았으며 이러한 관점이 《일곱 강의들》에 나타나 있다.
《일곱 강의들》에서 아브라삭스는 개체성의 형성을 추동하는 힘, 즉 통합 · 성숙 · 일체화를 추동하는 힘을 나타내는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데, 또한 아브라삭스는 개체성의 분화를 추동하는 힘, 즉 의식과 그 대립물들의 출현을 추동하는 힘을 나타내는 인물들인 태양신 헬리오스와 사탄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여러분들이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신이 하나 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그에 대해서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를 아브라삭스라고 부르며 이것이 그의 이름이다. 아브라삭스는 신(헬리오스) 또는 사탄보다 더 불분명한 신이다.... 아브라삭스는 활동이다. 비실재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도 아브라삭스에게 대항할 수 없다.... 아브라삭스는 태양[신] 위에 있으며 사탄 위에 있다.... 만약 플레로마가 존재를 가질 수 있다면 아브라삭스가 플레로마의 그 현현체일 것이다. – 두 번째 강의
태양신의 말씀은 생명이다. 사탄의 말씀은 죽음이다. 아브라삭스는 거룩한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모두 말하는데 이는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함께 있는 것이다. 아브라삭스는 같은 말, 같은 행위 속에서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을 함께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삭스는 경외로운 존재이다. – 세 번째 강의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Utopia)》에서 책 이름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섬의 이름이 한 때는 "아브라삭스(Abraxas)"였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칼 융의 친구였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아브라삭스 신이 몇 번 언급되는데 그 중의 3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새는 알에서 나와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상을 깨뜨려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오른다. 이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이다. – 막스 데미안
아브라삭스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이름을 최고신의 이름이라 생각할 수 있다. 최고신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일은 신적인 요소들과 악마적인 요소들을 통합하는 것이다. – 닥터 폴렌스
아브라삭스는 너의 어떤 생각이나 꿈에도 화를 내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을 결코 잊지 말라. 그러나 일단 네가 죄가 없으며 정상적인 상태가 되기만 하면 그는 너를 떠날 것이다. – 피스토리우스
https://steemit.com/kr/@isis-lee/5d3nwn
2.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아브락사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아브락사스를 기억할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은 그노시스즘에 기반하여 쓰인 소설이다.
그노시스즘은 우리말로 '영적인 지혜' 영지주의라고 번역한다. 영지주의는 모나드라고 하는 절대적 신성(divine)에 도달하게 하는 경험적 지식으로서 '신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영지주의의 일파인 오피스파(Ophites)에서는 그노시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금언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해지는 것의 시작은 인간을 아는 것이고 완전해지는 것의 완성은 신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앎은 통상적으로 '내적인 앎(inward knowing)'의 과정 또는 '자아 탐구(self-exploration)'의 과정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본문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그노시스즘에 대해 글의 아래에 간략하게 다시 소개했다.>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라는 말은 영지주의자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오래된 고대의 보석들에 새겨져 있었다.
아브라삭스 선과 악, 즉, 모나드와 데미우르고스를 한 존재 속에 모두 지니고 있는 신의 이름이다. 최근 수 세기 동안에 아브라삭스는 한 이집트 신이자 악마라고 주장되었다. 때로는 사탄 혹은 루시퍼의 이중적인 성격과 연결 짓는 경우도 있었다. 마법사의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가 아브라삭스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콥트어 이집트 복음>와 같은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나온 고대 영지주의 문헌들에서는 아브라삭스를 소피아와 함께, 그리고 플레로마의 다른 아이온들과 함께 엘레레트(Eleleth)라는 루미너리(luminary, 발광체)의 빛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칼 융(1875-1961)은 1916년에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이라는 짧은 영지주의적인 글을 썼다. 여기에서 칼 융은 모든 대립물이 한 존재 속으로 결합된 신이 아브라삭스이며, 아브라삭스는 기독교의 신이나 사탄보다 더 고차적인 개념의 신이라고 하였다.
칼 융은 어느 인터뷰에서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나는 신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
데미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싱클레어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는 가정이라는 밝고 따듯한 세계와 불량배인 프란츠 크로머가 지배하는 어둡고 악한 세계 두 세계 사이에 살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는, 때로는 선하게 살면서 또 때로는 이기적으로 살면서 기우뚱 거리면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갈 길을 탐구한다. 그러므로 싱클레어는 탐구자 정도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싱클레어는 기독교인인 가족들과 자애로운 어머니와 가족에게 속한 따듯하고 밝은 세계에 좀 무료하고 싫증이 나서 프란츠 크로머라는 또래 악당 녀석과 잠시 어울린다. 이 세계는 싱클레어가 속한 밝은 세계의 대칭적인 세계로서 어둡고 악한 세계다. 또한 기독교인인 가족들이 속한 세계가 신의 세계라면 프란츠 크로머가 지배하는 세상은 물질적인 세계다.
사내아이가 흥미와 호기심으로 잠시 기웃거린 이 악의 세계는 그러나 싱클레어의 밝은 세계를 파괴하고 점점 악의 쇠사슬로 발목을 감고 깊숙이 영향력을 미쳐온다. 싱클레어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사과를 훔쳤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로 인해 협박을 받고, 돈을 뜯기고, 마침내는 누이에게까지 위험이 닥칠지 모르게 되면서 지독한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싱클레어가 사과를 훔쳤다는 거짓 고백으로부터 이렇게 신의 밝고 따뜻한 질서에 속한 세계를 잃어버리고 실낙 하여 물질 세상으로 추락하게 되는 이 스토리는 그노시즘에서 태초에 인간이 어떻게 천국을 잃었는지, 어떻게 신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물질 세상의 창조 이야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모나드/ 플레로마/ 데미우르고스
다시 그노시즘으로 돌아가서,
모나드는 그노시즘에서 최고의 신, 만물의 아버지, 만물 위에 거주하는 불가시의 무한한 지고한 신성(神性)을 말한다. 모나드는 한계 지을 수 없는데 모나드를 한계 지을 수 있는 그 무엇도 모나드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나드는 순수하고 신성하며 무한한 빛이다. 모나드는 완전 · 축복 · 신성을 뛰어넘는다. 모나드는 유(有: 유형)도 무(無: 무형)도 아니다. 모나드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다. 모나드는 광대무변(vastness)하다. 모나드는 무한한 단순성을 가지고 있다. 모나드는 아이온들을 낳는 아이온이며, 생명을 주는 생명이며, 축복을 주는 축복이며, 지식을 주는 지식이며, 선을 주는 선이며, 자비와 구원을 주는 자비이며, 은총을 주는 은총이다.
이 모나드의 '충만' 또는 '충만한 상태'(fullness)적인 면을 플레로마라고 부른다. 또한 이 플레로마는 소피아이기도 하다. 이 플레로마는 데미우르고스를 낳는다. 데미우르고스의 어머니이자 최고신의 플레로마, 즉 최고신의 "충만 상태"의 일부 측면이었던 소피아는 최고신의 전체성과 분리되어 어떤 것을 창조하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전체와 상관없이 부분으로서 이러한 창조의 욕구를 가졌다. 소피아는 이 분리된 창조로 인해 괴물 같은 데미우르고스를 낳았다. 그러자 소피아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데미우르고스를 구름(cloud)으로 감싼 후 그 안에 데미우르고스를 위한 보좌(throne)를 만들어 주었다.
플레로마이면서 소피아
플레로마에서 분리되어 혼자 있게 된 데미우르고스는 다른 어떤 존재들은 물론이요 자신의 어머니도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이 탄생한 곳인 고급한 실재의 세계에 대해 무지하였기에 오직 자신만이 홀로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몇몇 영지주의 철학자들은 데미우르고스를 구약성경의 신인 야훼(Yahweh, 여호와)와 동일시하였다.
그는 자신의 힘의 근원, 즉, 자신이 나온 근원 장소에 대해 무지하였기에 "나는 최고신이다. 나 이외에는 다른 어떤 신도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데미우르고스, 즉 구약성경의 신은 신약성경의 신과는 반대된다는 견해를 가졌다. 또한 다른 몇몇 영지주의 철학자들은 데미우르고스를 사탄(Satan)과 동일한 존재로 보았다. 중세의 카타리파(Catharism)는 사탄이 악한 세상의 창조자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는 영지주의 신화들에는 신적인 요소들이 인간의 형상 속으로 실락 하였다는 것을 묘사하는 난해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의 어머니인 소피아로부터 힘의 일부를 가지고 물질 세상과 인간의 물질적 형상을 창조하는 일을 시작하는데, 이들을 창조할 때 데미우르고스는 상위의 플레로마를 무의식적으로 모방하여 창조하였다. 이 결과 소피아의 파워가 인간의 물질적 형상들 속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물질적 형상들은 물질 우주 속에 갇힌 바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지주의 운동의 전형적인 목표는 물질 우주와 물질적 형상 속에 갇힌 이 스파크(spark, 불꽃)를 일깨우는 것이었다.
즉, 이 스파크가 일깨워짐으로써 스파크는 데미우르고스, 즉 물질 세상과 물질적 감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태초의 근원인 지고한 비물질적 실재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를 통해 이 실재 또는 이 실재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그노시스 운동의 전형적인 목표였다.
데미우르고스
데미우르고스는 물질계, 즉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를 창조하는, 지고한 존재와는 별개의, 독립적 창조자다. 이는 환영이자 유일한 근원으로부터 가장 늦게 분리되어 나온 존재이다.
데미우르고스는 불완전한 물질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고통을 초래하였으며, 제우스와 같은 비아브라함적 종교의 창조주나 야훼와 같이, 실존하지 않으며 누스로서의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생각 또는 착각이다.
이 창조주는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만물은 영원하거나 발출 되며 따라서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데미우르고스는 전형적으로 아르콘(태양계에 존재하는 제타리티큘리, 파충류형 외계인이라고 함)이라 불리는 일군의 동료 지배자들을 창조하여, 이들로 하여금 물질계를 주재하게 하며, 어떤 경우에는 물질계로부터 상위의 세계로 올라가려는 영혼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존재하게 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물질계는 결함이 있거나 오류의 산물인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 구성 물질들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는 선할 수 있다. 이 세상은 일반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실재 또는 의식의 열등한 것이다. 이 세상의 열등함은 회화, 조각 또는 수공예 작품이 어떤 대상을 모방한 것일 때의 기술적인 열등함과 견줄 수 있다. 특정한 다른 경우에 물질의 존재에 대한 견해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금욕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견해는 물질성과 인체 자체가 악하며, 의도적으로 만들어져 그 주인을 옥죄는 감옥으로 인식하는 극단적인 견해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는 신격이 물질계로 내려와 특정한 인간의 육체에 기거한다는 것이다. 신격은 구원에 이르는 각성의 과정을 거쳐 상위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구원이란 개인에 내재하는 신성의 복원이라는 것이며, 영지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개인의 구원을 우주적으로 중대한 사건으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다시 책 데미안으로 돌아와서
데미안은 데미우르고스이다. 그는 플레로마, 즉 에바 부인의 아들이다. 그는 물질적 세계의 악한 측면에서 고통받고 있던 싱클레어를 해방시켜 준다. 왜냐하면 그는 물질세계를 창조한 신이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구루로서 싱클레어가 물질세계에서 벗어나서 신의 충만한 존재성 즉 플레로마(이 책에서 플레로마는 에바 부인이다. )에게 닿도록 이끌어 준다. 플레로마는 신의 충만한 존재성의 측면이기에 이것은 아브락사스에게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뒤 흔들어 깨우는데 그는 구약 성경의 카인과 아벨에 대해 선생님이나 목사들과는 다른 해석을 해 준다. 카인이 동생을 죽이고 신으로부터 이마에 표식을 받은 것은 살인자라는 낙인의 표시가 아닌 그가 신으로부터 받은 보상이라는 것이었다.
이 관점 또한 그노시스적 관점이 아니면 해석이 불가능하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에덴동산 이야기처럼 상징성으로 보면 이렇다. 위에서 말했듯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훼, 여호와는 그노시스에서 데미우르고스이다. 데미우르고스는 불완전한 물질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고통을 창조한 신이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이 데미우로고스가 준 제약과 한계를 깨트리고 넘어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의 한계와 제약을 넘어선 자로서 이마에 표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표식은 아마도 제3의 눈의 활성화 일 것이다.
데미안은 데미우르고스로서 신의 어둡고 물질적인 측면과 신의 플레로마적인 충만한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책에서는 기꺼이 탐구자를 돕는 플레로마적인 충만하고 선한 신의 측면으로서 나타난다. 그는 당연히 탐구자를 그의 어머니 에바에게 이끈다. 싱클레어의 전 여정이 그리고 데미안의 간섭은 바로 신성의 충만한 존재성 측 플레로마로 이끄는 것이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김나지움에 입학하여 다시 술을 마시며 어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다가 공원에서 어느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녀를 숭배하면서 점차 다시 밝은 신의 세계를 자각하고 그 세계로 나오려 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며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 초상화는 데미안을 닮아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싱클레어 내면의 아니마를 상징한다. 물질적이고 어두운 세계를 방황하면서 자신 안의 가장 순수하고 맑은 측면을 보게 되고 그것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그 자신 안에서 데미우르고스 즉 신을 발견한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데미안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깨닫고 어느 날 데미안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자기 집의 오래된 문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서 그 문장의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마치 커다란 알을 깨고 나오는 큰 매 같았다. 싱클레어는 이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느 날 예기치 않았던 때 데미안에게서 메시지를 받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신이면서 악마인 이 아브락사스에 대해 탐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교회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와 아브락사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동급생 크나우어를 자살에서 구해준다. 그때 싱클레어는 야곱이 천사와 싸움했던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 즈음의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라고 하는 일상의 아브락사스를 만났으며 또한 스스로가 크나우어에게 아브락사스로서 행동했던 것이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아브락사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 스승이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풀지 못하는 응어리를 주었다. 또한 싱클레어는 자신에게 기대를 갖고 다가온 크나우어를 실망시켰지만 또한 그를 자살 직전에 구해주기도 했던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속임수를 써서 가로챈 후 형의 보복이 두려워서 도망을 친다. 그는 들판에서 신을 만나는 깨달음을 얻고 제단을 쌓는다. 그리고 숙부에게로 가서 돼지를 치며 살다가 물질의 현현의 법칙을 깨달아 숙부로부터 많은 돼지를 얻게 되고 어느 날은 그 많은 재산을 거느리고 형이 살고 있는 에서의 집 즉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는 두렵고 불안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형이 자신을 용서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얼마 남겨두지 않는 시점에서 그는 밤에 어떤 존재를 만나서 싸움을 하게 되는데 날이 밝자 그 존재는 자신이 천사라는 것을 밝히고는 날이 밝아 하늘로 돌아가야 하니 이제 자신을 놔줄 것을 요청한다. 그때 야곱은 천사에게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여 천사로부터 축복을 얻어낸다. 이때 천사는 야곱의 갈비뼈를 쳐서 부러뜨린다. 야곱은 옆구리를 움켜잡고 절룩거리며 형의 집으로 돌아가고 형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그러나 가엾게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절뚝이며 돌아오는 동생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환영하며 맞아들인다.
이 천사 역시 아브락사스다. 그는 어둠 속에서 나타나 야곱을 습격했고 야곱과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날이 밝자 자신이 천사라는 측면을 밝혔다. 그리고 또 야곱에서 축복을 내리면서 동시에 갈비뼈를 부러 뜨리는 재앙을 내렸다. 그러나 그 재앙은 다시 축복이 되는 것이었다.
싱클레어의 정신적 성장은 이렇게 아브락사스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신이면서 악마이고, 재앙이면서 축복이고, 어둠이면서 빛인 아브락사스는 수많은 신화에서 단골 주제로 나오는 괴물로서도 상징된다. 테세우스가 처치한 미궁 속의 미노타우루스 역시 아브락사스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나 아픔, 고통, 질병 또한 아브락사스다.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도 하지만 이마에 표식(통찰력과 지혜)을 주고 더 큰 생명을 얻어 부활하게도 한다.
이는 마치 인디언들이 곰이나 야크 같은 큰 동물들을 사냥하여 먹을 때 그들의 영혼이 자신들과 하나가 되어 자신들을 더욱 강하게 한다고 여겼던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신비롭게도 인간은 그 자신보다 더 강한 것과 싸울 때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아브락사스를 알고 그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이 저급한 물질적 차원에서 한 단계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안전하게 의지하던 세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야기는 전쟁으로 끝을 마친다. 전쟁은 아브락사스의 어둡고 악한 측면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한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비록 전쟁과 같이 사악하고 광범위한 파괴일지라도 누군가는 그 안에서 태어나 신에게로 날아가는 새가 있음을 보는 것이다. 새는 신을 향한 신성한 의지이며 완성을 향해 가는 순수한 영혼이다. 그것은 싱클레어이며 고향을 향해 가는 야곱이다. 또한 매트릭스에서 잠을 자지 못하며 해킹을 하고 이 세상에 저항하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미스터 앤더슨 일때의 네오다.
전쟁에 참가했다가 부상당한 싱클레어는 야전병원에서 문득 옆자리에 있는 데미안을 만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한다.
" 언젠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너의 내면에 귀 기울여라"
그리고 그는 사라진다. 데미안이 사라짐으로써 싱클레어는 이제 그 내면에서 데미안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야 보혜사 성령이 제자들에게 올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육체적 데미안은 떠났지만 영적인 데미안 즉 신성으로서 그 내면에서 함께 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이렇게 데미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아브락사스는 결국 이원성의 통합을 의미한다.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즉 성과 속이 하나이며 시작이 곧 끝이며 씨앗이 곧 열매이며 어둠이 곧 빛인 것이다. 이 양극성이 통합이 되면 이는 공 0 이 된다. 공의 속성은 반야심경에 잘 묘사되어 있다.
"시제법 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모든 법의 모양은 공으로서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안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역시 통합으로서의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에 대한 생각의 정리
완전한 전체인 모나드의 충만함이라는 존재성과 지혜로부터 데미우르고스라는 하위의 신이 발출 되어 나왔다. 이 신의 속성에는 환영과 신의 어머니적인 측면인 플레로마의 충만 성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노시스는 유대교의 카발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카발라에는 지고한 무한자의 속성인 아인소프아우르로부터 하위의 신과 그 세계가 발출 되어 나오는 신에게 이르는 생명의 32길인 생명의 나무가 있다. ) 이때 신의 전체성이 발출 되어 나온 것이 아니다. 신의 부분이 발출 되어 나오면서 창조적으로 다른 개성이 덧붙여지는 것이다. 이 발출의 시작은 이원성의 시작이다.
이 완전하고 지고한 신으로부터 여러 단계의 발출을 거쳐 최종적으로 물질 세상과 인간을 창조했는데 이때 플레로마의 충만함과 지혜 그리고 환영적 속성이 물질 세상과 인간 속에 또한 함께 더해졌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 내면의 신성의 속성인 플레로마를 일깨워 다시 신성을 회복하는 그리스도 혹은 소피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래 데미우르고스와 플레로마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다른 측면인 아브락사스를 이해해야 한다. 밝은 세계나 어두운 세계 , 신의 세계나 물질의 세계, 선의 세계나 악의 세계, 어느 한쪽의 측면으로는 절대로 전체성, 그 완전한 통합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원성을 극복함으로써 다시 신성안으로의 통합인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아브락사스는 자아 즉 ego 다. 자아는 야곱의 천사처럼 우리를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길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갈길을 막아서고 , 물질세계에 우리를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자아는 부서져야 한다. 그때 새는 신의 충만한 속성인 플레로마를 향해 날아가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자아를 부수지 않고는 신 혹은 전체성 또는 완전함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신을 믿든지 상관없이..
주: 그노시스
나그함마디 문서
1945년 나그함마디문서가 발견되면서 비로소 소수의 학자들에게서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도록 그노시즘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노시스 학파는 기원후 1-3세기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고 말하지만 필자가 알기로 그노시스 영지주의 지식은 아주 오래된 고대로부터 있었던 신비 지식과 수행 체계였다. 일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모가 속해있던 단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신비주의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그노시즘에 바탕하고 있다고도 본다. 후에 그노시즘과 비슷한 부분은 성경에서 모두 삭제되고 빠졌다. 그노시즘은 헬레니즘. 철학 · 유대교 ·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의 카발라 그리고 신플라톤 학파 및 피타고라스 학파와도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현대의 수많은 종교와 심리학 그리고 오컬티즘을 들여다보면 이 그노시즘이 있다. 그노시스즘을 연구하다 보면 그노시스즘은 기독교보다는 카발라와 전체적인 뼈대가 아주 비슷하게 느껴진다.
미국 CIA와 소련에서 군사첩보 기술로 사용했던 리모트뷰잉이 이 그노시스의 의 신비 지식을 차용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노시스 사제들은 엄격한 금욕생활로 그리스도와 소피아를 추구했으며 모나드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들은 원격투시나 유체이탈 등의 신비적인 기술들을 갖고 있었고 외계인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칼 융도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도 헤르만 헤세 <데미안>도 그노시스즘을 연구했다.
이글에서 소개한 그노시스즘은 위키백과를 참조로 인용했음을 밝힌다. 그노시스는 신비적 지식으로서 20대부터 필자가 그 정보에 대해 목말라했던 것인데 이제 이렇게 간편하고 풍부하게 백과사전에서 접할 수 있게 되어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그노시즘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위키백과를 검색하여 참조하시라. 그러나 해석적인 부분은 필자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글쓴이의 말
가볍게 자아와 아브락사스에 대해 쓰려다 대단히 헤비한 글이 되어 버렸다. 근 이틀을 검색하고 자료를 찾아가며 그노시스에 대해 읽었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상징과 신비 지혜를 이렇게 우연히 그것도 아주 쉽게 인터넷으로 그 핵심 사상과 신화를 모두 읽게 되어 행복하다. 중학교때 데미안을 읽으면서 부터 그 난해한 상징성에 매료되었고 나는 언제부턴가 말보다는 상징이나 형상 그리고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 해석을 즐기는 길 위에 올라서 있었다. 아주 가끔씩 씽클레어처럼 꿈을 통해 그노시스적 상징들을 부분적으로 보면서도 그노시스의 그 핵심 가르침을 알지 못해 답답해는데 이제 모두 풀려서 참으로 시원하다. 글을 쓰면서 이런 글 누가 읽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러나 "에라 모르겠다. 이때가 아니면 이글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냥 쓰고 올리고 보자."라고 밀어 붙이고 말았다. 어제 하루가 온전히 이 글속에 서리서리 아로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읽으면서 행복해 하시기를, 나도 쓰면서 행복했으니까.
https://www.newsn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22
3. 김성훈 칼럼 (6) 아브락사스(Abraxas)에 대하여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다. 선악이 있는 것이다.
아브락사스(Abraxas)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신이다. 선과 악을 다 지녔다기보다는 완전한 선과 선을 흐릿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해야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불안전함은 악의 근원이라고나 할까! 불가에서는 탐(貪) · 진(瞋) · 치(癡)를 없애야 피안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치(癡)라는 것은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음은 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의 ‘데미안(Demian)’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Abraxas)이다’라는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러한 어리석음을 넘어서려는 영지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영지주의는 신비적이고 계시적이며 밀교적인 지식을 얻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데미안은 데몬(demon)에서 유래한 뜻으로 ‘악마에 홀린 것’이라는 뜻이라는 해석도 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칼 융은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일곱 강의들’이라는 짧은 영지주의적인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에서 칼 융은 모든 대립물이 한 존재 안에 결합된 신이 아브락사스(Abraxas)이며, 아브라삭스는 기독교의 신의 개념보다 더 고차적원적인 개념의 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윤회를 믿었으며 깨달음으로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원래 모두가 완전한 밝은 빛이었는데 어리석음으로 흐려져서 이 물질세계에서 윤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밝은 빛이었다는 자신의 본래 진면목을 보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유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을 영·정신(영혼)·물질(육체)의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영적 발달 정도에 따라 영적인 인간(Pneumatics)·정신적인 인간(Psychics)·물질적인 인간(Hylics)으로 구분하였다.
헤르만 헤세는 청소년기에 정신요양원에 입원한 적이 있고, 중년기에 또 다시 빈번한 우울증으로 1916년부터 10여 년간 여러 차례 융(C. G. Jung)과 융의 제자 랑(Joseph Bernhard Lang)으로부터 융 학파의 정신분석을 받았다. 헤세는 융의 분석치료를 받으면서 크게 만족하였다.
헤세는 융의 인품과 치료기술에 감명을 느꼈고 융을 천재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헤세는 융과 대화하면서 싯다르타를 완성하였고 랑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호전시키며 ‘황야의 이리’를 완성시켰다.
결국,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칼 융의 심리학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헤세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헤세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그처럼 힘든 삶을 살았던 사람도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삶에 감사한다. 적어도 헤세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아브락사스(Abraxas)에 대하여 통찰(洞察) 하면서 세상의 모든 지식은 촘촘히 서로 조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짧고 알아야만 하는 것은 너무나 많다.
천사사전 P254
아스스로 아이온의 자리에 올라간 괴상한 모습의 아르콘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벨렌티누스파라는 영지주의 일파가 숭배한 아르콘이다. 발렌티누스파의 교리에 따르면 다름아닌 아브라삭스가 물질세계를 창조한 아르콘이며 '아브락사스Abraxax'의 알파벳을 숫자로 바꾸면 그 합계가 365가 된다는 점에서 365개의 하늘 내지 1년 365일의 지배자라고 믿어졌다. 또 미트라를 숫자로 바꾼 결과 역시 365이다.
아브락사스는 인간의 몸에 닭의 머리와 뱀의 다리를 가졌다고 하는 괴상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오른손에 든 채찍은 두나미스의 화신이라고 한다. 아브락사스가 얄다바오트와 크게 다른 점은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초월적인 세계와 '불가지한 신'이란 존재에 도달함으로써 자신의 오만함을 회개해 직접 아이온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점이다.
아브락사스는 영지주의 문서인 이집트 복음서에서는 빛을 보조하는 위대한 자로 칭송되며 아담 묵시록에서도 선택받은 인간을 천국(플레로마)으로 인도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위대한 자로서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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