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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대한 이야기 by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P179
에 있는 내용으로 달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름달이 뜨면 나타나는 늑대 인간
달에 대한 동서양의 상반된 인식
고대부터 한국인들은 달, 특히 보름달을 숭배해왔다. 음력에 따르면 한 해의 시작은 정월 대보름이다. 대보름달이 한 해의 첫 만월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양대 명절중 하나인 추석에도 보름달이 뜬다. 다들 아름다운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을 보면 한국인 나아가 동양인이 보름달을 신성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보름달을 숭배하기는커녕 악마적은 것으로 생각한다. 늑대인간은 서양의 여러 소설이나 영화, 민담의 소재가 되어왔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보름달만 뜨면 늑대로 변한다. 보름달이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악마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단순히 고대나 중세의 전설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서양인들은 보름달이 그런 효과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연구도 활발하다,
왜 보름달이 인간의 악한 모습을 드러나게 할까? 영어 사전을 펼쳐보면 더욱 궁금해진다. 루나르(Lunar)는 '달의' 혹은 '달의 영향을 받은'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 말에서 파생된 루나틱(Lunatic)은 광인, 정신이상자, 광기의, 미치광이를 뜻한다. 영화나 소설뿐 아니라 언어에서도 달은 미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념과 달리 고대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에는 달이 모양새에 상관없이 늘 신성한 것 혹은 무언가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다. 많은 고대인이나 원시 부족 들은 초승달이 뜰 때면 새로이 달이 뜬 것을 축하했다. 에스키모는 초승달이 뜨면 잔치를 베풀었고, 부시먼은 초승달을 환영하는 춤을 추었으며, 게르만인은 초승달이나 보름달이 뜰 때가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상서로운 시기라고 생각했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관습을 채택한 유대인도 보름달이 뜨는 날을 주요 축제일로 정했다. 그들의 최고 명절인 유월절은 니산월 보름날에 치러진다. 예수는 바로 이날 전날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전통이 깊은 이슬람교도 고대인들의 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현대까지 보존하고 있다. 그들은 라마단 기간에 뜨는 초승달을 소중히 여기며, 달의 움직임에 기초한 순수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다. 13세기 이래 이슬람 세력은 달을 자신들의 상징물로 만들었으며 터키를 비롯한 여러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왜 이렇게 초승달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걸까? 달 신 숭배를 발달시킨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은 보름이 지나고 달이 서서히 이울다가 그믐이 되면 사라지는 현상을 달이 저승에 갇혔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초하루가 되면 저승에 갇혔던 달이 부활한다고 생각했다. 달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달이 부활하는 초하루를 신성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보름달이 악마적인 것을 대변한다는 관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서양의 여러 신화를 살펴보면서 이 문제를 고민해보자.
태양보다 달을 숭배하는 수메르인
초기 고대 세계에서 달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서양 신화의 원류가 되는 메소포타미아 특히 수메르 신화에서 달의 신 난나의 부정적인 면은 보이지 않았다. 난나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신 중 하나다.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하늘의 신 안이 땅의 신 키를 아내로 삼고 대기의 신 엔릴을 낳았다. 엔릴은 대기의 여신 닌릴과의 사이에서 달의 신 난나를 낳았다. 그리고 난나가 태양의 신 우투와 금성의 신 인안나를 낳았다.
이런 출생 순서에 따르면 달의 신이 태양의 신보다 위계가 높다. 실제 수메르인은 이런 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신들의 중요성을 표시하기 위해 매긴 숫자에서 드러난다. 그 숫자에 따르면 하늘의 신 안은 60, 대기의 신 엔릴은 50, 달의 신 난나는 30, 태양의 신 우투는 20이다. 태양신 우투가 들의 신 난나보다 서열이 낮은 셈이다.
이는 수메르인이 달을 숭배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들의 창세신화에서 먼저 세상을 비춘 것은 태양이 아니라 달이었다. 수메르인은 왜 달이 먼저 세상을 비추었다고 생각했을까?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밤하늘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맑은 날 밤에 하늘을 보면 달이 하늘 가운데 떠 있고 그 뒤로 수많은 별이 자리하고 있다. 달은 별들의 '왕', 우주의 중심으로 보인다. 또한 달은 태양보다 친근한 존재였다. 달은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들이 그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반면, 태양은 늘 고정된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그 이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태양은 실질적으로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즉 계절의 변화나 시간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준거를 제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보면 달이 세상의 변화를 주관한다고 생각될 수 있다. 수메르인은 달의 이런 효용을 알아보고 달이 태양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달과 늘 짝이 되는 것이 태양이다. 여러 종족의 신화를 보면 달과 태양은 같이 태어났으며 경쟁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에스키모 신화에 따르면 태양과 달은 어느 해안가에 살던 오누이였다. 짓궂은 오빠가 괴롭히자 여동생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태양이 되었고, 여동생을 쫓아 간 오빠는 달이 되었다. 달이 된 오빠가 굶주리자 태양이 된 동생이 음식을 주어 살려냈으나, 오빠가 또 잡으려들자 동생이 빵을 빼앗아 결국 오빠는 죽고 만다. 여기서 달은 사악한 존재로 등장하나, 에스키모 신화가 서양 문명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지는 않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달
최초로 태양을 숭배한 사람들은 이집트인이었다. 그들이 태양을 숭배했던 것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이집트인의 젖줄인 나일강은 규칙성으로 유명하다. 이집트에서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나일강은 매년 우기인 6월에서 10월 사이에 범람한다. 나일강은 범람할 때 상류의 흙을 실어 와 하류에 뿌려주어 땅을 기름지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을 정확하게 측정하여 농사의 효율성을 높이고 싶었다.
그들은 나일 강둑의 진흙에 커다란 갈대를 꽂아두고 언제 물이 불어나는지를 표시했다. 이를 나일 수위계라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수위의 규칙적인 변화를 통해 시간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수십 년간 이 변화를 관찰하던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하기 시작할 때 큰개자리의 별인 시리우스, 즉 천랑성이 정확히 새벽하늘의 태양이 떠오르는 자리에 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1년이라는 시간을 주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점을 착안하여 그들은 태양력을 만들었고 태양을 숭배했다.
이집트 신화에서 분명 주요 신은 태양신이다. 이집트의 태양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를 통해 이집트에서 태양 신이 세계의 창조자로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고, 산과 물과 바다의 창조자이고, 사랑의 근원인 '어머니가 되는 암소'의 창조자다. 나는 신들에게 영혼을 주고, 눈을 밝게 한 자이고, 나일강에 물이 흐르게 하는 자이고, 시간과 날짜와 해의 제삿날을 정하는 자이고, 나일강에 홍수를 일으킨 자이고, 물을 만들고 집에 음식을 마련해주는 자이고, 아침에는 헤펠라, 낮에는 라, 저녁에는 툼이라고 불리는 자다.
그렇다면 달은 어떤 존재였을까? 다소 의외지만, 이집트에서는 달도 긍정적인 존재였다. 이집트인들이 매우 중요시하는 토트라는 신이 있는데, 이 신이 바로 달의 신이다. 지혜와 창조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하는 토트는 지혜의 신인 따오기나 따오기의 머리를 가진 인간으로 표현되는데, 이때 따오기의 굽은 부리가 초승달을 상징한다. 토트는 참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는 태양신 라의 장남이고, 이시스의 형제이며, 호루스의 보호자다. 세트 신이 오시리스를 죽였을 때, 그는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를 도와 호루스를 지켰다. 이집트인들이 만든 <사자의 서>에 따르면 태양신 라는 자신이 '지하세계의 축복받은 자들을 비추는' 동안, 토트에게 자기를 대신해서 하늘을 지배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태양이 가라앉으면 즉시 달이 떠서 세상을 비춘다. 이집트에서도 달은 결코 부정적이거나 악마적인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수메르인의 뒤를 이은 바빌로니아인의 신화에서 최초로 태양과 달이 대립적인 개념으로 등장한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바빌로니아 신화는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 후대에 남자 위주로 각색된 바빌로니아 신화에 따르면 창조의 신은 마르두크다. 태초에 끝없이 광활하고 엄청나게 깊은 심연이 있다. 그 심연 가장 깊은 곳에 흉측한 용의 모습을 한 여신 티아마트가 있었다. 밝은 빛의 무리들은 심연에서 올라와 천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 선한 존재들 가운데 먼저 라흐므와 라하무가 생겨났고, 다시 그들 사이에서 안샤르와 키샤르가 생겨났다. 다시 이 둘 사이에서 천상의 신 아누와 물의 신 에아가 태어났다.
암흑의 신 티아마트는 천상에서 선한 존재들이 번성하는 것을 보고, 그들과의 일전을 준비했다. 그녀는 바다 깊은 곳에서 괴물 군단과 사악한 용들을 불러 모았다. 안샤르 신을 비롯한 선한 신들은 좋은 말로 그들을 타이르려고 했으나 악한 신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안샤르는 에아의 아들인 마르두크 신에게 우주 만물의 통치권을 주고, 선한 신들의 힘을 모아 악한 신들과 싸우도록 했다. 마르두크는 악한 신들을 물리치고 그 대장인 티아마트를 죽였다. 그러고는 티아마트의 시체를 갈라 그 한 조각으로 땅을 만들고, 다른 한 조각으로 천상을 덮는 하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창공에 등불을 달았는데, 대낮을 만드는 으뜸 빛인 니비루와 밤에 은은한 빛을 내는 난나루를 만들었다.
이렇게 바빌로니아 신화는 이원적인 구도를 갖고 있다. 즉 선악의 대립이 뚜렷하고, 결말은 선한 신이 승리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훗날 조로아스터교가 이 신화를 계승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선한 신 아후라마즈다와 악한 신 아리만(앙그라 마이뉴)의 대립으로 세계 역사가 진행되며, 결국 선한 신 아후라마즈다가 승라하여 모든 사람이 부활한다고 믿는다. 물론 조로아스터교의 선한 신과 악한 신은 자연의 형상을 갖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바빌로니아의 초기 신화와 질적으로 다르다.
바빌로니아에서도 달이 악한 존재라는 개념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따. 마르두크가 승리하고 악한 신을 몰아냈을 때 달을 만들었고, 그 달도 빛을 내기 때문에 선한 신들의 편에 속한다. 다만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악의 신들이 어둠을 지배하고, 어둠과 밝음의 대립으로 세계 역사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밤에 뜨는 달이 어둠의 지배자라는 생각을 갖게 했을 수도 있다. 특히 조로아스터교가 불을 숭배했다는 점은 이후 태양신 숭배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보름달과 악마가 연관되다.
이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살펴보자. 사실 수메르, 바빌로니아, 이집트 신화는 현존하는 자료가 단편적인 데다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논의가 추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그리스로마 신화는 방대한 자료와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달은 아르테미스, 헤카테, 루나, 셀레나 등으로 불린다. 헤카테가 그믐달을, 루나가 보름달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여러 명칭이 호뇽될 때가 많았다. 헤카테는 호메로스의 작품에는 나오지 않으며 헤시오도스의 작품에서야 등장하는데, 원래는 헤시오도스는 고향인 보이오티아 지방의 지모신이었다.
헤카테의 출생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된다. 티탄족인 아스테리아와 페르세스의 딸이라는 설이 가장 우세하지만, 제우스의 딸이라는 설도 있고, 밤의 여신 닉스가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헤카테는 제우스가 매우 존경한 여신으로, 땅과 바다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헤카테는 저승과 결부되었다. 그녀는 저승세계의 여왕으로서 한밤중에 지옥의 개들을 데리고 나와 십자로나 세 갈래 길에 나타났다. 따라서 그녀는 횃불을 든채 무서운 개를 데리고 세 갈래 길에 서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었다.
고대인들은 세 갈래 길이나 십자로가 생의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여러 길이 나뉘고,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인 곳도 삼거리 길이었다. 고대인들은 그런 곳에 악마와 마녀가 살고 있기 때문에 제물을 바쳐 그들을 달래야 한다고 믿었다.
헤카테가 달과 깊이 관련된 것은 사람들이 그녀를 세 갈래 길의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밤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달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헤카테가 달의 여신으로서 정체성을 점차 확립해가면서 사람들은 그녀가 완전한 자태를 드러낼 때, 즉 보름달이 뜰 때 그녀에게 제물을 바쳤다. 헤카테는 달, 그리고 밤과 일치되면서 점차 유령과 마법의 여신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그녀가 악마의 영역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즉 초기에 그녀는 밤의 방랑자를 보호하는 신이었지만, 밤길을 걷던 사람들은 세 갈래 길에서 제물을 바치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그녀에게 전이시켰다. 그 결과 헤카테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밤과 어둠으 지배하는 신이 되었다.
그녀는 마술과 주술을 주관하는 신으로 여겨지면서 "보통 페르세라 불리는 키르케의 어머니가 되었고 특히 모든 마녀의 여시조가 되었으며 메데이아는 그녀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에서 헤카테는 초기의 긍정적이고 선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마술을 지배하는 악하고 무서운 여신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밤에, 특히 보름달이 뜰 때 활동한다고 여겼다. 즉 보름달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생각은 그리스 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붉은 달이 뜨는 날, 여신 헤카테가 저승의 개를 이끌고 나타나 저주를 뿌린다." - 고대 그리스 신화
달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 까닭은?
헤카테는 왜 보름달, 저승, 밤과 연계되면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은 달을 여자와 결부시켰다. 원시시대의 남자들은 생리하는 여성과 성관계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자신들이 성행위를 포기하고 있는 동안 밤마다 달이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한다고 생각했다. 원시인의 심성을 물려받은 고대, 중세인은 여자 몸의 특징이 달의 특징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생리주기가 29.5일인데 이 주기가 곧 달의 주기와 일치한다고 여긴 것이다. 많은 의사, 과학자 들이 이런 생각을 전파했다.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여성을 달과 일치시켰고, 여성이 밤과 어두운 지옥을 상징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믿음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하지 않았을까.
이런 변화는 최초의 지모신이자 창조의 신이던 여신들이 악한 존재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최초의 창조신이자 만물의 어머니인 티아마트는 원래 선한 존재였다. 그녀는 자식들을 죽이려는 마편 압수를 말리려고 애썼다. 훗날 그녀는 사악한 신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온갖 괴물을 낳아 선한 신들을 죽이려 했다. 티아마트뿐 아니라 구석기 말기 이래 인류가 숭배했던 지모신들은 생산의 신이자 선한 신이었으나, 최소한 선악의 개념이 없는 신이었다. 그러나 농경 사회가 발달하고 계급 분화가 심해진 철기시대에 부권 중심적인 사회가 성립되었고, 이러한 사회는 신화마저 제치고 최고신이 되었으며, 여신들은 무능력하거나 악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체제를 확고히 수립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따. 남자들은 신석기시대 이후 생산 활동과 무력행사를 통해 사회를 지배하게 되자, 그때까지 전해 내려오던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을 조작하여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여성 신들이 부정적이고 탐욕스러운 악마로 변해버렸다.
고대 종교들이 이와 같은 변화를 주도했는데,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이러한 역할을 맡았다. 로마 시대에 기독교가 중심 종교로 발달하면서 헤카테와 밤, 그리고 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저서 <신국론>에서 세계를 신의 나라와 악마의 나라의 대립으로 설명했으며, 이교도 신들을 악마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존재로 비하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초기 교부들이 악마가 끊임없이 선한 존재, 특히 기독교 신자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생각은 중세의 가장 큰 이단이었던 마니교와 일맥상통한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종교로, 조로아스터교와 같이 선한 신과 악한 신의 대립으로 세계 역사가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마니교는 광명의 신이 최후에 승리를 거둘 테지만, 현세에서 악마는 광명의 신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마니교는 로마제국 말기부터 중세까지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세 성직자들은 마니교를 공격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마니교는 중세인들의 심성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이 존재하듯 악마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악마는 매우 현실적인 존재여서 늘 인간의 모습과 유령의 모습을 하고 세상에 나타난다고 믿었다. 악마는 끊임없이 변장술을 부리며 나타나 사람들을 유혹하고, 때로는 선한 자들을 억압한다. 그리고 온갖 마법을 부려 기적을 이르키는데, 때때돌 악한 자들의 몸으로 들어가 그를 자신의 대리자로 삼는다. 그렇게 악마와 관계를 맺거나 악마를 자신의 몸으로 불러들인 자들이 바로 마녀이고 마술사다.
이렇게 믿은 중세인들은 밤을 초자연적인 위험이 존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밤은 유령과 악마가 활동하는 시간이므로, 온전한 사람이라면 밤에 외출하거나 노동해서는 안되었다.
독일의 연대기 작가 티트라르는 11세기 초 중세인들이 믿었던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하는데, 이런 이야기도 있다. "신이 산 자에게 낮은 주었듯이 죽은 자에게 밤을 주었다." 그 밤에 마녀들은 빗자루를 타고 숲으로 날아가 악마와 성관계를 맺고, 온갖 축제를 열었다. 이렇게 밤은 악마의 시간이었고, 그 밤의 주재자인 달은 악마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중세에는 '낮과 같은 아름다운'이라는 관용구가 많이 사용되었다.
보름날이면 늑대가 되고픈 남자들
보름날에 사람이 늑대가 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세계 여러 지역에 퍼져 있던 그런 관념은 단순히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중요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보름날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영장류 가운데 하나인 마다가스카르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도 미치곤 했다. 이 원숭이의 암컷들은 본능적으로 생식주기를 일치시키는데, 보통 1년에 한번 보름달이 뜨는 날 밤이면 발정기의 절정에 이른다. 암컷들인 발정하면 모든 수컷이 흥분해서 날뛰고, 환한 보름달 아래 집단 섹스 파티를 벌였다. 이런 일이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양서류가 보름달이 뜬 날 일제히 짝짓기를 한다. 이를테면 개구리, 두꺼비 등은 보름달이 뜬 날 한곳에 모여 집단 짝짓기를 하곤 한다.
이런 현상은 인간에게도 관찰된다. 인간의 암컷 즉 여자들도 일찍부터 집단적으로 생리주기를 일치시켰다. 다시말해 여자들은 무리를 이룰 경우 생리주기를 일치시켜 남성에게 공동으로 대응했다. 이는 특정한 날에만, 그것도 여성을 위해 큰 희생을 한 남성에게만 성행위를 허락하기 위한 잔략이었다.
물론 여성들이 인위적으로 월경주기를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달이 미묘한 영향을 끼쳐 그들의 월경주기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인공조명으로 여성의 생리 리듬이 바뀌기 전에는 월경의 평균 주기가 29.5일로 달의 주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렇게 보면 여성의 생리 주기는 아마도 달빛과 관련하여 현대에는 조명과 관련이 있다. 여성들은 일찍부터 달과 그들의 몸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월식 때문에 집단으로 모여 "달아, 이겨라"를 외치며 달을 응원하곤 했다.
더욱이 여성들은 주기를 29.5일로 맞출 뿐 아니라 동시에 생리를 했다. 즉 집단 내의 모든 여성이 거의 동시에 생리를 시작했다가 멈췄다. 그들은 초승달이 뜨는 시기에 생리를 시작했고, 보름달이 뜰 때면 배란이 이루어져 성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했다. 따라서 원시인들은 보름달이 뜨는 날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처럼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보름달이 뜬 날에 수태되었다.
인간에게는 이런 날이 매달 찾아왔다. 집단 광란의 날이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에게는 1년에 단 1번이었지만, 인간에게는 12번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훗날 문명이 발달하여 성욕을 맘껏 발산할 수 없어진 남자들은 그날 다시 '늑대'로 돌아가고픈 욕구를 느꼈다. 이런 욕구가 인간 사회 저변에 강렬하게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문화의 여러 시대 사람들이 보름달이 뜨는 날을 특별한 날로, 위험스러운 날로 인식했던 것이다.
왜 하필 늑대가 되었을까?
지금까지 달이 점차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고, 보름달이 광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여 정상적인 사람들조차 알 수 없는 신비에 휩싸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제 보름달이 뜰 때 늑대인간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자나 표범이 아니라 늑대로 변한 걸까?
사람이 늑대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리스 신화의 한대목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중앙에 있는 아르카디아에 리카온 왕이 살았다. 그는 무척 경건한 인물이어서 종종 신들이 그를 방문하곤 했다.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방문하는 낯선 이들이 정말 신인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어린아이들을 죽여 음식을 내놓았다. 그 자리에 있던 제우스는 분노하여 리카온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리카온을 늑대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하여 남자와 늑대는 서로 바뀔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신화여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그리스 신화가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신의 왕인 제우스도 수시로 짐승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늑대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전한다.
스퀴타이족과 스퀴티스에 사는 헬라스인들에 따르면 네우로이족은 누구나 매년 1번씩 며칠 동안 늑대가 되었다가 도로 사람이 된다고 한다. 나는 물론 이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그들은 사실이라고 우기며 명세까지 한다.
네우로이족은 슬라브족의 일족으로 드네프르강과 부크강 유역에 살았다. 따라서 늑대인간의 전설은 슬라브족에서 기원한 민간신앙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늑대로 변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전혀 알 수 없다. 특별히 사악하고 괴이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행동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을 테고, 그랬다면 기록에 남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늑대인간의 전설은 중세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사실은 1692년 위르겐스부르크에서 열렸던 재판에서 확인된다. 이 지역의 농부였던 80대 노인 티스가 재판정에 서서 자신이 '늑대인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티스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다른 늑대인간들과 함께 늑대로 변해 바다 끝에 이는 지옥으로 가서 악마, 마녀들과 싸웠다. 이런 늑대인간은 티스의 동네뿐 아니라 독일과 러시아 지역에도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늑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티스라는 노인이 거짓말을 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는 자신과동료들이 늑대로 변해 그런 '전투'를 주기적으로 치른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꿈 혹은 환각 속에서 늑대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티스가 그런 환상을 보았다는 것은 늑대인간 전설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말해준다.
중세교회는 이와 같은 민중 신앙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상에 늑대가 너무 낳아서 민중이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는 가능한한 늑대를 많이 없애려고 했다. 1114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종교회의는 늑대사냥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을 제외한 토요일마다 사제와 기사, 농민이 늑대사냥에 나서야 했다.
여기에는 티스로 대변되는 민중과, 재판관들로 대변되는 엘르트의 갈등과 대립이 나타나 있다. 원래 민중은 태곳적부터 여러 민간신앙을 갖고 있었다. 고대 말에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민중은 그런 신앙을 '기독교화'했다. 즉 자신들의 원래 신앙에 기독교의 색채를 입히고는 그것이 하느님이 허용한 신성한 관습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데 고대 로마인은 친척을 매장한 후 기념일이 되면 친척의 무덤에 가서 기념 의례를 치렀다. 그 기념 의례는 작은 축제와 같아서 상당히 많은 술과 춤이 동반되었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인은 이 관습을 버리지 않고 조금 수정해서 유지했다. 그들은 움주를 약간 줄임으로써 그 관습을 하느님이 허락했다고 생각했다.
늑대인간 이야기도 이러한 기독교화의 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고대 유럽 일부 지역에 인간이 늑대가 될 수 있다는 민간싱앙이 있었는데, 중세 기독교인 가운데 일부가 이 신앙을 기독교식으로 변형했다. 그들의 생각에 늑대는 사나운 짐승이므로 사람도 늑대로 변한다면 '유능한 싸움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유능한 싸움꾼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악마와 싸우기 위해 강한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중은 늑대인간 신앙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유지했다.
늑대인간 신화는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중세 지식인들은 이런 민간신앙을 크게 제어하지 않았지만,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시작되면 신교 지도자들은 중세 가톨릭 내에 존재하는 이런 민간신앙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뿌리 뽑으려 했다. 신교의 지도자 칼뱅은 교회에 있던 성상이나 성화는 물론 십자가상까지 없애라고 명령했다. 가톨릭 지도자들도 신교의 이런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으며 중세 민간신앙 가운데 존재하는 '미신'을 철폐하려고 했다. 티스의 재판에서 재판관들이 티스를 악마의 사냥개로 규정하고 그를 미신과 우상을 숭배하는 자라고 몰아세웠던 것도 바로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물론 근대 초에 벌어진 이 민간싱앙과 엘리트 신앙의 전투에서 승자는 지배층이었다. 엘리트들은 민간신앙을 천박하고, 사악하며, 근거 없는 미신으로 규정해버렸다. 그리하여 민간신앙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색채를 띠게 되었다. 16~17세기 이후 늑대인간 신앙에도 이러한 윤색 작업이 수행되었다.
고대부터 인간이 늑대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이 퍼져 있었지만, 늑대인간이 반드시 사악하다는 관념이 있었던건 아니다. 늑대로 변한 인간은 악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 늑대인간 신앙을 갖고 있던 중세 슬라브족의 관습에 따르면 원래 늑대인간은 자살하거나 교회에서 파문당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매장의식을 받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무덤에 누워있다가 밤이 되면 늑대가 되어 사방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며, 교회의 용서를 받으면 늑대인간이 되지 않고 영원한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티스의 늑대인간도 그랬다. 그 늑대인간은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었다.
16~17세기 지식인들은 다소 미신 같고 이교도적인 민간신앙을 더는 용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런 신앙이 사악한 미신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교라는 권력을 동원하여 엉터리 증거를 제시하면서 멀쩡한 사람을 늑대인간이라고 재판하여 죽이기도 했다. 16~17세기에 늑대인간으로 붙잡혀 재판을 받고 처형된 사람들이 어렷 있는데, 그 예로 1589년에 처형당한 페터를 들 수 있다. 그는 법정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다음과 같은 판결을 받았다.
페터는 25년간 마녀와 음행을 했을 뿐 아니라 딸 베라와 근친상간을 했다. 그는 띠를 하나 가지고 있어 그것을 몸에 두르면 늑대가 되었다. 그러나 띠를 풀면 그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늑대의 모습으로 5~6세의 아이 13명을 죽이고 먹았다.
이렇게 근대의 지배자들은 민중 속에 퍼져 있던 이교적인 믿음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뿌리 뽑으려 했고, 늑대인간은 더욱더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늑대인간 신앙과 보름달 신앙이 연계되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어찌 보면 신비롭고, 또 어찌 보면 사악한 기운이 터쳐 나올 듯하다. 바로 그날 사악한 자들이 악마의 기운을 받아 늑대인간으로 변해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흉악한 짓을 벌인다. 16세기 이후 이런 민간신앙이 유럽전역에 널리 퍼져 늑대인간 신화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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