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애와 전쟁의 여신 by 여신의 역사

Realize 2022. 6. 8. 13:07

여신의 역사 p25

이 책은 바빌론의 성풍속사와 함께 읽으면 한층 더 재밋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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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남작과 고대 수메르의 남녀변환 주술

대한민국 모임의 시작,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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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와 전쟁의 여신

불타는 영토를 지배하는 여신

공포의 갑옷을 입고

화염처럼 붉은 힘을 타고 (...)

홍수와 폭풍과 태풍으로 온몸을 감싼 (...)

전쟁을 계획하는 자

적을 파괴하는 자 (...)

이난나가 외친다 :

너의 목을 비틀고

너의 두꺼운 뿔을 움켜쥐고

너를 먼지 속으로 집어 던지고

증오하는 마음을 담아 너를 짓밟고

무릎으로 너의 목을 짓뭉개리라 (...)

전쟁은 그녀의 놀이라

싸우는 데 결코 질리지 않네 (...)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전사

소용돌이치는 폭풍처럼 달려드네 (...)

야생 황소 같은 여왕

억센 힘의 여주인

대담하고 강인하네 (...)

- 엔헤두안나, 이난나와 에비, 기원전 2350년. 엔헤두안나는 역사상 최초로 이름이 알려진 여성 시인이다. 이 기도 시는 아프로디테의 조상인 이난나 여신이 보여주는 전사 같은 모습을 노래한다. -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복잡한 존재다. 사실 아프로데티는 탄생을 두 번 거듭했다. 한 번은 사이프러스의 바닷가에서 다산과 생식을 상징하는 고대 신으로, 다른 한 번은 사이프러스보다 더 동쪽에서 흉포한 전쟁의 여신으로 태어났다. 이 전쟁의 여신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지역과 레반트 전역에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의 이라크와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터키, 이집트에 걸친 지역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지켜보며서 인간 행동 속에 얽힌 격정과 욕망의 본성을 설명하려고 성과 폭력의 신을 만들어냈다.

유골 증거를 보면 이 시기가 잦은 대립과 격동의 시기이자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의 시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의 이키즈테페에서는 청동기 초기 유적지가 발굴되었는데, 그중 한 집단 매장지에서 식별 가능한 유골 445구가 나왔다. 청년의 유골이나 노인의 유골이나 모두 머리에 심각한 상처가 있었고, 남성 유골의 43%에는 폭력으로 생긴 외상의 흔적이 있었다. 이 시기에 여성은 대체로 12세가 되면 아이를 낳았고, 24세가 되면 손자를 보았으며, 30세에 죽음을 맞았다. 남성은 도끼에 갈비뼈와 넓적다리가 베이고, 화살에 두개골이 뚫리고, 투창에 등이 찔렸다. 당시 남성들은 전투에서 다친 후에도 상처를 대충 치료하고 다시 전쟁터로 나간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여성들도 함께 전장으로 나갔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강렬한 욕망과 충동은 사랑을 향한 욕망이든 전쟁을 향한 충동이든 결국 그 기원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 사람들은 신과 반인반신, 정령들이 어디에나 있고 어디든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에 격렬한 욕정으로 들끓는 정력적인 신들이 모든 혼란과 불안정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뜨거운 욕망에도 신성한 실체를 부여했다.

사회가 갈수록 군사화되고 서서히 남성이 공동체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직관적이지 않지만 매혹적이었던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재된 신은 자취를 감추었다. 욕망을 상징하는 사나운 신에게는 이제 여성성만 남았다.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컸던 시대, 원래 '생명의 순환'을 상징했던 여신들은 죽을 운명을 예고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전쟁과 열정의 난폭함이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되자 중동 전역에는 전쟁과 성욕을 관장하는 혈기 왕성과 음탕한 여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메르에서는 이난나라는 이름으로, 아카드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이슈타르로,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런 여신들은 갓 세워진 도시에서 특히나 열렬히 숭배받았다. 이난나를 모시는 지성소는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만 180군데 넘게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심 속 이슈타르 사원은 경배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상품이 거래되고 사상과 지식이 오가는 곳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는 병에 걸리자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오늘날의 이라크 모술)에 있는 이난나 사원에서 여신상을 꺼내 룩소르의 나일강 강둑으로 가져와달라고 요청했다. 파라오는 흉포한 여신의 힘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활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로 자주 묘사되는 이난나와 이슈타르, 아스타르테는 원래 금성, 즉 오늘날 우리가 비너스라고 부르는 행성과 연관된 천상의 존재였다. 별 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금성은 하늘에서 일관된 경로로 이동하지 않는다.(한때 금성은 새벽에 뜨는 샛별과 저녁에 뜨는 개밥바라기라는 서로 다른 두 별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금성이 여신의 변덕스러운 본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금성이 이동하듯, 여신도 전쟁하고 정복하기 위해 길을 떠나야 하며, 여신의 힘이 금성 그 자체에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기원전 680년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에사르하돈은 조약을 위반한 자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여서 우레 같은 소리로 고함쳤다.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인 금성이 네놈들의 아내가 적의 품에 누워 있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하시길......"

바빌론에서는 왕궁의 동쪽에 거대한 성문을 지어 이슈타르에게 바쳤는데, 그 문에는 '모두를 정복한 여신'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흰옷을 입은 이난나는 절대적 힘을 지닌 변덕스러운 십 대 소녀였다.(전쟁의 여신인 탓에 가끔 턱수염이 달린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이난나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늘 뭇 남성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한편 아프로디테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내세울 수 있는 여신은 바로 페니키아의 아스타르테다. 아스타르테는 위풍당당한 선박의 뱃머리에 주로 그려졌다.

요르단 남부에 있는 붉은 사막 와디 럼에서 북부에 있는 검은 현무암 사막으로 이동하다가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레바논의 비옥한 베카 계곡 경사지를 통과하다 보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아스타르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비너스의 먼 조상인 아스타르테는 뿔이 달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숭배받던 자매 이난나(2장의 앞머리에 실린 찬가의 주인공)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애의 힘부터 전쟁과 죽음, 파괴까지 주관했다. 아스타르테는 페니키아 전 지역에서, 특히 티레와 시논, 비블로스 같은 레바논 지중해 연안 도시에서 열렬한 숭배를 받았다. 청동기와 철기시대에 지어진 아스타르테 사원 자리에는 훗날 고대 아프로디테 신전이 들어섰다.

시리아 남서부의 다라 근처, 요르단의 북쪽 국경에도 아스타르테를 모셨던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창세기와 여호수아에서 '아스다롯'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내가 이곳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이 이 지역에 대대적인 공습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가 가득했고, 쏟아지는 폭탄에 동서양의 공동 유산이 파괴되었다. 시리아 남부 부스라의 유적지에서는 정교한 고대 로마 극장이 박격포 포격에 훼손당했다. 부스라 박물관에 있던 아프로디테 여신상 조각도 많이 사라져버렸다. 행방불명된 여신상 중에는 그리스 파로스섬의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도 있었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시리아인들이 국경으로 몰려들었고, 절망에 빠진 채 보호소에 수용되기만을 기다리는 난민들이 줄을 이었다. 전투가 꼭 코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혼란스러운 사태를 몸소 겪고 나자 아프로디테의 조상이었던 여신들이 지닌 무시무시한 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 여신들은 마음을 달래주는 편안한 존재가 아니었다. 통제와 피, 공포, 지배, 황홀감, 정의, 아드레날린, 희열을 향한 열망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성행위로 이어지기도 하며, 세상을 뒤흔들고 바꿀 수 있다. 호메로스 시대부터 줄곧 작가들은 군사 침공을 가리키는 말과 성기 삽입을 표현하는 말을 하나로 생각해왔다.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에서 '미그뉘미'는 군사 침략과 성기 삽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었다. 고대 세계에서 에로스(사랑과 열정, 욕망)는 에리스(분쟁, 불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격렬한 열정의 여신들을 향한 숭배가 고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대인들은 욕망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이미 알아차렸던 것 같다. 아프로디테의 조상들은 이러한 깨달음의 화신이었다. 고대 문명의 여러 이야기들은 보면 아프로디테의 조상들은 아주 아름다운 존재였지만,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닌 살벌하고 끔찍한 신이었다. 아프로디테와 비너스는 공포를 주는 여신들의 후손인 것이다.

이난나와 이슈타르, 아스타르테는 활발하고 움직이고 이동하는 여신이었다. 우리는 동양에서 태어난 사랑과 증오의 여신들이 길을 떠나 서양으로 넘어간 여정을 추적해볼 수 있다. 여신들은 그 여정을 거치면서 모습이 변했고, 마침내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분열과 결합의 과정을 살펴보려면,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있는 레반트 지역과 중동의 사막을 떠나 이제 전설로 가득한 섬, 사이프러스에 남겨진 아프로디테의 흔적을 따라가야 한다.

사이프러서의 남동부 해안가, 라르나카 국제공항 근처로 가보자. 지나가는 비행기와 겨울철 바닷가 염습지에 모여 있는 플라밍고 무리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플라밍고는 지난 5천 년 간 해마다 사이프러스의 물가를 찾았다) 할라 술탄 테케의 고대 대도시 발굴터에서 작업하는 고고학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청동기 도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 도시는 약 50만m2 넓이까지 확장되었는데, 이는 축구 경기장 50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면적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바람에 닳아버린 할라 술탄 테케는 그 존재 자체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 섬에서 정착민과 무역상들이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동양에서 온 이주민들은 황소 도축 및 숭배 같은 새롭고 낯선 의례와 관습을 들여왔다. 이들의 문화는 풍요의 신을 섬기는 사이프러스의 토착 종교와 뒤섞여갔다.

이곳의 회갈색 진흙에서는 도시 유적과 거주민 유골 그리고 고대 이집트와 그리서 서부에서 건너온 값진 고고학 유물이 매 계절마다 출토된다. 그중에는 아스타르테-이슈타르 여신이 새겨진 반짝이는 황금 마름모꼴 장식도 있다. 아프로디테의 호전적인 증조할머니는 분명 유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아스타르테-이슈타르가 도착한 곳은 임자 없는 빈 땅이 아니었다.

남근 형상의 머리가 달린 기묘하지만 이상하게 아름다운 인물상이 만들어지던 시대가 저물고, 사이프러스에서는 토착 사제이자 여왕 중의 여왕인 여신을 새로이 경배하기 시작했다.(여왕을 고대 그리스어로 아나사라고 한다) 새로운 여신은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의 힘이자 향수를 무척 좋아했던 육감적 여왕인 듯하다. 최근 사이프러스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에 존재했던 향수 작업장이 발굴되어, 아프로디테의 섬에서 윤기 흐르는 향유로 자연의 여신을 숭배했다는 문헌 내용에 힘을 실어주었다.

향수는 사피으러스에서 엄청나게 인기 있는 수출품이었다. 사이프러스는 독특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아열대 환경과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에서 원료를 들여오기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이프러스의 여신 아프로디테 자체가 향기로운 존재였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우미의 여신이 아프로디테를 씻겨주었다고 노래했다. 아프로디테는 사이프러스의 파포스에서 향기를 풍기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목욕했다.

그러자 아프로디테, 웃음과 미소를 사랑하는 여신은

키프로스의 파포스에(닿았으니), 여신이 다스리는 그곳에는

향을 피워놓은 제단이 있다네. 그곳에서 우미의 여신이

아프로디테를 씻기도 향긋한 기름을 발라주었네.

영생하는 신들의 살갗에서 반짝이는 기름과 같았다네.

우미의 여신이 아프로디테에게 아름다운 옷을 걸쳐주었네.

얼마나 경이로운 모습인가.

동양의 여신이자 여왕인 아스타르테-이슈타르는 사이프러스에 본래 존재했던 자연과 다산의 여신을 닮아갔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로디테는 점차 형태를 바꾸어갔다.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싶어 했던 사람들 덕분에, 그들이 섬기던 신들은 서로 뒤섞여 또 다른 모양의 '신성한 사생아'를 낳았다.

이 혼합된 형태의 여신은 여러모로 관능적인 신이었다. 사이프러스에서 발굴한 많은 여신상들은 이때부터 기이한 외형을 띠었다. 머리는 새와 같고 두 귀에는 구멍이 두 개씩 뚫려 있으며, 품에 아기를 안고 있다. 또 대체로 황금 목걸이와 길게 늘어지는 고리 모양 귀걸이로 호화롭게 치장하고 있다. 이 여신은 불멸의 신들이 사는 세상과 필멸의 인간이 사는 세상, 즉 자연 세계와 초자연 세계 양쪽에 한 발씩 딛고 서 있는 것 같다. 섬 전역에서 발견되는 이 숭고한 존재들은 현지인에게나 방문객에게나 이곳이 가능성으로 충만한 땅이자, 여러 대륙의 문화가 뒤섞인 문명의 도가니였음을 일깨워준다. 사이프러스는 인간과 신 모두 소유권을 주장할 만큼 훌륭한 영토였다.

이때 사이프러스에서는 풍요로운 천연자원, 특히 유례없이 풍부한 구리층 덕분에 문화가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 섬에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선사시대 광산의 갱도 근처에서 구리를 채굴해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핵심적인 구리 생산지 주변에서 여신을 모시는 사원이 발견되었다. 구리는 청동기 필수품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이므로 매우 중요했다. 기원전 1350년경 한 개인이 쓴 놀라운 편지 '아마르나 문서'를 잠시 살펴보자. 상 이집트의 비옥하고 번화한 나일강 강둑에서 발견된 이 편지는 중동의 공용어였던 아카드어로 적혀 있는데, 여기에 사이프러스에서 구리를 수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구리를 주석과 합금하면 청동기 세계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청동이 된다. 청동으로는 가벼우면서도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다. 그 시대에는 모든 집단에서 청동무기를 갈망했기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청동 무기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집단은 부유한 전사와 영웅이 되었다. 아프로디테의 섬, 키프로스는 '구리의 섬'이었으며, 구리는 인간 사회가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연료가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이런 천연자원을 통제하는 초자연적 신령이 인간의 모습을 한 너그러운 신이라고 생각했다.

당대 사이프러스에서는 경이로운 장신구도 생산되었다. 섬세한 청동 브로치, 황금 왕관, 큼지막한 홍옥수 구슬이 달린 반짝거리는 목걸이 등 온갖 사치품과 생필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새로운 물질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출토물 가운데는 석류 모양으로 만든 순금 펜던트도 있다. 펜던트의 표면에는 조그마한 구슬이 삼각형 모양으로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신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잡아끄는 조화로움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놀랍도록 현대적인 느낌을 풍긴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청동과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로 인한 연기와 재, 쉭쉭거리는 소리, 열기 속에서 아프로디테의 신성을 기렸다. 고대부터 불과 야금술은 항상 아프로디테 숭배에서 중심이 되는 요소였는데, 이는 틀림없이 아프로디테의 선사시대 화신인 전쟁의 여신들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그리스신화에서 아프로디테가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망치와 모루를 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했으리라. 아프로디테는 많은 측면에서 구리, 청동과 관련이 있다.

아프로디테와 그 조상들은 단순히 난잡한 성애와 전쟁의 수호자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열렬하고 과격한 문화 풍토, 잔혹하지만 그만큼 찬란하고 요동치는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신성하고 핵심적인 존재였다. 이 여신은 문명의 동반자였고, 좋든 나쁘든 인간 사회가 품은 야망의 총체였다. 아프로디테는 다면적이고, 휘황찬란하고, 지독하리만큼 섬뜩한 힘이었다. 이난나에게 바치는 청동기 초기의 시이자 기도문을 읽어보자.

아버지께서 나에게 제사장직을 주셨네.

(이후 이난나가 무엇을 받았는지 알려주는 구절이 이어진다.)

그가 나에게 신성을 주셨네 (...) 안내자의 임무를 주셨네 (...) 지하 세계로 내려가게 하셨네 (...) 지하 세계에서 올라오게 하셨네 (...) 단도와 장검을 주셨네 (...) 검은 옷을 주셨네 (...) 색색의 화려한 옷을 주셨네 (...) 풀어 내린 머리카락을 주셨네 (...) 묶어 올린 머리카락을 주셨네 (...) 깃발을 주셨네 (...) 화살통을 주셨네 (...) 성교와 애무의 기술을 주셨네 (...) 남근의 키스를 주셨네 (...) 매춘의 기술을 주셨네 (...) 거침없이 연설하는 기술을 주셨네 (...) 악의에 차서 비방하는 기술을 주셨네 (...) 세련되게 연설하는 기술을 주셨네 (...) 숭배받는 매춘부를 주셨네 (...) 신성한 여인숙을 주셨네 (...) 천상의 성스러운 여사제를 주셨네 (...) 노래하는 기술을 주셨네 (...) 영웅의 기술을 주셨네 (...) 힘의 기술을 주셨네 (...) 배반하는 기술을 주셨네 (...) 솔직해지는 기술을 주셨네 (...) 도시를 약탈하게 해주셨네 (...) 비탄을 자아내게 해주셨네 (...) 진심 어린 환희를 주셨네 (...) 기만을 주셨네 (...) 반란자의 땅을 주셨네 (...) 친절의 기술을 주셨네 (...) 여행을 주셨네 (...) 안전한 거처를 주셨네 (...) 가축우리를 주셨네 (...) 양을 치는 우리를 주셨네 (...) 공포를 주셨네 (...) 충격을 주셨네 (...) 경악을 주셨네 (...) 이빨이 날카로운 사자를 주셨네 (...) 불꽃을 일으킬 불쏘시개를 주셨네 (...) 불을 끄게 하셨네 (...) 함께 모인 가족을 주셨네 (...) 아이를 낳게 하셨네 (...) 분쟁을 일으키게 하셨네 (...) 조언하는 능력을 주셨네 (...) 마음을 달랠 힘을 주셨네 (...) - 이난나에게 바치는 기도 시. 기원전 2500년 경.

고대 세계에 거듭 나타났던 아프로디테의 가장 먼 조상들은 그야말로 문화를 발전시키는 버팀목이자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소동의 수조하였다. '아프로디테 원리'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관계를 맺고 인생을 경험으로 가득 채우게 하는 열정의 원리이며, 때로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짜릿한 삶을 살다가 잠시 긴장을 풀고 최대한 휴식을 즐기게 하는 열정의 원리였다. 의욕 넘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태어난 여신은 욕망과 그 욕망의 충족을 후원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극도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들의 수호자까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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