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심리학 해설 - 상징과 무의식

Realize 2023. 3. 29. 23:59

융의 심리학 해설

 

p.228~237

상징과 무의식

 

융은 상징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심리학자들보다도 깊이 연구하고 많은 저작을 남겼다. 그가 쓴 18권은 저작집 중 5권만이 종교와 연금술에서 상징체계를 논하고 있으며 그가 쓴 대부분의 내용에서 이 주제는 언급되고 있다.

 

‘태고 유형’과 ‘상징’은 융을 이해하는 중요한 두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 상징은 태고 유형의 외적 표현이며 태고 유형은 집단무의식 속에 깊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개인은 이를 모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태고 유형은 상징을 통해서만 표현되지만 언제나 개인의 의식적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집단무의식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는 상징, 꿈, 공상, 환상, 신화, 예술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이는 바로 융이 초기에 저술한 [리비도의 변천과 상징]에서 한 일이다. 이 책은 1911년에 쓰였으며 프로이트의 가르침을 받은 융의 이탈을 알리는 것으로 그 직후 두 사람은 완전한 결별을 맞게 됐다. 하지만 이 책은 융의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다루며 훗날 융이 정신영역에서 발견한 내용들의 초석이 되었다.

 

[변형의 상징]에서는 어떤 젊은 미국 여성의 잇따른 공상들을 철저히 분석했다. 융은 이 실례와 그 뒤 연구들에서 쓴 분석법을 ‘확대법’이라고 일컬었다. 이 방법에 따르면, 분석자는 특정한 언어 요소 또는 이미지에 관해 가능한 한 지식을 모두 모아야 한다. 이 지식은 여러 근원에서 얻을 수가 있다. 즉, 분석자 본인의 경험과 지식, 그 이미지를 만든 사람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연상, 역사상의 참고 자료, 인류학적 또는 고고학적 발견들, 문학, 예술, 신화, 종교 등이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이 [나방과 태양]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이 시는 태양으로부터 단 한번의 ‘기쁨의 시선’을 받을 수 있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나방에 관한 시다. 융은 태양을 구하는 나방의 이미지를 확대하는데 38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문장을 쓰고 있다. 확대 과정에서, 융은 괴테의 [파우스트], 아우렐리우스의 [황금 당나귀], 기독교의 [성경],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경전 구절, 마틴 부버, 토마스 칼라일, 플라톤, 근대시, 니체의 [어떤 정신분열병자의 환상], 바이런의 [시라노 드 베르주락] 등 기타 많은 참고자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확대법은 분석자에게 높은 수준의 학식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과 대담할 때 융은 자기가 다양한 분야에 깊은 지식을 쌓게 된 이유는 많은 종류의 환자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융이 그들의 꿈과 상징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문 분야에 대해 익혀야 했다. 예를 들어, 융의 분석을 받은 이론물리학자는 현대물리학의 용어와 개념으로 콤플렉스와 태고 유형을 표현할 것이다.

 

확대의 목적은 꿈, 공상, 환각, 그림처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의 상징적 의미와 태고 유형적 근원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융은 나방의 시에 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나방과 태양]의 상징 밑바닥을 깊이 파고들며 정신의 역사적 여러 층까지 내려가는 도중에 어떤 우상, 태양 – 영웅, 즉 ‘붉게 달아오르는 듯한 머리카락 위에 새빨간 왕관을 쓴 아름다운 젊은이’를 찾았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안은 인간은 영원히 접근할 수 없지만, 지구의 주위를 돌아 낮 다음에 밤을, 여름 다음에 겨울을, 삶 다음에 죽음을 끌어들이고, 다시금 빛을 되찾아 새로운 세대에 빛을 준다. 이 시를 쓴 여성은 진심으로 그(태양)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그 여자의 영혼(나방)의 날개는 그를 위해 타고 마는 것이다.” 태양(영웅)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고 유형의 표현, 즉 태양의 위대한 힘과 찬란한 빛을 경험한 수많은 세대의 인간의 산물을 본다.

 

융은 연금술에도 깊은 흥미를 느꼈다. 일반인들은 중세기의 연금술사들이 일반 쇠붙이를 금으로 변화시키려 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사실 연금술은 매우 복잡한 철학이며 화학 실험을 거쳐 표현되었다. 중세기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진지하게 연금술을 인식했으며 이 문제에 대해 방대한 문헌이 다루고 있다. 즉, 근대화학은 연금술에서 생겨났다.

 

융이 연금술에 강하게 끌린 이유는 연금술의 철학과 실험의 상징체계가 인간의 유전적 태고 유형을 상당 부분 드러내는 일이 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융은 그의 독특한 학문적 열정을 퍼부어 방대한 연금술의 문헌을 읽고 심리학에 대한 연금술의 의의에 관해 두 권의 책을 저작했다.

 

특히 [심리학과 연금술]은 심리학자의 흥미를 강하게 끈다. 그 속에서 융은 20세기 정신 분석을 맡고 있으므로, 연금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환자의 꿈과 환상 속에서 중세기 연금술의 상징체계가 어떻게 재현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꿈에서 몇 사람이 네모난 광장을 왼쪽으로 걷는다. 꿈을 꾸는 당사자는 한쪽 모퉁이에 서 있다. 걷는 사람들이 긴팔원숭이를 다시 조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네모단 광장은 완전한 금속을 재합성하기 위한 전 단계로서, 원재료 속 무질서하게 있는 금속 덩어리를 네 원소로 분해하는 연금술사를 뜻한다. 광장을 걷는 행위는 재합성해서 만들어지는 금속을 표현하며 긴팔원숭이는 낮은 금속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물질을 나타내고 있다.

 

융에 의하면, 이 꿈은 환자-합성 작업 옆에 떨어져 있는 사람-가 그 인격에서 의식적 자아가 지나치게 지배적 구실을 하는 일을 허락함으로써, 자기 본성에 있는 그림자의 측면을 개성화하여 표현하기를 게을리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 환자는 마치 연금술사가 낮은 금속의 적절한 혼합에 의해서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던 것처럼, 자기 인격의 ‘모든’요소를 통합함으로써만 내적 조화에 도달할 수 있다.

 

또 다른 꿈의 예를 보면 꿈을 꾸는 당사자 앞의 책상에 젤리와 같은 물질이 가득 찬 컵이 있다. 이 컵은 연금술사가 증류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를 나타내며, 컵 속의 물질은 연금술사가 현인의 돌로 변화시키고자 쓴 무형의 물질이다. 현인의 돌은 낮은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다. 이 꿈을 꾼 환자는 자기 자신을 더 뛰어넘은 – 통합된 – 사람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 또는 변화시켜야 함을 이 꿈의 태고 유형적 상징은 보여주고 있다.

 

물에 관한 꿈은 연금술사의 독한 술이나 생명수의 재생 능력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파란 꽃을 발견하는 꿈에서 꽃은 현자의 돌이 생산하는 곳을 나타낸다. 땅에 금화를 내던지는 꿈은 완전히 합성된 물질을 만들려는 연금술사의 이상에 대한 냉소를 나타낸다.

 

융은 환자가 수레바퀴를 끄는 꿈을 꾸면, 그 수레바퀴는 물질을 바꾸는 증류 현상의 순환 과정을 나타내는 연금술사의 수레바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또한 환자의 꿈에 나타나는 알은 연금술사가 제일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건드리는 금속을 표현하며, 다이아몬드는 연금술사가 가장 욕심을 내던 돌을 표현한다고 해석한다.

 

모든 꿈에서 환자가 자기 문제와 목표를 표현하기 위해 쓴 상징과, 중세기의 연금술사가 그 작업을 표현하기 위해 쓴 상징은 공통점이 많다. 오히려 연금술사가 사용한 도구와 물질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것이 이 꿈들의 뚜렷한 특징이다. 융은 연금술사의 문헌에 박식했기 때문에, 그 문헌들의 도해 속에 나와있는 내용이 그대로 꿈에 표현됨을 설명할 수 있었다. 융은 이 연구에서 화학 실험에 투입된 중세기 연금술사의 노력과 환자들의 노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금술사가 물질을 개성화 – 변형 – 해서 완전한 물질을 얻고자 했던 것처럼 환자는 그 꿈속에서 자기 자신을 개성화해서 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융은 꿈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가 연금술사의 작업 및 도구와 이어지는 것은 보편적 태고 유형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굳게 믿었다.

 

게다가 융은 아프리카를 비롯해 기타 지역에서 한 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미개민족의 신화에도 태고 유형이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태고 유형은 옛날과 지금의 종교와 예술에도 표현되어 있따. 융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각 개인이 태고 유형적 체험을 표현하는 형식은 다양하고 무한히 많지만, 연금술사의 상징처럼 그것들 전부는 일정한 중심적 유형의 변형들이며, 이 중심적 유형은 보편적이다.”

 

융은 흥미롭게도 한 논문에서 현대의 신화 ‘하늘을 나는 원반’의 상징을 논의한다. 그는 그 원반이 정말 하늘을 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증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기가 원반을 목격했다고 믿을까?’라는 지극히 심리학적 문제를 내놓는다. 이 문제에 답을 내기 위해 – 심리학자는 이 문제만을 논의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 그는 꿈, 신화, 역사, 예술적 참고자료를 인용해서 하늘을 나는 원반은 전체성의 상징임을 증명한다. 그 원반은 빛을 내며 만다라이다. 그것은 다른 유성 – 무의식 – 에서 지구로 왔으며, 그 속에는 기묘한 생물 – 태고 유형 – 이 있다.

 

융이 이 전형적 분석(확대)은 순전히 심리학적이며, 하늘을 나는 원반의 실재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만약 원반의 존재가 실재한다면 그 원반을 발명한 사람과 목격한 사람은 동일한 ‘통합’의 태고 유형에 지배되었다고 덧붙여 설명할 수 있다. 정신의 실재만이 심리학자의 흥미를 끄는 실재이다. 외부 세계의 실재는 자연과학의 문제이다.

 

융에 따르면 1950년대에 정점에 도달했던 하늘을 나는 원반, 즉 UFO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혼란한 세계, 대립의 결과였다. 사람들은 국가분쟁과 냉전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 조화와 통합이 이뤄지기를 바랐다. 융이 지적하기를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새로운 상징이 만들어지거나 낡은 상징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안정을 찾지 못하는 비인간적 시대에는, 자기의 개별성을 찾기 위해 점성술에 기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또 자기라는 상징적 표현을 구하기 위해 동양 종교와 철학 또는 원시 기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융의 상징 이론을 더욱 체계적으로 다뤄 보자. 융에 의하면, 밤에 꿈에 등장하건 깨어 있는 낮의 생활에서 쓰이건 상징은 두 가지 목적의 쓸모가 있다. 한 상징은 좌절된 본능적 충동을 채우기 위한 시도를 나타낸다. 상징의 이 측면은 상징이 충족되기를 원하는 바람의 위장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의견과 같다. 대부분 깨어 있는 낮에 금지되는 경우가 많은 성적 소원과 공격적 소원으로 꿈의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융에 따르면 상징은 위장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원시적 본능 충동이 변한 것이기도 하다. 상징은 본능적 리비도를 문화적 또는 정신적 가치로 물길을 트려고 한다. 문학이나 예술처럼 종교 또한 생물학적 본능의 변형은 익히 알려진 의견이다. 이를테면 성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예술의 한 형식인 무용이 되고, 공격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경기가 된다.

 

그렇지만 융이 말하길 상징이나 상징적 행동은, 본능 에너지를 그 본래 대상에서 대리 대상으로 바꾸는 단순한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융이 설명하길 이를 테면 무용은 성적 활동의 단순한 대리 대상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다.

 

융의 상징 이론의 본질적 특징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드러나 있다. “상징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무엇을 덮어 감추는 기호가 아니다. 상징의 가치는 그곳에 있지 않다. 오히려 상징은 유사성을 통해서 미지의 영역에 전적으로 속해 있는 무엇, 혹은 장차 속해질 무엇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드러낸다.”

 

앞서 제2장에서 에너지의 물길 트기와 더불어 상징화에 의한 유사성의 형성을 논의하였따.

 

‘완전히 미지이며, 형성 과정에 있을 따름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집단무의식에 숨겨져 있는 태고 유형이다. 상징은 무엇보다 태고 유형을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언제나 불완전한 결과가 있다. 융은 인간의 역사는 의식적으로 더 좋은 상징, 즉 태고 유형을 완전히 실천하며 개성화 할 수 있는 상징을 찾는 역사라고 주장한다.

 

역사 속 한 시대, 이를테면 초기의 기독교시대와 르네상스 때는 ‘훌륭한’ 상징이 많이 등장했다. ‘훌륭한’이라는 말은 인간성의 여러 면을 실현시켰다는 뜻이다. 또 다른 시대, 특히 20세기에서 상징은 아무 것도 낳지 못했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다. 현대의 상징은 주로 기계, 무기, 과학기술, 국제기업, 정치 조직으로 만들어져 그림자와 페르소나의 표현과 정신의 다른 면은 경시하고 있다. 융은 인류가 전쟁으로 멸망의 길을 가기 전에 더 좋은 – 통합된 – 상징을 창조하기를 바랐다.

 

융이 연금술의 상징체계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곳에 인간성의 모든 면을 누르고 대립하는 힘들을 없애고 하나의 통일체계를 세우려는 노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다라 또는 마법의 원은 초월적이며 자기중심적 상징이다.

 

결국 상징은 정신을 표현하며 인간성의 모든 면을 투영한다. 상징은 민족적 및 개인적으로 획득해서 저장된 인류의 지혜를 나타내려고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장래 상태를 미리 상정하는 발달 수준들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의 운명, 그의 정신이 장래에 발전할 때는 상징으로써 그 자신에게 보인다. 그렇지만 상징 속 들어 있는 지식은 인간에게 직접 인식되지는 않는다. 그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확대법으로 상징을 해독해야 한다.

 

상징은 본능에 의해 이끌어지는 과거지향적인 측면과 초월적 인격의 궁극적 목표에 이끌어지는 미래지향적 측면이 있는데,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전의 어느 면이 나와도 상징을 분석할 수 있다. 과거지향적 분석은 상징의 본능적 기반을 설명하고 미래지향적 분석은 완성, 재생, 조화, 순화 등에 대한 인류의 동경을 분명히 한다. 전자는 인과론적 환원적 분석이며, 후자는 목적론적 분석이다. 둘 다 있어야 상징의 완전한 해명이 가능하다.

 

융이 생각하기를 상징이 넘쳐흐르는 본능적 충동과 소원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는 바람에 상징의 미래지향적 측면이 무시되었다고 여겼다.

 

상징의 정신 강도는 언제나 그 상징이 생겨나게 된 원인의 가치보다 크다. 이는 상징이 추진력과 견인력을 배후로 성립된다는 의미이다. 추진력은 본능 에너지에서, 견인력은 초월적 목표에서 온다. 어느 한쪽만 갖고서는 상징을 만들 수 없다. 상징의 정신 강도는 인과론적 결정 요인과 목적론적 결정 요인의 합계이기 때문에 인과론적 요인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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