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빅토르 위고의 새로운 성서
빅토르 위고의 새로운 성서
윤세홍
목차
1. 서론
2. 본론
2-1. 새로운 성서의 구상
2-2. 새로운 성서의 내용
2-2-1. 우주생성론
2-2-2. 존재계층설
2-2-3. 천체이주론
2-2-4. 징벌과 구원론
3. 결론
1. 서론
빅토르 위고는 1851년 군사 정변을 일으킨 루이 나폴레옹에 맞서 민중저항운동을 주모한 죄목으로 이듬해 초 프랑스 영토로부터 추방되어 기나긴 망명 생활에 들어서야 했다. 브뤼셀, 런던을 거쳐 찾아든 첫 번째 정착지는 영국 제도 중의 하나인 제르제 섬. 사면이 바다로 뒤덮인, 넓이 116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그 척박한 땅에 도착한 지 열흘 만인 8월 15일. 이를 비웃듯 시대의 거인 위고는 후일 11,983행에 이르게 될 그의 대작 [정관시집]에 대한 작품 구상을 출판업자인 에첼에게 알렸다. 그 뒤 위고는, 제르제 섬에서 지내던 일군의 망명객들이 영국 여왕 빅토리아에게 적대적인 내용의 편지를 신문에 게재한 이른바 ‘피아트 사건’에 연루되어 1855년 10월 말에 추방되기까지, 3년여의 기간동안 [정관시집]과 [징벌시집]그리고 [사탄의 종말]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였다.
이 세 편의 영적인 작품 집필, 그것은 이 시기에 위고가 수인과 같은 고립된 삶의 환경으로부터 세속적인 문필과 분주한 정치 활동을 멈추고 죽음, 신 그리고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우주의 운명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넘어서서 철학적인 사색에 천착할 수 있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이 미지의 세계에 깊숙한 시선을 던진 시인은 이렇듯 긴 시간을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파장은, 뒤에 본론에서 거론하게 될, 그에게 우연히 찾아온 초자연적 현상의 체험, 즉 심령술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대략 1760년부터 전 유럽에 걸쳐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해서 1830년 이후로 더욱 창궐한 각종 신비설과 계시론에 프랑스의 문인과 사상가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던 시기이다. 이 이단적인 신앙의 형태, 그것은 당시의 철학적 합리주의와 전통적 기독교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성서’의 완성에까지 도달하려 한 위고의 야심에 찬 시도 역시 시대적 조류에서 결코 벗어나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우리는 이 무렵의 위고의 사상적 정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범주의 연구를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 한 가지는 위고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되는 그의 선대와 동시대의 신학, 철학, 신비학 사상에의 검토로서, 위고가 중점적으로 탐구한 자취를 남긴, 우주생성론, 존재계층설, 윤회설 등과 같은 몇 가지 형이상학적 학설에 대한 농익은 인식을 논의하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위고의 영적 체험을 증언하는 기록들에의 고찰로서, 그가 문제시한 사유의 주제들에 영들과의 토론이나 영들의 계시를 어떻게 반영하였는가를 논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편향된 선입견에 빠지지 않도록, 성서적인 모든 체계가 바로 자신의 독창적인 사유의 산물임을 내세우는 위고 자신의 주장도 경계하는 한편, 위고의 사상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듯이 보이는 신앙 또는 인물들의 주장과 저서를 수없이 나열하는 태도와도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기에서 가능한 한 본 논문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는 사상적 이론들만을 거론하면서, 위고의 형이상학적 성찰의 메모와 함께 그의 몇 편의 계시적 작품들에 나타난 사유 체계를 그와 대조하여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 영역을 제한할 것이다.
2. 본론
위고가 마치 성당의 대형 벽화를 그리듯이 우주의 광대한 이치를 묘사해놓은 신비주의적인 비전들은 삐에르 모로와 같은 일부 비평가들에게 있어서 미신이나 밀교 신봉자의 허무맹랑한 환각 따 따위 가볍게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고가 그려낸 우주의 그림이 그 자신이 겪은 영적인 경험에 대한 흔들릴 수 없는 확신에서 산출된 것이며, 또한 원시신앙을 비롯한 여러 종교의 교리나 신학, 철학적 학설들이 밑그림으로 드리워져 있음을 외면하는 태도이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우주를 논할 만한 위고의 웅대한 사유의 폭을 제대로 평가하는 한편, 두려움에 떨면서도 우주의 심연으로 이르는 소용돌이에 잠겨버리지 않은 채 끝내 그 미지의 신비를 여러 편의 계시적 작품에 담아내기에 성공한 그의 작가적 역량을 올바로 가늠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먼저 위고의 특별한 삶의 체험과 그에 대한 증언들을 토대로 새로운 성서를 구상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그가 성서의 집필을 위해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던 몇 가지 중점적인 이론들에 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2-1. 새로운 성서의 구상
위고 일가가 제르제 섬에서 유배 생활 중이던 1853년 9월 6일 그들은 당시 영험한 영매로 소문이 자자하던 지라르댕 부인의 방문을 받았다. 그녀의 제의로 시작된 초혼술은 몇 차례의 실패 끝에 9월 11일 저녁 놀랍게도 위고의 사망한 맏딸 레오폴딘의 영을 불러내는 데 성공하고 그 이후 그의 가족은 편집적으로 거의 매일 저녁 이 체험에 탐닉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여러 영들과 문답을 교환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영들 중 몇몇은 특히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하여 토론 상대가 되기도 했다. 이 미지의 존재들의 출현과 그들이 남긴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에 수개월 동안 관심을 보이던 위고는 1854년 6월 초에 문득 이 신비한 체험으로부터 새로운 성서 또는 “인류의 성서”가 탄생될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그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죽음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여러 편의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을 산출하였고 주로 [정관시집]의 제 6권에 집중적으로 수록하였다. 그 중 [어둠의 입이 한 말]은 위고가 “나의 계시서”라고 선언한, 그리고 “우주의 운명과 우주의 소망에 관한 시”라고 덧붙인, 가장 중요하고 가장 장편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집필 배경과 관련하여 위고는 아래와 같이 진술하고 있다.
스스로를 무덤의 어둠이라 칭하는 존재가 내가 시작한 작품을 완성하라 하였다. (…) 스스로를 관념이라 칭하는 존재가 앞 못보는 자들에게는 죽은 자연처럼 보이는 것을 이루고 있는, 구속되어 벌받고 있는 존재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시를 쓰도록 지시하였다. 나는 승복하였다. (…) 나는 관념이 내게 요구하던 시를 썼다. 이해가 되려면 설명이 필요하였다. 나는 내 오래된 생각과 함께 새롭게 알게된 사실로 확대된 생각이 담긴 세세한 내용에 개입하여야 했다.
그가 구상한 “새로운 성서”의 대단원은 따라서 일종의 ‘영들의 말을 받아쓰기’인 동시에 그 자신이 오래 전부터 골몰해오던 형이상학적 사유의 보고서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위고의 이 사유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위고가 대략 25년 전 (1830년)부터 이 문제에 몰입해 왔다고 밝힌 진술을 사실로 가정한다면, 그 시기는 개방적 카톨릭교의 성향을 지닌 사제 라므네와 1822년부터 이어진 친교 사절이자 그와 함께 이상적인 카톨릭교 국가, 더 나아가서는 카톨릭교 유럽 연방의 창설을 꿈꾸던 시절이었으며, 성-시몽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 카톨릭교의 입장을 열렬히 옹호하던 신앙 시절과 일치한다. 특히 우리의 연구와 관련하여 1830년 7월 16일자로 기록된 아래와 같은 카톨릭교 개혁론자 몽딸랑베르의 일기는 이 시기의 위고를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카톨릭교에 관하여 상당히 열띤 토론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빅토르 위고는 카톨릭교가 항구적인 기독교의 일시적인 형태이며, 그 생명을 다했으므로 신의 어떤 새로운 계시들에 의해서 바꾸어져야 할 형태로 본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그로 하여금 카톨릭교를 위해서 모든 현대의 역사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만들자, 그는 우리들에게 구상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은 훌륭했으며, 그는 내가 알지 못했던 길을 내게 열어주었다.
위의 글에서 우리가 우선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위고는 대혁명의 원리를 교회의 교의와 융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고의 이 혁명적 사고와 미래를 향한 들뜬 소망은 의외로 쉽게 주저앉는다. 그것은 1832년 8월의 종교 사건에 깊게 연루된 것이었다. 즉 라므네가 운영하던 종교와 교육의 자유를 위한 사상지 [미래]가 교황 그레고리 16세에 의해 이단 판정을 받았으며, 뒤이어 라므네는 파문되어 카톨릭 교회와 결별하였기 때문이다. 위고는 이 무렵부터 개방적 카톨릭교 운동의 한계를 인식한 듯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그의 종교적 태도 변화는 같은 해 11월 26일에 몽딸랑베르가 라므네에게 보낸 편지에 선연하게 드러난다.
빅토르 위고는 마레의 자택에 깊숙이 칩거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완고해지고 점점 더 종교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회의 건설을 위한 “신의 새로운 계시들”, “항구적인 기독교”의 출현을 기대하는 위고의 신앙이 그처럼 깊은 상처를 안고 침묵하였음을 볼 때, 어쩌면 이 무렵에 그의 사유는 기존의 기독교 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새로운 성찰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의 의식은 이 무렵에 이미 그의 혁명 정신으로 인하여 다른 종교들을 향해서까지도 열려있었으며, 신비철학적 사유, 그리고 그가 30년 뒤에 맞이하게 될 심령술 체험의 동인을 잉태하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무렵부터 카톨릭교 신자, 위고의 발자취를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하게 된다. 그 뒤 이 침묵의 시기가 겨우 베일을 벗어 보인 것은 1845년 9월 4일에 그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신앙을 일컬어 “기도하는 종교”라고 썼을 때이다. 이 표현은 카톨릭 교회의 테두리 밖에서 새로운 종교를 설계하는 야인 위고의 고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1867년에 “규칙적으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한 위고 자신의 선언이나, “사망에 이르기까지 위고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 주위의 증언 등은 그가 기도하는 신이 누구이며, 그가 읽고 마음에 되새기는 성서가 무엇인지 하는 의문을 증폭시킬 뿐이다.
2-2. 새로운 성서의 내용
오늘날 우리는 위고가 남긴 형이상학적 사유의 초안들을 보면서, 그것이 인류 구원의 소명 의식을 지닌 한 사상가의 ‘우주의 운명과 우주의 소망’을 깨닫기에 이르는 진지한 연구의 기록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기록은 분명 그의 선대 또는 동시대에 존재하던 신학, 철학, 신비학적 이론들에 대한 집요한 검토이자, 이를 통한 신학적 사상 체계의 완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위고의 사상적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 후대의 위고 연구가들이 벌인 다양한 시도는, 아마도 위고 자신의 의도대로, 어떤 확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다. 이 점에 대하여 주르네와 도베르는 이 시인이 집필 계획이나 이를 위한 독서 목록을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 습성이 있으며, 오뜨빌-하우스의 서가에서 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여러 권의 철학서와 신비학서들을 의도적으로 치워낸 듯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위고의 성서적 교설에 관한 우리의 연구는 여러 시대의 형이상학적 학설뿐만 아니라 위고의 신비학적 취향에까지 열려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위고가 자신의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특히 역점을 두어 성찰해야 했던 몇 개의 문제들만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2-2-1. 우주생성론
위고의 형이상학적 탐구의 시발점, 그것은 ‘우주 창조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날마다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는 신은 누구이며, 신에 의한 우주 창조의 본질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주의 질서나 법칙에 대한 확신을 구하고자 하는 심오한 한 사색가의 자연스러운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의 사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익숙한 대조법에 힘입어 창조주와 피조물, 절대성과 상대성, 완전성과 불완전성들의 개념을 상치시킨 편지글을 남긴다.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절대적이며 완전한 신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신 자신의 복제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것을 창조했으며 인간도 그 중의 하나이다 (…)
우주의 중심원리가 바로 신이며, 오로지 신만이 다른 모든 것들과 달리 완전하고 충족한 존재일 뿐, 인간을 포함하여 그 이외의 온갖 것은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존재라고 믿는 위고의 사유는 인류의 오랜 종교들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학적 제1명제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이에 뒤이어, 신은 왜 홀로 존재하지 않으면서 모든 종류의, 그리고 모든 형태의 파생적 존재를 생기게 하였는가에 대한 그의 의문은 이내 종교의 담을 넘어서서 고대 희랍 철학을 엿본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것은 우주 창조를 신의 존재의 충만함에 기인한 필연적인 현상으로 보는 플로티노스의 ‘방출 이론’이다. 그의 비유적 설명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들이 성장하면 자손을 생산하듯이, 완벽한 모든 것도 생산하기 때문이며, 이것은 넘치도록 불어나면 흐르게 마련인 샘물이나, 퍼저나가기 마련인 빛과 같이 일종의 충만에서 비롯된 무의식적이며 비의도적인 생산이라는 것이다. ‘무의식적이며 비의도적인 생산”, 그렇기 때문에 위고는 신의 창조에 어떤 특별한 동기가 있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신은 존재하며, 존재하는 이상 아래와 같은 존재의 법칙을 따라 행위 하는 것이며, 이 때 신의 행위를 ‘문자 그대로의 창조’라고 이해한다.
존재한다는 것과 행위 한다는 것, 그것은 존재의 이중적 양상이다.
행위가 있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달리 말하자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행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위고는 그것을 ‘순수 정신’이라고 해석한다. 그에 비해서 신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들은 정신과 물질의 혼합이라는 필연적인 양상을 지닌다. 이때 ‘물질성’이라는 것은 유한한 피조물들과 그것들의 근원인 신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를 표시하는 존재의 완전성의 감소, 즉 불완전함의 표시에 다름 아니다. 위고의 이 이원론적 존재론은 육체를 영혼의 참다운 세상인 이데아의 세계를 가리는 장애물로 간주한 플라톤 사상의 신학적 변용이며, 그보다 앞서서 인간의 영혼이란 우주의 성스러운 요소인 에테르의 한 조각이며, 이것을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육체에 갇혀졌으며 자신의 고향으로 회귀하기를 갈망한다고 설파하면서, 회랍 최초로 영혼의 개념을 제시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교설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위고에게 있어서는 순수 정신에 상반된 개념인 ‘순수 물질’과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성을 지닌 어떠한 것이건 그것에는 어김없이 순수 정신으로부터 파생된 정신 혹은 영혼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광채인 영혼은 어느 것에나 내재한다.
우주는 누구도 홀로될 수 없는 집합이다.
모든 육체는 정신을 감추고 있으며, 모든 육신은 수의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보려거든 염포를 벗기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들 속에 신이 내재되어 있다는 위고의 믿음은 드물지 않게 피타고라스적인 범신론에 접근한다. 그렇지만 아래와 같은 메모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신앙적 태도는 그 뿌리를 유일신 사상에 내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피조물들은 신으로부터 생겨났으므로 신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신에 비하여 언제나 상대성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이며, 신은 결코 스스로를 복제하지 않는, 존재의 절대성을 가진 ‘일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완벽함 그것은 절대성이며 일자이다. 완벽함에는 등급이 없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며, 절대적으로 존재함으로써, 그 자신이 복제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
2-2-2. 존재계층설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이면서, 여러 단계의, 그리고 온갖 종류의 존재물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존재계열이라는 위고의 인식은 멀게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존재의 계층이 신학적으로 능란하게 제시된 것은 스콜라 학파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서인데, 그는 존재계층은 무기적 실체들로부터 시작하여 식물과 동물을 거쳐 인간에 이르며, 정신과 물질이 합성된 실체들의 세계에 있어서의 이 계층은 천사들을 거쳐 필연적 존재, 즉 신에게로 올라가는 보다 큰 계층의 일부라고 설명하였다. 성 토마스는 또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지니게 되는 영혼의 등급보다 상위에 인간에게서 분리된 영혼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영혼과는 달리 개체화에 필요한 육체를 지니고 있지 않은 비물질적인 영혼이며, 사멸하지 않는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 존재라고 하였다.
위고는 자신의 존재계열에 대한 인식을 주로 여기에서 길어오면서, 그 형성 원리를 아래와 같이 물질적 무게의 차이로써 이해한다.
신에 의한 창조는 물질적이었지만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이었다. 최초의 과오는 최초의 무게가 되었기에 피조물에 의한 창조는 본질적으로 무게를 잴 수 있는 것이었다(…). 무게는 형태를 지니게 되었고 천사에서 영으로, 영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광물로, 모든 것들이 점점 더 무겁게 되었다.
순수 정신인 신이 창조한 최초의 피조물인 신성한 천사들은 무게를 잴 수 없는 존재로서, 위고는 천사에게 부여된 물질은 정신에 가장 가까운 물질이며, 그것은 불, 빛, 정수, 향기라고 본다. 그런데 천사들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과오를 범할 수 있는 존재, 따라서 천국에서 추락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위고는 최초의 과오이자 최초의 무게는 바로 천사들의 불순에 의해서 생기게 된 것이며, 그렇게 해서 천사들보다 무거운 존재인 영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 해석한다.
그런데 성 토마스가 가설을 세운 ‘인간에게서 분리된 영혼’은 위고에게 있어서 특이한 개인적 경험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위고가 “영”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그 자신이나 또는 가족들이 심령술 체험에서 마주했던 미지의 영적 존재들 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신비철학자에게 있어서, 천사들에 비하면 영적으로 덜 성숙하거나 덜 순수한, 즉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요소들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들이지만, 육체적 구속을 벗어남으로 인해서 인간에 비하면 좀 더 순수한, 따라서 좀 더 가벼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위고는 일련의 그의 계시적 작품들 속에서 자주 “영”이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영의 정체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남긴 바 없다. 우리는 다만 위고의 장녀 레오폴딘의 시숙이자 절친한 낭만주의 문인으로서 제르제 섬에서의 망명 시절 중 위고의 가족과 함께 심령술 체험에 자주 동참했던 오귀스트 바크리가 이 시인에게 보인 아래의 메모에서 그의 생각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영혼도 육체와 같이 제 그림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일종의 이 분식은 때때로 영혼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제 자신의 의지와 감정, 심지어는 반항적 기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육체보다도 어느 정도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출현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비가시적인 영적 세계에서의 두 개의 존재등급, 즉 천사와 영, 그리고 가시적인 물질 세계에서의 네 개의 존재등급, 즉 인간, 동물, 식물, 광물 사이에는 어떤 단절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 것? 위고는 라이프니츠가 주장한 바와 같이, 모든 피조물들의 등급간에 불연속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즉 그는 피조물의 과오가 곧 무게가 되도록 신이 섭리를 세웠으며, 이에 따라 천사로부터 광물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이며 하향적인 존재의 등급이 중단 없이 이어져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고의 우주는 이 모든 등급의 실체 하나 하나가 각자의 세계에서 그 순수성에 따른 차별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는 거대한 사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사다리가 존재한다. 내가 그대에게 말한 것처럼,
전 우주의 생명이 끝없는 구역을 거쳐 =
솟아오르고, 초라한 밤으로부터 매혹적인 천국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등급을 거쳐 흐르고 있다.
위고에게 있어서 “무게”는 또한 “어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의 사유 속에서 순수정신인 신은 곧 우주 만물을 굽어보는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무한한 광휘이므로, 피조물들이 제 자신의 무게에 의해서 신으로부터 점점 더 아래로 추락할수록, 즉 정신이 감소하는 대신 물질이 늘어날수록, 보다 무거워지는 동시에 어두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고는 존재의 사다리 심연에 측량할 수 없는 어둠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삶과 숨결과 소리 너머로
그곳을 내려다본다면, 우리는 깊숙한 곳에서
밤을 비추는 무섭고 시커먼 태양을 볼 수 있다.
2-2-3. 천체이주설
존재계층에 관한 인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위고는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는 천구들에 대해서도 무게와 빛의 차이로 등급을 분류한다. 즉 그가 보는, 신에 의한 최초의 피조물들의 거주 공간, 즉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천국”은 무게를 잴 수 없는 정기로 가득 찬 공간이며 빛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에 비해서 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간, 즉 지옥은 무게를 잴 수 있는 공기와 그것의 움직임인 바람으로 가득 찬 공간이며 어둠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위고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들이 천국이며, 그 빛을 반사하는데 불과한 어두운 천구들이 지옥이라고 본다.
천사들이 가련해 하며 숫자를 세어보는 비천한 존재들이여!
그것들이 무더기가 되면서 여러 천구들이 만들어졌으며,
그 덩어리들 뒤로 어두운 밤이 생겼다.
이처럼 위고는 무게를 잴 수 있는 피조물들은 그 실체를 지탱하기 위해서 어떤 지지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제 스스로가 덩어리로 뭉뚱그려지면서 지구처럼 형태를 지닌 천구들이 생겼으며, 제 스스로의 그림자에 의해서 어둠을 지니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 시인의 사유 속에서는 천구들이 갖는 태양과의 거리에 따라, 밝은 것으로부터 점점 더 어두운 천구로 등급이 형성되어, 이내 태양으로부터 지구보다 더 멀리 떨어진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을 저주받은 천구의 목록에 늘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 빛도 없으며 거의 서광도 비치지 않는 천구들이여!
유성에 채찍질 당한 거대한 목성이여!
멀리 화산의 분화구처럼 보이는 화성이여,
오 야행성의 천왕성이여, 오 굴레 씌운 토성이여!
이와 같은 인식에 따라, 위고는 지구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혹성이므로 분명 저주받은 천구이지만, 그보다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혹성에 비하면 보다 높은 등급의 천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천사들이 거주하는 곳이 별이며,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동물, 식물, 광물이 거주하는 곳이 지구라면 영이 거주하는 공간은 어디일까? 위고 자신이 ‘영계’를 상세하게 묘사한 적은 없다. 다만 그의 여러 편의 계시적 작품들과 메모 속에서 영들은 때로는 천사들과, 때로는 인간의 교류를 갖는 미지의 거처를 갖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 신비학적 범주의 기술은 주르네와 로베르가 지적한 것처럼, 이미 18세기 중엽부터 위고와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물들의 저서에 의해서 활발하게 제시되었으며, 위고도 그 중 몇 권은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비적 취향이 강했던 라마르틴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그는 메르씨에의 신비학 저서인 [서기 2004년](1771)을 죽기까지 소장했던 문인으로서, 영의 천체이주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썼다.
영혼은 그가 옛날 사랑했던 저 위대한 영들을 찾아,
태양에서 태양으로, 은하계에서 은하계로,
그가 사랑하는 영혼과 함께 비상하다가 길을 잃는다.
그리고 무한한 공간에 펼쳐진 장대한 미로를 따르다가
언제나 신의 품안에 다시 놓이게 된다!
라마르틴을 즐겨 독서하던 위고도 필경 위의 시구를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계에 관한 탐구에 있어서 위고에게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마도 바크리의 살아있는 증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위고가 이미 어렴풋이 상상했던 것이었으며, 바크리로부터 1854년 9월 16일 심령술 체험 도중 나타난 ‘대천사 관념’의 영계에 관한 설명을 전해듣고, 영들은 천사들이 관장하는 어떤 천구들에 흩어져 살면서, 신만이 아는 어떤 이유로 한 천구에서 다른 천구로 이주하는 일도 있으며, 때로는 이 땅에 내려오는 일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고는 영혼의 천체이주설을 수용하면서, 영혼이 한 천구에서 다른 천구로 이동하는 것은 그 존재의 순수성의 증감에 달린 것이며, 그에 따라 영혼이 물질적 생명을 마치면 그에 상응하는 빛의 광도를 지닌 천구로 이동한다고 해석한다.
죽음이 이르러 영혼을 체로 거른다.
이 보이지 않는, 삶의 증인은 심판하며
천사를 별로 다시 데려가거나 더 멀리 내던진다.
2-2-4. 징벌과 구원론
종말론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설은 영혼의 일회탄생론을 전재로 삼고 있다. 이 교설에 따르면, 신은 무의 상태로부터 하나하나의 영혼을 창조하는 바, 한 번 탄생한 영혼은 영원히 살며, 탄생하는 순간이 바로 최초의 탄생이자 최후의 탄생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에서는 육신이 사망하면 죽은 자의 영혼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기적 상태인 낙원과 옴부로 가서 머물다가 세상 마지막 날 신의 심판을 받아 천국에서 영생하거나 지옥에서 영벌을 받는다고 보며, 성도들은 부활하는 날 새 육체를 갖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위고는, 라마르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끝없는 상 중의 슬픔도, 치유할 수 없는 죄악도, 영원한 지옥도 없다!”([어둠의 입이 한 말], 692-693행)라고 단언하며, 신에 의한 영혼의 일회적인 영원한 구원이나 영원한 징벌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들여다본 존재의 사다리가 바로 징벌과 구원의 사다리이기 때문이다. 위고의 이 사다리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공평하게 상승의 기회를 허락하는 신의 충만한 사랑의 상징에 다름 아니지만, 이 안에서 언제나 상승의 움직임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의 충만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피조물들은 신에 대한 과오, 즉 죄악을 범하면 범할수록 무게의 법칙에 따라 어둠의 심연을 향해 추락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 속에서 모든 것이 상승하거나 솟아오르거나
추락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가 바로 그의 저울대이다.
신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동시에 살면서
제 무게를 달고 각자 제 무게대로 추락한다.
이처럼 위고의 사유 속에서 ‘무게’는 ‘과오’의 다른 모습이며, ‘죄악’의 또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그는 존재의 과오 또는 죄악의 경중에 따른 상승과 추락을 일종의 자연법칙적인 현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그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영원한 삶 속에서 영혼의 상승과 하강의 기회를 인정하는 ‘윤회론적 인식’과 피조물의 구원과 징벌은 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자신의 행위에 따른 결과라고 보는 ‘인과응보론적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기독교 문명 상태 이전의 서양에서는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이 영혼의 윤회론을 신봉하였으나, 이들은 내세에 일어날 환생은 영혼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으며, 영혼이랑 양과 질이 고정된 이주실체로서 수양에 따른 양과 질의 변화, 즉 존재의 진보나 퇴보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계류를 이루는, 적어도 두 가지의 사상적 근원에 관심을 갖고자 한다. 하나는 위고가 제르제 섬에서의 유배시절 중 그곳에서 친분을 갖게 된 장 레노의 영향이다. 장 레노는 1854년에 출판한 그의 저서 [종교적 철학 : 대지와 하늘]에서 죽음이란 우주의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도로망의 출발점이며, 모든 존재들은 덕행을 쌓음으로써 최상의 단계인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윤회론 신봉자인 푸리에의 교설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도 힌두교의 윤회사상이다. 힌두교의 베다 철학파에서는 영혼의 윤회에는 원인과 결과에 따른 균형과 조화의 법칙, 즉 ‘카르마’가 있어서 전생에 쌓은 덕행이나 악행에 따라 현세에 그에 상응하는 다른 존재로 환생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베다 철학자들은 자연법칙으로서 존재의 수행에 따른 영혼의 진화나 성장을 믿으며, 완전한 선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경험과 지혜를 쌓을 수 있는 모든 진화 단계로의 윤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윤회의 법칙에 매료된 위고의 상상력은, 정의에 목마른 야인답게, 특히 징벌의 범주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하여 위고는 인간이 죄를 지으면 죽음을 통해 그 죄의 성격에 따른 다른 피조물의 등급으로 추락하며, 그 최악의 형벌은 돌로 환생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를테면 [어둠의 입이 한 말]에서 구약 성서 신화의 힘만 세고 머리는 우둔한 거인 골리앗은 황소로, 교만에 빠져 바벨탑을 세우게 하고 하늘을 향해 활을 쏜 정복자 넴로드는 교만의 상징인 서양삼나무로 환생하는가 하면, 고대 전설적인 인물로, 아르테미스 사원을 불지른 에페소스 사람 헤로스타로스는 화산으로, 혁혁한 전공만큼이나 무참한 살육을 저지른 알렉산더 대왕은 무덤으로 환생하는 등 그의 징벌 목록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위고의 이와 같은 동태복수법에 따른 징벌론은 후에 사물로의 환생까지 그 해석이 확대되어, 심지어는 사형집행인이 바로 도끼나 단두대로 환생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위고는 인간과 다른 등급의 피조물들의 징벌과 구원론에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던 것일까? 그는 이에 대하여 피조물들의 존재 조건에 따른 두 가지의 상이한 징벌과 구원을 발견해낸다. 하나는 신의 존재와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존재인 줄 알면서도 살아있는 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유를 박탈당한 존재들, 즉 짐승과 식물 그리고 광물에게 지워진 징벌과 구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의 존재도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죄인인지도 모르는,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는 존재인 인간에게 지워진 징벌과 구원이다.
인간은 신을 볼 수 없지만 그에게로 다가갈 수 있다.
항시 존재하는 선의 빛을 따름으로써,
나무, 바위 또는 울부짖는 짐승 따위의 괴물은
멀리 사슬에 묶인 채 신을 볼 수 있으며, 바로 그것이 고통이다.
위의 시구에서처럼, 위고에게 있어서는, 인간이 절대선인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 즉 육체라는 물질적 속박을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전생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그의 자유를 선에 사용하는 것이며, 짐승에서 광물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상실한 피조물들은 물질적 삶이 다하기까지 고통 속에서 전생의 죄를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숙명이 주어질 뿐이다. 위고는 더 나아가서 인간이 아무런 의심 없이 선을 향한 길을 걷도록 태어난 것이라면 그 죄를 구원받을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따라서 의심이란 인간에게 부여된 권능이자 동시에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구원받기 위하여 무지해야 한다.
인간은 온갖 먼지에 덮여 눈이 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끈을 매서 부축 받는 어린애처럼
신을 향해 곧바로 걸으며 살 것이다.
의심은 그의 권능이자 형벌이다.
위고의 이 의심은, 범신론자인 라마르틴에 있어서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신에 대한 신뢰와 영혼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신들과 인간 사이의 연결 고리인 사라의 불꽃을 지피는 행위로써 해결될 수 있었다.
신들을 신뢰하자! 우리 영혼의 존재를 믿자!
우리들 가슴속의 사랑으로 불꽃을 지피자!
사랑은 신들과 인간을 맺어주는 끈이다.
두려움이나 고통은 신들의 제단을 모독하는 것이다!
우리의 해방을 알리는 행복한 신호가 이르면,
벗들이여! 신들을 향해 소망의 비상을 펼치자!
그러나 유일신 신봉자인 위고는 오로지 하나뿐인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믿음에 충실하면서,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의심을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한 영혼의 불빛을 밝히는 행위, 즉 ‘기도’로써 걷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위고의 “선을 향한 길”이란 바로 신의 본질인 ‘사랑’을 따라 하는 길이다. 그리하여 위고는 신은 끝내 어둠의 세계에서 죄악을 참회하며 눈물로써 기도하는 사탄을 예수와 함께 천국에 맞아들이리라 예언하면서, 선지자의 목소리로 구원을 소망하는 인류를 향해 다음과 같이 외친다.
때가 가까웠다. 소망하라. 불꺼진 영혼에 다시 불을 지펴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것이 성스러운 열기요,
그것이 진정한 태양의 불길이기 때문이다.
3. 결론
위고의 신비주의적 작품들은 특히 1852년 초에 시작된 그의 제르제 섬에서의 유배 시절 중에 왕성하게 집필되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놓인 이국의 작은 섬에 고립된 삶 속에서 그가 정관은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역설적으로, 광대하기 그지없는 우주의 질서와 법칙이었으며, 그것은 그가 20여 년 전부터 어떤 결정적인 깨달음의 계기를 기다리며 참을성 있게 그리고 은밀하게 응시해오던 것이었다. 오랜 시절 동안 혼자만의 것으로 지속해온 우주의 비밀에 대한 성찰은, 그렇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성서적 교리에서부터 동서고금의 여러 신비학설에 이르기까지 넓게 열려있었다. 그의 탐구를 가속화시킨 계기는 유배지를 방문한 한 영배의 출현으로 비롯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들과의 접촉, 이른바 ‘심령술 체험’이었다. 이 과정에서 위고는 영들을 통해 죽음 저 너머 세계의 모든 비밀을 밝혀내고자 했으나, 이 초자연적인 존재들 역시 그 일부만을 엿보게 해줄 뿐, 그 세계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세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난 이 영적 탐험의 결과가 위고에게 가져다 준 것은 좌절이 아니라 신의 선택을 받은 자로서의 깨달음과 더욱 견고한 성찰의 자세였다.
그 당시, 라마르틴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시기를 가로지르는 각종 신비설과 계시론의 영향에 침습되었던 이 이단적 문학가에게, 또는 혁명 정신을 교회의 교의와 융화시켜 ‘향구적인 기독교’나 ‘카톨릭교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이 개혁적 종교사상가에게 필요했던 것은 신의 새로운 계시들이었다. 이리하여 문학가, 정치가로서의 화려한 경력 쌓기에 만족하였던 위고는, 1856년 [마법사들]d에서 선언하게 될 ‘시인의 사회적 임무’에 눈을 뜨면서, 사도이자 사제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그가 발견한 신성한 역할, 그것은 그의 특별한 경험, 즉 영들과의 토론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오랜 사유로부터 확신하기에 이른 신의 존재 의미 그리고 전 우주의 운명과 소망을 자신의 글로 인류에게 알리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인류를 위한 새로운 성서 쓰기가 계획되었다.
그런데 과연 그가 구상한 성서에는 어떤 새로운 교설들이 담겨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가 주된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던 몇가지 형이상학적 이론들과 그 배경을 논의하였다. 위고는 아마도 그의 성서적 교설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비평가들에 의해서 제반 종교나 미신의 박물학 따위로 비난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그가 탐독했던 도서 목록을 숨기려 하였으며,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는 모든 사유 체계가 그 자신의 것임을 주장하였지만, 그의 메모와 작품에 실린 글들은 그의 선대나 동시대에 존재하던 여러 신학, 철학, 신비학 사상들과 자주 밀접한 관계를 노출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신학적 묵상에서 발견해야 할 중요한 가치란, 어떤 하나 하나의 사유가 위고 자신의 독창적인 것인지 또는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하는 것보다도, 그것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사유 체계로 완성한 그의 사상가다운 능력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주만물의 영원한 상승과 하강 운동을 그려낸 웅대한 상상력일 것이다.
결국 위고는 시대적인 요청으로,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신비 체험에 이끌리며 자신의 걸출한 자질을 다시 한 번 발휘해서 그가 접한 온갖 신비학설들을 체로 걸러내어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신에게로 이르는 길로 인류를 안내하는 영적인 글쓰기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진정 신으로부터 선택받았음을 느낀 위고는 이제 더 이상 세속적인 정치망명객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존재의 사다리와 윤회의 법칙을 강론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기도를 멈추지 말 것과 신의 본연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인류가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설교하는 ‘교회 테두리 밖의 사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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