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블라드 체페슈에 대한 독일 러시아 루마니아 삼국의 원전 전설

Realize 2020. 11. 20. 23:23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p264

에 있는 내용으로~

부록으로 실린 독일 러시아 루마니아에 전해지는 드라큘라 이야기의 원전이다ㅋ

 

https://cafe.naver.com/purifymoon/1064

 

뱀파이어(흡혈귀) 전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대한민국 모임의 시작,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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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와서 브람 스토커에 의해 괴물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드라큘라 백작.......

(링크의 링크에 있는 뱀파이어 연대기도 꼭 읽어보시오!)

 

블라드 체페슈는 억울해해야 할까 아님 억울해하지 않아야 할까?

이 잔혹한 이야기들을 읽어보고나서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으리라~

 

혹시 알아?

전생에 피해자였을지ㅠㅠ

 

어쩌면 브람 스토커는 전생에 블라드 체페슈에게

잔인하게 말뚝형을 당한 피해자중 한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독일 전설 : 스위스 산갈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된 사본 NO.806을 레이몬드 T. 맥널리가 번역하였다.

 

총독이 드라큘을 죽이자, 이전 신앙을 버린 드라큘라와 그의 동생은 기독교 교의를 보호하고 받들겠다고 맹세했다.(드라큘라 아버지는 암살되었고, 블라드와 라두는 투르크에 볼모로 잡혀있던 시절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같은 기간 드라큘라는 권좌에 올랐고 왈라키아 군주가 되었다. 그는 그 지역 통치자였던 라디슬라우스 와보다(블라디슬라프 2세)를 즉시 처형했따.(블라디슬라프 2세의 처형은 1456년 일어났다.)

 

그 직후 드라큘라는 헤르만스타트(시비우) 근처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마을과 성을 불태웠다. 그리고 트란실바니아 요새 다수 및 홀츠누브도르프 수도원, 홀츠네티아(호스마눌) 수도원 근처 마을 등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는 타라 비르세이의 베르켄도르프(베네스티)를 태웠다. 그 자리에서 태워 죽이지 않은 남자, 여자, 아이는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모두 데리고 가 족쇄를 채워서 말뚝형에 처했다.

 

드라큘라는 축제일에 타라 비르세이에서 온 상인과 마부들을 모조리 감옥에 가두고, 같은 날 많은 사람들을 말뚝형에 처했다.(루마니아 자료에서 확인할 사실이다.)

 

각국에서 어린 소년들이 언어와 그 외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왈라키아로 왔다. 그는 그들을 데려온 뒤 약속을 어겼다. 그는 그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태워 죽였다. 그 방에는 400명이 있었다.(루마니아 자료에서 확인할 사실이다.)

 

그는 아이부터 시작하여 어른으로 가면서 한 집안을 몰살시켰다. 그는 그들을 모두 말뚝에 박았다.(참사를 당한 집안은 왈라키아의 보야르였던 알부 가문이다.)

 

그는 부하들을 시켜 발가벗긴 한 남자를 배꼽까지 땅에 묻고 포탄을 쏘라고 명했다. 그는 사람을 산 채로 굽거나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 그는 또한 젊은 다린(단)을 포로로 잡았다. 이후 그가 사제로서의 직분을 다하도록 허락하고, 임무를 마쳤을 때 기독교 관습에 따라 무덤을 만들게 하였다. 그 무덤 옆에서 그는 그를 무참히 죽였다.(단의 처형은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었다.)

 

헝가리 왕 트란실바니아 색슨족이 파견한 55명에 달하는 대사들이 왈라키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드라큘라는 이들을 5주 동안 포로로 잡아두고, 그 동안 말뚝을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말뚝형에 처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아, 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했던지! 그는 그들이 배신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을 오래 붙잡아두었다. 그리고 군대를 모두 이끌고 타라 비르세이로 갔다. 이른 아침 그는 마을, 성, 도시에 왔다. 정복한 자들을 모두 없앴으며, 곡식을 모두 불태웠다. 그리고 그는 포로들을 모두 성 야곱 교회 근처 크란스타트(크론스타트 혹은 브라소프)라는 도시 외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드라큘라는 그곳에 잠시 머물며 근교를 모두 불태웠다. 낮이 되자 자신이 잡은 포로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교회 옆 언덕에서 말뚝에 박았고 언덕 주변에 늘어 세웠다. 그들 밑에서 그는 음식을 차려놓고 먹었으며, 이런 식으로 여흥을 즐겼다.(마티아스 왕은 드라큘라가 투르크와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이 대사들을 보낸듯 하다.)

 

그는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브라소프에 있다)를 태웠고, 그 뒤 제의와 성배를 약탈했다. 그는 지휘관을 보내어 제이딩(코들레아)이라는 큰 마을을 태우라 명하였으나, 마을사람들의 강한 반발로 지휘관이 이를 행하지 못했다. 그가 그의 주인에게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폐하, 저는 명하신 바를 이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를 높은 말뚝에 박아버렸다.(교회의 공격 및 코들레아 요새를 점령하지 못한 지휘관의 처형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그는 모든 상인 및 상품을 가진 자들, 타라 비르세이부터 투노우와 프레겔에 이르기까지 600명에 달하는 전 상인계급을 말뚝형에 처했다. 상품은 자신이 가로챘다. 그는 손잡이 2개가 달린 큰 냄비를 만들게 한 뒤 구멍을 내어 그리로 사람의 머리가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런 뒤 냄비 아래 불을 지피고 안에는 물을 부어 사람을 끓였다. 그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말뚝형에 처했다. 또한 그는 탈메츠(시비우 근처 탈메트크)를 공격하기 위해 시에벤부르겐(트란실바니아의 일곱 요새)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을 양배추처럼 난도질했고, 왈라키아로 데로고 온 포로들을 고문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말뚝형에 처했다.

 

그는 공포스럽고 끔찍하고 입에 차마 담기 힘든 고문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말뚝에 박은 채 아이에게 젖을 먹이도록 하고, 한 두살 먹은 아이들을 말뚝에 박았다. 그는 어머니와 아이를 갈라놓았다. 그는 또한 어머니의 유방을 잘라낸 뒤 잘라낸 자리에 아이의 머리를 밀어 넣고 함께 말뚝형에 처했다. 또한 헤롯, 네로, 디오클레시안 등과 같은 피에 굶주린 기독교 박해자들조차 감히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의 고통과 고난과 고문을 사람들에게 가했다.

 

그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말뚝에 박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박히지 않으려고 손발을 이용하여 몸을 감싸면서 개구리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 모습을 본 뒤 그는 그들을 말뚝에 박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이 얼마나 우아한 모습이냐!" 그들 중에는 이교도도 있었고, 유대인, 기독교인, 왈라키아인도 있었다.

 

그는 물건을 훔친 집시를 잡아들였다. 그러자 다른 집시들이 긍에게 와서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드라큘라는 "그는 목을 매달아야 한다. 너희들이 매달아라."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은 저희의 관습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드라큘라는 접시를 냄비에 넣고 끓여버렸고 다 익었을 때 다른 집시들로 하여금 뼈까지 먹게 했다.

 

드라큘라가 말뚝에 박은 시체들 사이에 있을 때 한 귀족이 찾아왔다. 드라큘라는 시체들 사이를 거닐면서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 숫자가 하나의 거대한 숲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 그는 드라큘라에게 왜 이런 악취를 맡으며 거닐고 있느냐고 물었다. 드라큘라는 "악취가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귀족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드라큘라는 그를 즉각 말뚝에 박아 악취가 나지 않을 정도의 높이에 세워두었다.

 

한 사제가 자신이 저지른 부정행위를 만회하지 않으면 절대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설교했다. 그러자 드라큘라는 그 사제를 집으로 불러 테이블에 앉혔다. 그런 뒤 그의 접시에 빵을 잘게 부수어 올려주었다. 사제는 잘게 부순 빵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그러자 드라큘라가 사제의 설교 내용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사제는 "모두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러면 그대는 왜 내가 부정하게 부순 빵을 나로부터 받아먹는가?"라고 물었다. 드라큘라는 그 사제를 즉시 말뚝형에 처했다.

 

그는 자신의 영지에 있는 지주와 귀족들 모두를 집으로 초대하였다. 식사가 끝난 뒤 그는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향해 이 땅에서 통치한 군주들 중 몇 사람이나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중 한 사람이 기억해낼 수 있는 만큼 기억해내어 말했다. 다른 귀족들도 기억할 수 있는 만큼 기억하여 대답했다. 한 사람은 50명이라 했고 다른 사람은 30명, 또 다른 사람은 20명, 그 중 가장 젊은 사람이 7명이라 답했다. 그러자 그는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모두 말뚝형에 처했다.

 

그의 정부가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여인으로 하여금 이를 확인해보도록 했다. 그 여인은 어떻게 그녀가 임신일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정부를 데려다 아래에서 가슴까지 벤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디에 있었으며 나의 생산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두에게 보여주겠다." 그는 그 외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수많은 비인간적 행위를 자행했다.

 

1460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아침에 드라큘라는 하인들과 함께 숲에서 나와 왈라키아인들을 모두 모았다. 아믈라스 마을 외곽에 모인 사람들을 한데 쌓은 뒤 장검과 단도를 이용하여 양배추처럼 난도질했다. 그들의 목사와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사람들은 집으로 데려와 말뚝형에 처했다. 그리고 그는 마을을 몽땅 불태웠다. 이때 3만 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서기 1462년 드라큘라는 니코폴리스로 와서 기독교도, 이교도 등 온갖 종족을 합쳐 25000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그 중에는 그의 신하들이 포로로 잡은 아름다운 여인과 처녀들도 있었다. 신하들은 이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도록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청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드라큘라는 신하들까지 포함하여 모두를 양배추처럼 난도질하라고 명했다. 그는 그에게 조공을 요구하는 투르크 술탄에게 조공을 바쳐야만 했기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드라큘라는 술탄의 신하들에게 자신이 술탄을 직접 만나 조공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에 사람들은 기쁨에 넘쳤고 그리하여 그는 남은 신하들을 모두 모아 함께 갔다. 그런 뒤 그는 이들을 모두 죽였다. 그는 또 팔가레이라는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사람을 머리카락으로 고정시켜놓았다. 그가 태워 죽인 사람을 제외하고도 25000명이 죽었다.

 

헤르만스타트에서 온 전령들이 드라큘라가 굽고, 끓이고, 가죽을 벗겨 죽인 사람들 외에도 왈라키아에서 말뚝에 박혀 죽은 시체가 숲을 이루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파가라스라는 지역의 전 주민을 왈라키아로 데려가서 말뚝에 박아 죽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보화를 은밀한 곳에 숨기는 임무를 맡았던 부하들의 목을 베었다. 그는 귀족들의 목을 베고 그 시체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 뒤 죽은 자들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그 음식을 먹이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친구의 시체를 먹고 있다." 그런뒤 그들도 말뚝에 박아 죽였다.

 

그는 짧은 셔츠를 입고 있는 일꾼을 보고 "집에 아내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있다고 대답했다. 드라큘라는 "아내를 이리 데려와라."라고 말했다. 그런 뒤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하느냐?" 그녀가 대답했다. "빨래를 하고, 요리를 하고, 실을 잣습니다." 그는 남편에게 긴 셔츠를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즉시 그녀를 말뚝형에 처했다. 드라큘라는 즉시 그에게 두 번째 아내를 만들어주었고, 두 번째 아내에게 남편을 위해 긴 셔츠를 만들지 않으면 역시 말뚝에 박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당나귀를 말뚝에 박은 뒤 그보다 좀 올라간 곳에서 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를 말뚝에 박았다. 300명쯤 되는 집시가 그의 영지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그 중 3명을 골라 구운 뒤 다른 집시들로 하여금 시신을 먹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서로 먹어 치우라." 혹은 투르크에게 가서 싸워도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기꺼이 그곳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 그는 그들에게 소가죽을 덮어씌웠다. 그들의 말에도 소가죽을 씌웠다. 그러면 소가죽을 싫어하는 말들이 도망쳤다. 투르크인들은 물가로 도망쳤고 집시들은 이들을 쫓아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영지 내 가난한 자들을 집으로 불러 배불리 먹인 뒤 작은 건물에 몰아넣고 태워버렸다. 그 안에는 200명이 있었다. 그는 어린 아이를 구워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먹였다. 그는 여인의 유방을 잘라내어 그 남편에게 먹였다. 그런 뒤 그 여인의 남편을 말뚝에 박아 죽였다.

 

몇 명의 와홀렌(서방의 대사)이 그를 찾아왔다. 그에게 왔을 때 그들은 모자를 벗고 절을 했다. 모자 밑에 갈색과 적색의 베레모를 쓰고 있었는데, 베레모는 벗지 않았다. 그들은 "폐하, 저희들의 관습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단한 못을 고르라고 말한 뒤 모자를 그들의 머리에 못으로 고정시켜 벗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의 관습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대부분의 설화에서는 희생자들이 투르크 대사들이었다고 나온다.)

 

 

 

○ 러시아 전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드라큘라 관련 러시아어 사본을 레이몬드 T. 맥널리가 번역하였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 옮긴이) 살티코프 - 슈레딘 공공 도서관의 키릴로프 - 벨로제르스키 수도원 컬렉션 중 MS II/1088이다. 이 문헌이 서구 언어로 번역되기는 처음이다.

 

역사적 사실성이 입증된 15세기 말 문서는 몇 가지 되지 않는데, 그중 하나가 러시아어로 된 "드라큘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복사본은 15세기~18세기 사이 러시아에서 만들어졌다. 러시아 최초의 순문학적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사학자 니콜라스 카람진은 러시아 최초의 역사소설이라고도 말했다.

 

이 필사본은 1490년 러시아 북부 키릴로프-벨로제르스키 수도원의 예프로신이라는 수도사가 작성했다. 문헌에서 예프로신은 1486년 만들어진 또 하나의 사본 내용을 그대로 베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사본의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학자들에 따르면 1480년대 헝가리 궁정을 드나들던 외교관 표도르 쿠리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드라큘라가 1462년~1474년까지 유폐생활을 했던 헝가리에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수 있다. 게다가 예프로신은 문제의 사본의 저자가 드라큘라의 아들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본래 저자가 누구였던 간에 영주의 잔인 무도한 악행보다는 가톨릭으로서의 개종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감옥에 있던 중 드라큘라는 이승에서의 "달콤함"이라는 유혹에 빠져 저승에서의 삶을 생각하지 않고 동방정교의 "빛을 저버렸고" 가톨릭 교회의 "암흑"을 받아들였다. 이야기는 강한 종교적 색체를 띤다.

 

이 사본에서는 드라큘라를 "잔인하나 공정한" 군주로 그리고 있다. 그의 만행이 아무리 잔학했다 해도 결국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투르크의 침략뿐 아니라 보야르들의 반역 음모를 사전에 막기 위해 드라큘라는 냉혹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본에는 당시 러시아의 통치자였던 이반 3세, 혹은 이반 대제가 드라큘라를 지원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왈라키아에서 기독교로 영주가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왈라키아어로 드라큘라였고, 우리의 언어로는 악마라 옮길 수 있다. 그는 이름만큼이나 잔인하고 사악한 삶을 살았다. 한번은 투르크의 술탄이 그에게 사절단을 보냈다. 그들은 궁전을 들어서며 그에게 절을 했으나, 관습상 모자를 벗지 않았다. 드라큘라가 그들에게 물었다.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느냐? 그대들은 나의 위대한 나라에 찾아와서 나를 모욕하였다." 사절단은 "우리나라의 관습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드라큘라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관습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마. 용감하게 행동해라." 그리고 그는 머리에 작은 철못을 박아 머리를 고정시켜주라고 명했다. 그런 뒤 돌려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서 너희들의 군주에게 이렇게 전하라. 너희 군주는 그러한 모욕에 익숙해져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원하지 않는 국가에 그러한 관습을 강요하지 말고 그 나라에서나 지키라고 일러라."(이 사건은 루마니아 및 독일 자료에서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투르크의 술탄이 이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위압적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드라큘라는 병력은 적었지만 밤 동안 투르크를 기습 공격하여 무수히 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병력의 차이가 너무 커 그들을 완전히 격퇴하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투르크에 대항했던 병사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전방에서 부상당한 이들은 그 공로를 치하하여 기사 작위를 내렸다. 그러나 후방에서 부상당한 이들은 말뚝형에 처했다. 그는 "너희들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투르크에 대항해 전투를 펼쳤을 때는 전군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죽음이 두렵다면 지금 나를 따라올 필요가 없다. 이곳에 남으라." 투르크 술탄은 이 말을 전해 듣고 퇴각하고 말았다. 드라큘라와의 전투로 큰 손실을 입은 술탄은 다시는 그에게 도전하지 않았다.(야습 기습 공격은 실ㄹ제 목격한 이의 기록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술탄은 조공을 바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드라큘라에게 사절을 보냈다. 드라큘라는 이 사절을 정주히 맞아 예를 갖춘 뒤 이렇게 말했다. "술탄께 조공을 바칠 뿐만 아니라 군대와 신하를 모두 이끌고 가 내가 직접 바치고 싶다. 술탄의 명령에 따를 것이라고 그대의 황제께 가서 전하라. 그리하여 내가 나의 운명을 술탄께 맡기고 그 땅을 밟았을 때 나와 내 신하들에게 아무런 해가 닥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하라. 그대가 떠난 뒤 나도 출발하여 황제께 조공을 가져다 드릴 것이며, 내가 직접 가겠다"

 

술탄은 드라큘라의 이 같은 충성심을 전해 듣고 크게 기뻐했으며, 그에게 포상을 내렸다. 당시 동방의 나라들과 교전 중이었던 그는 이 소식으로 득의만만 해졌다. 즉시 술탄은 제국 전역 요새 도시 및 각 지역에 전령을 보내어 드라큘라가 들어올 때 그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예를 갖추어 맞으라고 명령했다. 드라큘라는 자신의 전 병력을 거느리고 투르크 제국을 방문하였고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그렇게 투르크 제국 전역을 닷새간 여행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그는 도시며 마을을 약탈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포로로 잡은 투르크인들은 모두 난도질을 하여 죽였다. 그는 말뚝형에 처하지 않은 투르크인들은 목을 베어 죽였다. 그런 뒤 시신을 불태웠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그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까지 투르크인이라면 하나도 남기지 않고 학살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왈라키아로 데려왔다. 엄청난 전리품을 들고 드라큘라 군대는 금의환향했다. 약탈이 계속되는 동안 자신의 모든 만행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투르크 관리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의 황제에게 가서 그 동안 본대로 전하라. 나는 최선을 다해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만약 내가 예를 갖추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면 언제든지 돌아가 되풀이해줄 의향이 있다." 술탄은 패배의 치욕을 씹어 삼키는 것 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이 사건은 역사 기록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드라큘라는 도둑질이나 강도질, 거짓말, 그 외 어떤 부정행위도 자신의 영지에서 자행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죄인은 발견되는 즉시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귀족이든 사제든 수도사든 평민이든 상관없이 죽음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다. 드라큘라는 끔찍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의 영지에는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들러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하고 가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이곳 물은 맛 좋기로 유명했다. 드라큘라는 이 분수대 가까이 한적한 곳에 금으로 만든 화려한 컵을 갖추어 놓았다. 물을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컵을 쓴 뒤 제자리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되었다. 아무도 감히 이 컵을 훔칠 생각을 하지 못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컵은 제자리를 지켰다고 한다.(루마니아 설화에는 드라큘라의 엄격한 법 집행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드라큘라는 병들고 나이 들고 가난한 자들은 모두 찾아오라는 메시지를 나라 전역에 내려 보냈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숫자의 빈민과 부랑자들이 자비를 기대하며 모여들었다. 드라큘라는 이 불쌍한 자들을 커다란 건물에 한데 모으라고 명했다. 그런 뒤 그들이 원하는대로 음식과 술을 제공해주었다. 마구 먹고 마신 뒤 그들은 여흥을 즐기기 시작했다. 드라큘라는 몸소 그곳까지 찾아와 그들을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더 필요한 것은 없느냐?" 그러자 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폐하, 오직 신과 폐하만 아실 수 있습니다. 신이 폐하게 알려드릴 것입니다." 드라큘라가 말했따. "그러면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요구도 남아있지 않도록 만들어주길 원하는가?" 그들은 값비싼 선물을 기대하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폐하"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그는 건물의 문을 모두 잠그고 불을 질렀다. 그들 모두 불길에 휩싸여 죽고 말았다. 불길이 솟아오르는 동안 그는 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불행한 자들이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나의 영지에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살지 않고 부유한 사람들만 남도록 하기 위함이며 이들이 더 이상 가난, 질병과 같은 현세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도록 자유롭게 놓아주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드라큘라가 가난하고 병약한 자들을 학살한 이 이야기는 루마니아 설화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 영주의 목적이 역병을 억제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비평가도 있다.)

 

헝가리로부터 2명의 가톨릭 수도사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찾아왔다. 드라큘라는 둘을 각각 다른 방에 머물도록 하였다. 그런 뒤 그 중 한 수도사를 불러 바퀴살과 말뚝에 박힌 채 늘어선 시신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나의 업적이 어떤가? 저 말뚝에 꽂힌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도사가 대답했다. "폐하, 끔찍한 짓을 저지르셨습니다. 무자비한 형벌입니다. 군주는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폐하께서 말뚝에 꽂으신 이 불쌍한 사람들은 모두 순교자들입니다." 드라큘라는 두 번째 수도사를 불러 같은 질문을 던졌다. 두 번째 수도사가 대답했다. "폐하는 신으로부터 이 땅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상을 내리라는 명을 받으신 분입니다. 이들은 악을 행하였고 그만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드라큘라는 첫 번째 수도사를 다시 불러 물었다. "무지한 그대는 왜 그대의 수도원을 떠나 이 위대한 영지를 밟으며 여행을 하고 있는가? 그대는 나에게 이 사람들이 순교자라 말했다. 그대 역시 순교자로 만들어 여기 있는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마." 그리고 그는 수도사를 밑에서부터 거꾸로 말뚝에 꽂으라고 명했다. 그러나 두 번째 수도사에게는 금화 50두캣을 포상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지혜로운 자다." 그런 뒤 마차를 마련하여 헝가리 국경까지 안전하게 실어다 주었다.(루마니아 전설 6번은 결말이 다르다. 러시아 버전은 1인 독재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다.)

 

헝가리에서 온 한 외국 상인이 드라큘라의 수도에 왔다. 그의 명을 받들어 이 상인은 자신의 마차를 궁전 앞 길거리에 세워두고 그 안에 상품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자신은 집 안에서 밤을 보냈다. 누군가가 지나가다 마차 안 금안 160두캣을 훔쳐갔다. 상인은 드라큘라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드라큘라는 "안심하라. 오늘밤 그대의 금화가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도시 전역에 도둑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만일 도둑을 잡지 못하면 도시 전체를 파괴시켜 버리겠다." 그리고 그는 밤 사이 다시 마차에 금화를 채워 넣으라고 일렀고 본래 금액보다 1두캣을 더 넣어 놓았다. 상인은 아침에 일어나 금화가 돌아와있음을 보았고 되풀이해 세어보았다. 그리고 1두캣이 더 들어있음을 알았다. 그는 드라큘라에게 가서 말했다. "폐하. 금화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제 것이 아닌 1두캣이 더 들어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금화를 훔쳐간 도둑을 끌고 왔다. 드라큘라는 상인에게 "안심하고 떠나라. 만약 그대가 그 1두캣을 자백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도둑과 함께 그대를 말뚝에 꽂아버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이 이야기는 루마니아 설화에도 등장한다. 러시아 버전은 드라큘라의 공정성을 특히 강조한다.)

 

결혼한 여자가 간음하면 드라큘라는 그녀의 부끄러운 부분을 도려낸 뒤 산 채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껍질을 도시 한가운데 시장 통에 말뚝을 꽂고 걸어두었다. 그는 순결을 지키지 않은 처녀들과 간음한 과부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벌했다. 때로는 유방에서 유두를 도려내었다. 어떤 경우에는 질을 도려낸 뒤 벌겋게 달군 철봉을 꽂아 그 끝이 입에서 나오도록 했다. 시신은 벌거벗긴 채 부패할 때까지 혹은 새가 쪼아 없앨 때까지 말뚝에 달아놓았다.(여성에 대한 드라큘라의 무자비한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 독일 팸플릿에서 자주 쓰는 사례이다.)

 

여행 도중 드라큘라는 한 불쌍한 남자가 온통 누더기가 된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남자에게 "아내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있습니다. 폐하"라고 대답하였다. 드라큘라가 다시 "너희 집으로 가자. 가서 너의 아내를 봐야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가니 젊고 건강한 아내가 있었다. 그는 다시 남편에게 "밭에 씨앗을 뿌렸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답했다. "폐하, 씨는 충분히 뿌렸습니다." 그는 그에게 밭을 보여주었다. 드라큘라가 이번에는 아내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남편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가? 그의 임무가 씨앗을 뿌리고 일을 하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면 그대의 임무는 깨끗한 옷을 지어 남편에게 입히는 것이다. 그대는 몸이 이렇게 튼튼한데 남편의 옷을 빨아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아니라 그대가 죄인이다. 만약 남편이 씨앗을 뿌리지 않았다면 그가 죄인이었을 것이다." 드라큘라는 그녀의 두 손을 자른 뒤 말뚝에 꽂았다.

 

드라큘라는 말뚝에 박힌 시체들을 죽 늘어 세우고 그 가운데서 연회를 즐겼다. 그는 시체들 사이에서 먹고 마시면서 여흥을 즐겼다. 그의 정면에 서있던 하인이 시체에서 풍겨오는 악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코를 감싸 쥐고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드라큘라가 물었다. "왜 그러고 있는가?" 하인이 대답했다. "폐하, 이 악취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드라큘라는 즉각 그를 말뚝에 박은 뒤 "저 높은 곳, 악취가 닿지 않는 곳에 계속 머물라."고 말했다.(드라큘라의 섬뜩한 유머는 독일 팸플릿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헝가리 왕 마티아스의 사절단이 드라큘라를 찾아왔다. 대사는 폴란드 출신의 지위가 매우 높은 귀족이었다. 드라큘라가 말뚝에 박힌 시체 숲 사이에 연회를 마련하고 그를 초대했다. 테이블 바로 앞에는 아름답게 도금한 말뚝을 세워놓았다. 드라큘라가 대사에게 물었다. "말해보시오. 내가 저 말뚝을 왜 세워놓았겠소?" 대사가 겁에 질려 대답했다. "폐하, 어떤 귀족이 죄를 저릴렀고, 폐하께서 그를 위해 좀 더 명예로운 죽음을 준비하신 듯합니다." 드라큘라가 말했다. "잘 말했소. 역시 위대한 국가의 고귀한 대사답소. 이 말뚝은 그대를 위해 만든 거요." 대사가 대답했다. "폐하, 제가 죽음으로써 대가를 치를만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공정한 통치자이신 폐하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저의 죽음은 폐하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드라큘라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다면 벌써 저 말뚝에 박혀있을 것이오." 그는 그에게 작위와 많은 포상을 내리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그대는 위대한 국가에서 위대한 국가로 파견된 진정한 외교관이오. 그대는 위대한 군주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아는 사람이오. 그대는 위대한 군주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아는 사람이오. 그대 외에 다른 사람들은 위대한 군주에게 예를 갖추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나에게 말을 해서는 안될 것이오."

 

드라큘라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술탄이나 외국의 왕이 보낸 사절이 의관을 제대로 정제하지 않았거나 함정이 있는 질문에 재치 있게 대답하지 못할 경우 말뚝형에 처했다. "내가 아니라 그대를 보낸 나라, 혹은 그대 자신이 죽음을 자초한 것이오.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나와 같이 지혜로운 군주에게 그대처럼 우둔하고 외교적인 표현에 서툰 사람을 사절이랍시고 보냈다면 그대의 군주가 그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오. 나의 궁정에 올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왔으니 그대는 자살을 택한 것이나 마찬가지요." 이러한 대사들을 위해서는 특별히 긴 도금 말뚝을 준비하여 모두가 보는데서 말뚝형에 처했다. 그런 뒤 대사의 본국 군주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나와 같이 지혜로운 군주에게 그처럼 무지하고 아둔한 사람을 사절로 보내지 마시오."

 

드라큘라는 장인에게 철로 된 통을 제작하라고 지시해다. 그는 통마다 금을 채워 강 밑바닥에 가라앉혔다. 그런 뒤 통을 만든 장인을 죽여 그의 이름이 상징하는 악마 외에는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짓을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성이 검증되지 않았으며, 신화로 봐야 한다.)

 

헝가리 왕 마티아스가 드라큘라와 전투를 벌이기 위해 진군하고 있었다. 드라큘라와 맞닥뜨려 둘은 대결을 펼쳤고, 마침내 헝가리군이 드라큘라를 생포했다. 드라큘라는 부하들로부터 배신 당했던 것이다. 헝가리 왕은 포로로 잡혀온 드라큘라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는 부다 위쪽 다뉴브강 유역에 위치한 비세그라드에서 12년간 유폐생활을 했다. 헝가리 왕은 왈라키아 영주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혔다.(드라큘라가 헝가리에서 유폐생활을 했음이 헝가리 역사 기록 및 부다의 교황청 사절 보고서, 비오 2세 회고록 등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 영주가 죽고 나자 헝가리 왕은 감옥에 있던 드라큘라에게 전령을 보내어 다시 왈라키아의 통치자 자리에 앉고자 하는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다. 만약 있다면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하고, 없다면 감옥에서 생을 마쳐야 한다. 드라큘라에게는 이승에서 누릴 수 있는 권력의 달콤함이 영생보다 유혹적이었다. 그는 신념을 버리고 진리를 버렸다. 그는 빛을 포기하고 암흑을 받아들였다. 그는 일시적인 고통에서 빠져 나오려다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불멸의 고통을 얻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동방정교를 버리고 라틴의 이교를 선택하였다. 헝가리 왕은 왈라키아의 영주 자리뿐만 아니라 아내롭부터 그는 아들을 둘 얻었다. 그는 10년을 더 산 뒤 이도교로 생을 마쳤다.(1476년 드라큘라는 다시 권좌에 올랐으며, 이를 위해 개종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감옥에 있을 때도 드라큘라는 그의 알랄한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감옥 안의 쥐를 잡고 시장에서 새를 구해왔다. 그런 뒤 다음 방법으로 고문했다. 어떤 것은 말뚝에 박고, 어떤 것은 머리를 잘랐으며, 또 어떤 것은 털을 모두 뽑은 뒤 놓아주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스스로 바느질을 하고 음식을 해먹었다.(이 에피소드는 다른 자료에는 나와있지 않다.)

 

왕은 그를 감옥에서 풀어주고 부다로 데려와 부다 맞은편 페스트에 있는 집에서 살게 했다. 드라큘라가 왕을 만나기 전 한 범죄자가 그의 집으로 도망쳐 들어온 일이 있었다. 범죄자를 쫓던 병사들도 모두 집 안마당까지 뛰어들어와 수색을 했고, 결국 찾아냈다. 드라큘라는 벌떡 일어나서 검을 뽑아 든 뒤 범인을 잡던 수비대장의 목을 베었다. 그런 뒤 범인을 놓아주었다. 다른 수비병들이 판사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판사와 그의 부하들이 헝가리 왕을 찾아가 드라큘라에 대해 항의했다. 왕은 전령을 보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왜 이런 만행을 저질렀는가?" 그러나 드라큘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위대한 영주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자는 누구든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 판사가 저에게 직접 와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면, 저의 집에서 범인을 찾았다면, 범인을 그에게 넘겼을 것이고 그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전해 듣고 그 용기에 감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이 에피소드 역시 다른 자료에는 나와있지 않다.)

 

다음날 드라큘라의 종말이 왔다. 그가 왈라키아를 통치하는 동안 투르크가 침공하여 정복하기 시작했다. 드라큘라가 반격을 가하자 투르크 군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드라큘라의 군대는 투르크를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병사들이 투르크를 학살하는 광경을 좀 더 여유 있게 즐기기 위해 드라큘라는 언덕을 올랐다. 자신의 군대와 부하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있는 그를 누군가가 투르크로 오인하고 창으로 찔렀다. 그러나 드라큘라는 아군에 의해 공격 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즉시 칼을 꺼내 그 중 5명을 죽였다. 그러나 결국 무수히 많은 창에 찔러 죽고 말았다.(드라큘라가 사망한 해는 1476년이 확실하다. 사망 당시 상황이 과연 이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왕은 여동생과 드라큘라의 두 아들을 헝가리 부다로 데려왔다. 아들 중 하나는 여전히 왕의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오라데아 주교가 데려간 아들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사망했다. 나는 장남 미카일을 부다에서 보았다. 그는 투르크 황제에게서 도망쳐 헝가리의 왕에게 왔다. 드라큘라는 그를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여인에게 얻었다. 몰다비아의 스테판은 왕의 바람에 따라 영주의 아들 블라드를 왈라키아 권좌에 앉혔다. 이 블라드는 젊은 시절 수도사 였다가 후에 사체가 되고 수도원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 뒤 성직을 빼앗고 영주가 되어 결혼했다. 그는 드라큘라 이후 짧게 통치하다, 블라크 스테판에 의해 살해당한 영주의 미망인과 결혼했다.(바사라브 3세, 1477~1482) 그는 전 영주의 아내를 취했고, 이제 왈라키아를 다스린다. 이전에 수도사이자 수도원장이었던 바로 그 블라드다. 나, 죄인 예프로신은 이 문서를 486년 2월 13일 처음 작성했고, 140년 1월 28일 두 번째로 고쳐 썼다.(여기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모두 정확하다. 여기에 언급된 드라큘라의 아들 미카일은 미흐네아라고도 볼렀다. 전 수도사이자 현지 통치자인 블라드는 수도사 블라드1482-1495이다.

 

 

 

○ 루마니아 전설 : 구전 설화를 라두 플로레스쿠가 영어로 옮겼다. 이 자료가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루마니아 설화는 15, 16세기 독일 및 러시아 문헌 내용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루마니아 설화는 워낙 길이가 길어 그 중 몇 가지만 추려 실었다.

 

외국 상인.(루마니아에는 3가지 버전이 있다. A버전은 러시아 전설 7번과 가깝다. B버전에는 루마니아 특색이 많이 가미되었다. 예를 들면 두캣 대신 루마니아 통화인 레이가 등장한다. C버전은 새로운 형태로 비교적 최근 만들어진 내용인 듯하다. C버전을 보면 루마니아에서도 드라큘라라는 이름과 '말뚝에 박아 죽이는 자'라는 표현을 연관시켰음을 알 수 있다.)

 

1. A버전

 

드라큘라가 왈라키아에를 통치하던 시절, 신분 높은 피렌체 상인이 그의 영지를 지나갔다. 그는 돈과 상품을 무척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당시 수도였던 티르고비슈테에 닿은 뒤 상인은 바로 궁전으로 가서 드라큘라에게 자신의 시중을 들고 상품과 돈을 지켜줄 시종을 붙여달라고 했다. 드라큘라는 상품과 돈을 광장에 놓아둔 뒤 궁전으로 와서 자라고 말했다. 상인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명령에 따랐다. 그러나 그날 밤 누군가가 마차 안 금화 160두캣을 훔쳐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상인이 마차를 가보자 상품은 그대로 있었으나 돈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드라큘라에게 곧바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드라큘라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의 시종들에게 명을 내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화로 마차를 채운 뒤 1두캣을 더 넣으라고 했다. 그는 티르고비슈테 시민들에게 당장 도둑을 잡아오라 명했고 도둑이 잡히지 않으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그 동안 상인은 마차로 돌아가 금화를 세었다가 놀라서 다시 세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세었다. 그는 자신의 돈이 돌아온 것은 물론 1두캣이 더 있어 무척 놀랐다. 그는 드라큘라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제 돈을 모두 찾았습니다. 그런데 1두캣이 더 들어있습니다."

 

그때 도둑이 궁전으로 잡혀왔다. 드라큘라는 상인에게 말했다. "마음 놓고 길을 떠나라. 1두캣이 더 있다는 사실을 자백하지 않았다면 나는 너를 이 도둑과 함께 말뚝에 박았을 것이다." 드라큘라는 자신에게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구분없이 아랫사람들을 모두 이렇게 다루었다.

 

 

2. B버전

 

먼 옛날 영주 블라드 체페슈가 통치하던 시절, 한 상인이 우리 땅을 지나가다 교차로마다 멈추어 서서 1000레이가 든 돈주머니를 잃어버렸다고 외쳤다. 그는 누구든 찾아주는 사람에게 사례로 100레이를 주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루마니아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했듯 신을 경외하는 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상인이시여, 생선시장 뒤 교차로를 지나다 이 돈주머니를 주웠습니다. 잃어버리셨던 그 돈주머니인듯 싶습니다." 상인은 "맞소. 내 돈주머니요. 감사드리오."라고 대답했다.

 

돈을 확인하면서 상인은 어떻게든 사례금을 주지 않을 방법을 궁리했다. 동전을 모두 세고 난 뒤 그는 모두 주머니에 다시 넣고 이렇게 말했다. "돈은 모두 세었소. 내가 약속했던 사례금을 이미 떼어가셨음을 알았소. 여기에는 1000레이가 아니라 900레이만 들어있소. 당신은 그 돈을 가질 자격이 충분히 있소. 나를 위기에서 구해준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독교인이 대답했다. "상인이시여, 지금 100레이가 모자란다고 잘못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돈주머니를 풀어 안을 들여다본 적도 없습니다. 그 안에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찾은 그대로 돌려드렸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소." 상인이 날카롭게 말했다. "나는 1000레이가 든 주머니를 잃었는데 당신이 내게 가지고 왔을 때는 900레이만 들어있었소. 그게 사실이오. 내가 주고 싶어도 사례금을 줄 수 없게 되었소. 어디, 탄원이라도 하고 재판이라도 걸어보시오."

 

상인은 죄책감에 얼굴을 붉혔다. 농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영주에게로 가 호소했다. "폐하, 100레이를 받지 못해 이러는 것이 아니라 저는 순금만큼이나 정직하고 절대 그를 속이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그가 저를 의심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영주 자신이 교활한 자였기 때문에 상인의 교활함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상인을 데려오라 일렀다. 상인과 농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영주가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정의의 저울에 달아본 결과 어떤 쪽에 무게가 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상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가 물었다. "상인이여, 내 영지 사람들은 거짓말이 무언지 알지 못한다. 엄격히 금지시키고 있다. 그대는 1000레이가 든 돈주머니를 잃었고, 교차로에서 이를 소리쳐 외친 결과 이 기독교인이 900레이가 든 주머니를 가져다 주어다. 그 돈주머니는 그대가 잃어버린 돈주머니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무슨 권리로 그 주머니를 받았는가. 그 주머니를 찾은 사람에게 돌려주고 그대의 주머니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라. 그리고 그대 기옥교인이여.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저 주머니는 그대가 보관하라." 그리하여 그가 명한대로 모두 따랐다.

 

 

3. C버전

 

옛날 옛적 사람을 말뚝에 박아 죽이던 영주 드라큘라가 왈라키아를 다스렸다. 영주는 가혹하였으나 공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도둑, 거짓말쟁이, 게으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영지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통치기간이 더 길었다면 그러한 사회의 기생충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더 이상 생겨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는 못했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왔던 한 상인이 엄청난 양의 물건과 돈을 가지고 모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영주가 있는 티르고비슈테를 지나야 했다. 투르크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는 루마니아 사람들이 부정직하며 산적만큼이나 질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티르고비슈테에 닿자마자, 그는 선물을 들고 드라큘라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저의 운명에 따라 제가 몇 년간 땀 흘려 모은 재산을 모두 들고 폐하께서 통치하시는 땅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땅은 기독교인들의 땅이라고 합니다. 제가 서방의 나라로 가서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에게 약탈을 당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비나니 제발 제가 떠날 때까지 저의 돈과 물건을 지켜줄 경비병 몇 명만 붙여 주십시오."

 

성질이 불 같았던 드라큘라는 당장 눈썹을 찌푸리고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이여, 그 선물은 당장 집어넣으라. 그리고 네가 소유한 것을 모두 광장이나 길거리에 버려두고 오라. 아침까지 그렇게 놓아두었다가 만약 도둑을 맞으면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

 

여기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드라큘라의 명령에는 당장 복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피렌체 상인은 두려움에 얼어붙었으나 곧 명을 이행했다. 그는 밤새 걱정에 휩싸여 한숨도 자지 못했따. 다음날 아침 상인이 거리로 나가보니 과연 아무도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드라큘라에게 가서 그는 자신의 돈과 물건이 그대로 있다고 보고하고 그의 땅을 칭송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돌아다녔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이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네가 나에게 주려 했던 선물은 얼마만한 가치가 있느냐?" 드라큘라가 물었다. 상인은 망설이며 대답을 피했다. 드라큘라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얼마를 바치려 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든 내 영지에서 본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라."

 

 

드라큘라와 투르크 대사.

 

드라큘라가 왈라키아를 통치하던 시절 술탄 메메드 2세가 사절단을 파견했다고 한다. 대사들은 영주의 알현실로 들어가 그들의 관례에 따라 모자를 벗지 않고 예를 갖추었다. 드라큘라가 물었다. "왜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가? 나에게 예를 갖춘다면서 나를 모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투르크 사절단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우리나라 관습입니다." 드라큘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대들의 관습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겠다. 더욱 엄격히 관습을 따르도록 하라." 그런 뒤 시종들을 시켜 못을 가져오게 하여 투르크 사절단의 머리에 박았다. 그들을 돌려보내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서 그대들의 주인에게 전하라. 그대들의 주인은 그러한 모욕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앞으로 우리나라에든 다른 나라에든 사절단을 보낼 때 자신의 관습을 함께 전달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일러라. 우리는 받지 않겠다."

 

 

냄새에 민감한 보야르.

 

범죄를 저지르면 재판을 거치기도 전에 처단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이 예전에 지나가버려 무척 다행이며, 앞으로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 시절의 희생자가 되지 않은 것이 무척 다행이다.

 

방자하게 굴던 몇몇 보야르들이 드라큘라의 명에 의해 말뚝형을 당했다. 얼마 후 드라큘라는 다른 보야르들을 불러들여 그 끔찍한 광경을 직접 확인하게 만들었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또한 드라큘라는 다른 파벌(다네스티 가문)을 따르는 보야르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던 듯도 하다. 그런데 말뚝에 박힌 희생자들과 함께 음모를 꾀했던 참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친구라서 그랬는지 한 보야르가 과감히 이렇게 말했다. "폐하. 궁전에서부터 이곳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이곳은 공기가 더럽혀졌지만, 저 위쪽은 깨끗합니다. 악취가 폐하의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냄새가 코를 찌른단 말인가?" 드라큘라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따. "그렇습니다, 폐하. 영주이신 폐하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이 장소를 어서 떠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보야르의 본심을 마침내 꿰뚫어보게 되기도 했고, 다른 보야르들의 입을 미리 막기 위해서 드라큘라는 시종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여기 보이는 말뚝보다 3배 정도 더 긴 말뚝을 가져오라. 아래쪽 악취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이 보야르를 그 말뚝에 박아 올려주어야 하니 당장 만들어오라."

 

불운한 보야르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는 드라큘라의 손바닥과 손등에 입을 맞추려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잠시 후 그는 주변 어느 말뚝보다 높은 말뚝에 박혀 차마 듣기 안타까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게으른 여인.

 

드라큘라는 자신의 공국을 엄격히 통치하는 빈틈없는 인간이었따. 군복이 흐트러져있는 병사를 보면 즉각 처단했다. 시민들도 깔끔학고 단정한 옷 매무새를 갖추도록 했다. 그는 실수가 잦거나 손이 느린 사람을 참지 못했다. 난봉꾼이나 방탕한 사람을 보면 분노가 폭발했다.

 

하루는 지나치게 길이가 짧은 셔츠를 입은 농부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의 바지 역시 다리에 들러붙어있어 허벅지 윤곽이 드러날 정도였다. 드라큘라는 즉각 그를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아내가 있느냐?" 그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폐하." "네 아내는 게으름을 피우는 족속이구나. 네 셔츠는 장딴지에도 닿지 않을 정도로 짧지 않느냐? 그런 여자는 내 영토에 살 자격이 없다. 벌하리라!"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제 아내는 절대 집을 떠나지 않고, 늘 정직합니다." "너는 올곧고 부지런한 사람이니 더 훌륭한 아내를 얻어야 한다."

 

한편 드라큘라의 부하 2명이 그 못된 여자를 잡아 궁정으로 끌고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말뚝형에 처해졌다. 드라큘라는 다른 여자를 불러 막 홀아비가 된 농부와 결혼시켰다. 드라큘라는 그의 두번째 아내가 된 여자에게 이제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전 아내가 왜 자신의 분노를 샀는지 설명해주었다.

 

두번째 아내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한 나머지 따로 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녀는 한쪽 어깨에 빵을, 나머지 어깨에 소금을 얹어놓고 일하며 먹었다. 그녀는 드라큘라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남편을 만족시키고자 사력을 다했다. 그녀가 성공했을까? 오늘날 드라큘라와 같은 군주가 우리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면 말뚝이 모자랐을지도 모른다.

 

 

빈민들을 태워 죽이다.

 

이 이야기는 블라드 체페슈 시절에 부랑자가 많았다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먹기 위해 그들은 이리저리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고, 노동이 아닌 구걸을 통해 목숨을 이어갔다. 이들에게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 종일 걸어 다니지 않느냐. 그런데도 일을 못 찾는다면 그것이 과연 내 책임일까?" 그러면 이런 옛말을 들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신이시여, 제가 찾지 못하게 하소서." 다른 부랑자들도 "모피상인이 밤낮으로 일해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재단사가 평생 일해도 바늘구멍만큼의 보상밖에 받지 못한다. 구두 고치는 사람은 늙어서까지 쭈그리고 앉아 일하지만 빈손으로 묻힌다."고 불평하며 어떤 직업이든 흠을 잡았다.

 

영주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일할 능력이 되는 거지들이 몇 명인지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궁리하기 시작했다. 복음서에서는 반드시 땀 흘려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주 블라드는 "이 사람들이 다른 이의 땀으로 먹고 산다. 그러므로 쓸모가 없는 종족이다. 이는 절도와 같다. 숲에서 강도를 만나더라도 그보다 민첩하게 움직이면 탈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종족은 구걸을 통해 천천히 사람의 재산을 턴다.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강도보다 질이 나쁘다. 제발 이들이 내 땅에서 모두 사라지기를!" 생각을 정리한 드라큘라는 전국의 부랑자와 거지들에게 옷과 먹을 것을 준다는 발표를 했다.

 

그날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으로부터 티르고비슈테로 거지들이 몰려들었다. 영주는 시종들을 시켜 모두에게 의복을 나누어주었고 이들을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건물로 모두 몰아넣었다. 거지들은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정말 영주답군. 이 옷과 음식도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것 아닌가? 선심을 쓰려면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쓸 것이지." "이봐. 그래도 변했잖아. 더 이상 예전의 그 영주가 아니야." "무슨 소리야.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어."

 

그리고 그들은 먹기 시작했다. 과연 진수성찬이다. 와인이며 음식도 모두 최고급으로, 영주의 식탁에나 오를만한 것들이었다. 거지들은 훗날 전설로 남은 이 향연을 마음껏 즐겼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먹고 마셔댔다. 모두 술에 거나하게 취했다.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지경이 되자 갑자기 사방에서 불길이 올라왔다. 영주가 하인들을 시켜 건물에 불을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문으로 달려갔으나 문은 이미 잠겨있었다. 분노에 찬 용이 입에서 불을 내뿜듯 불길이 치솟았다. 비명소리와 울부짖는 소리, 신음소리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들이 애원한다고 꺼질 불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 둘 쓰러져갔다. 서로 끌어안고 있기도 했다. 도움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그들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았다. 화마가 점점 덮쳐오자 이들을 고통으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사람들은 질식해 쓰러졌고 건물과 함께 잿더미로 변했다. 마침내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아무도 숨이 붙어있지 않았다.

 

과연 가난한 자들이 모두 제거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그 반대다. 드라큘라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주변을 돌아보고 진실을 확인하라. 오늘날에도 별반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는 한 거지들도 없어지지 않는다.

 

 

두 수도사.

 

한 교활한 그리스 수도사가 우리 땅을 여행하다 정직하고 신을 경외하는 가난한 루마니아 사젱돠 만나게 되었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들은 의견의 차이를 보였고, 격렬한 논쟁이 불붙곤 했다. 그리스 수도사는 사제를 얕보고 루마니아인들을 무시했다. 사제가 말했다. "루마니아인들이 바보 같고 거칠다면 왜 세련되고 똑똑한 그대의 동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누가 그대를 이곳으로 불러들ㅇ려 이렇게 성가신 일을 만들었는가?"

 

이 두 성직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드라큘라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이 둘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고 날을 잡아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약속한 날이 되어 두 성직자가 도착했다. 그는 둘을 각각 따로 알현했다. 그리스 수도사는 영주를 알현하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 했으나, 루마니아 사제도 초대된 사실을 몰랐다. 루마니아 사내는 드라큘라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알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당황했다. 그러나 드라큘라가 자신에 대한 호의를 보인다면 교구민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부탁할 생각이었다. 드라큘라는 그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이를 알아낼 참이었다. 그리스 수도사가 방에 들어오자 드라큘라는 물었다. "수도사여, 그대는 성직자로서 내 땅을 여행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말하라, 그들이 나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던가?"

 

이러한 질문을 받고 수도사는 한 가지 답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인 특유의 교활함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았다. "폐하, 이 땅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녀본 결과 모두 폐하의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모두 폐하의 통치에 만족해합니다. 사람들은 왈라키아에 이처럼 공정한 군주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저는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신성한 곳으로 온 당신의 백성들(그리스인)에게 더 큰 자비를 보여주시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이 불행을 겪고 있는 그 신성한 곳의 수도사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영원토록 천사의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너는 비열한 수도사이자 악인이다." 분노에 찬 드라큘라가 눈썹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드라큘라는 이미 수도사에 대해 알고 있는듯 했다. 옛말에도 있듯 태양이 떴다고 해서 모두가 따뜻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을 열고 드라큘라는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이 사악하고 비열한 것을 데리고 처형해라." 그의 명령은 당장 실행되었고 수도사는 말뚝에 박혔다. 그런 뒤 이 모든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루마니아 사제에게 드라큘라가 같은 질문을 했다. "말하라,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들이 무엇이라 해야 하겠습니까, 폐하? 모두 같은 의견은 안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곳 저곳에서 폐하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이전과 달리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대는 진실을 말할 줄 아는구나." 드라큘라가 즐거워하며 말했따.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앞으로 궁정 고해신부가 되어다오."

 

 

드라큘라의 정부.

 

드라큘라에게는 정부가 있었다. 그녀의 집은 티르고비스테 근교 어둡고 외딴 곳이었다. 이 여인을 만나러 갈 때면, 그는 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녀는 드라큘라의 취향에 따라 딱 맞는 단순한 육욕을 대상이었다. 이 불쌍한 여인은 드라큘라를 즐겁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가 사랑의 표시를 하면 드라큘라도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었다. 그녀의 곁에 있을 때는 정말 즐거워하는듯 보이기도 했다.

 

하루는 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눈치채고 기분을 북돋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폐하, 제가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떤 좋은 소식이냐?" 그녀가 비유적으로 대답했다. "작은 생쥐가 우유통에 들어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드라큘라가 웃으며 물었다. "폐하, 제가 임신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쓸데없는 말은 말어라." 여인은 드라큘라가 거짓말한 자를 단죄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말을 되돌릴 수 없었다. "폐하, 정말입니다." "그럴리 없다." 드라큘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분명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인은 계속했다. "절대 그럴리 없다." 드라큘라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마." 그는 칼을 칼집에서 꺼내어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배를 갈랐다.

 

죽어가는 여인을 향해 드라큘라가 말했다. "내가 그럴리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는 고통에 몸을 뒤틀고 있는 여인을 그대로 놓아둔채 그 집을 떠났다.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를 즐겁게 해주려다 거짓말을 했다는 죄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블라드 체페슈.

 

A버전 : 우리 마을은 블라다이아라 하는데, 노인들이 하는 얘기로는 블라드 체페슈라는 예전 영주의 이름을 따 지었다고 한다. 이 영주는 지금 시청이 서있는 자리에 큰 저택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서 죄인들을 벌하고 말뚝에 박았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분수 옆 언덕에서 말뚝에 박혀 죽은 자들의 유해가 발견되고 있다. 블라드 체페슈 시절 및 그 이후에 우리 마을에서 그처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지만 않았어도 그가 형을 집행하던 그 저택과 끔찍한 말뚝이 계속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메헤딘티 구역 블라다이아가 사는 60세의 디누 디미트리우의 이야기)

 

B버전 : 블라드 체페슈 시절에는 투르크족 때문에 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세금을 내지 못하면 볼모로 잡아가거나 징집 당했다. 가축을 가지고 있으면 10마리 중 1마리 꼴로 앗아갔다. 당시에는 모두 양떼를 키웠다. "여름에는 달콤하게 만들어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동물이었는데, 그때는 우유가 무척 풍부하고 값도 쌌기 때문에 물 대신 우유로 마말리가(옥수수가루, 버터, 치즈 등을 섞어 만드는 루마니아 전통 음식 - 옮긴이)를 만들어 먹었다. 아무튼 그래서 블라드 영주가 투르크를 미워했다. 그는 그들을 끝까지 쫓아가 잡은 뒤 말뚝에 박아 죽였다. 블라드 영주는 투르크를 못 본체하거나 우리 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대하지 않는 보야르들을 반드시 벌했다. 언젠가 그는 원한을 품고 있었던 보야르들에게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모이자 블라드는 한꺼번에 말뚝형에 처했다.(메헤딘디 구역 알마젤의 기타 아 루이 디누 라둘루이의 이야기)

 

C버전 : 블라드 체페슈는 끔찍할 정도로 가혹한 군주였다. 그는 거짓말을 하거나 노인을 공경하지 않거나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말뚝형으로 다스렸다. 그는 우리 땅을 약탈하러 오는 투르크 역시 말뚝에 박았다. 영주는 웬만한 마을보다 큰 저택에 살았으며 그곳에는 말뚝과 교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마을은 벨레티 근처 알부텔레라는 곳인데, 바로 이곳에 블라드 체페슈가 법을 집행하는 그의 저택이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이곳에서 목매달아 죽였다. 숨을 거둔 후에는 말뚝에 꽂았다.(무스첼 구역에 사는 76세의 마르가 보데아 마투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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