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이스터 크로울리의 전생

Realize 2020. 10. 3. 08:25

 

 

연초에 올린 미스터 크롤리에 있는 에드워드 켈리에 대한 전생 말고

다른 전생들에 대한 소개가 있는 내용들을 올립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생에도 참 다사다난한 크로울리네요.....

크로울리에게 안정이란 단어는 존재치 않는걸까요?

 

 

 

세계를 움직이는 어둠의 권력 비밀결사 P136

 

1월 26일에 치러진 13번째 의식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아는 사이였다는 전생을 떠올렸다. 과거 크로울리는 아이아라는 이름의 신전 무용수, 뉴버그는 마르드크레스라는 남자였다고 했다. 전생에서 마르드크레스는 비의 참례 지원자로 아이아의 유혹적인 춤을 보는 시련을 받고 있었다. 그는 아이아를 범하도록 명받았따. 실패하면 그는 마치 거대한 촛불을 끄는 기구처럼 생긴 도구로 거세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마르드크레스는 아이아의 매력에 욕망이 끓어올랐지만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그녀를 범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 사제의 눈에 들었던 그는 간신히 거세당하는 징벌을 면하기는 하였지만, 그와 아이아는 신전에서 추방되어 어느 가정에 노예로 팔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성교 체위를 보여주면서 일가의 오락을 제공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

 

미스터 크롤리

 

고대이집트 라 호오르 크후이트를 모시는 이집트 제26왕조의 사제 앙크아프나콘스(Ankh-af-na-Khonsu). 

 

(중략)

 

기원전 6세기경 중국에서 고쉔이라는 인물로 태어나 전설적인 노자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 생에 크롤리는 노자의 도덕경을 새롭게 해석한 주해서를 펴내기도 한다.

 

다음 생에는 그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탄생 직전에 환생한다. 크롤리는 이 생애에서 비밀원수들의 회의에 참석한 자신의 모습을 기억했다. 회의의 의제는 인류의 진화를 돕기 위한 정책의 결정이었는데 크롤리를 포함한 소수의 참석자는 인류에게 숨겨진 지혜를 내보여 주자는 쪽이었으나 대다수의 참석자들, 특히 아시아 출신의 비밀원수들은 이런 주장을 들어보는 것조차 거절해 버리고 “저 신참들로 하여금 쓰라린 교훈을 얻게 하자”는 듯이 투표도 하지 않고 회의장을 떠나 버린다. 이 회의의 결과로 크롤리는 이때부터 인류를 적극적으로 돕는 일종의 ‘행동파 요원’으로 뽑힌다. 이것은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길이었으나 크롤리는 이 길이 자신이 걸어야 할 숙명의 길이라고 믿었으며, 바로 여기에서도 그의 용기와 위대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크롤리가 기억하는 다음으로 오래 된 전생은 가톨릭교 역사상 가장 음탕하고, 가장 변태적이며, 가장 이단적인 교황으로 일컬어지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1431~1503)이다. 악명 높은 보르자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밤이면 밤마다 교황청에서 고관대작들을 불러 모아 그룹섹스 파티를 열었으며, 남성의 생식능력을 흠모하여 파티가 끝난 뒤 절정에 달한 횟수가 가장 많은 남성을 뽑아 크게 상을 내리기도 하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딸인 루크레치아와  근친상간 관계를 가졌고, 루크레치아는 아버지인 교황뿐만 아니라 두 명의 친오빠와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 루크레치아와 근친상간을 범했던 교황 알렉산데르의 두 아들중 한 명은 바로 저 전설적인 체사레 보르자로, 이 사나이는 훗날 마키아벨리의 명저 군주론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권모술수의 대가였다. 게다가 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보르자 집안의 근친상간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아들 체사레 보르자가 아버지인 교황과 동성 근친상간을 범했다는 재미있는 소문도 존재한다. 하지만 알렉산데르 6세는 이런 스캔들 만들기뿐만 아니라 교황으로서의 직무에도 충실했는데, 특히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당시의 강대한 해양국가였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해양 관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자 알렉산데르 6세는 이를 조정하기 위하여 1493년에 칙서로 두 나라의 해양활동 영역에 대한 경계를 설정하였고, 1494년에는 그것을 기초로 두 나라가 조약을 체결하여 세계의 해양을 분할 점유하게 된다. 이 역사적인 업적은 알렉산데르 6세를 단순히 ‘변태 교황’으로 단정짓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알렉산데르 6세의 교황으로서의 업적의 절정은 바로 사보나롤라의 처형일 것이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98)는 도미니크파의 수도승으로서 금욕과 고통에 대한 병적인 집착의 소유자였으며 당시 르네상스 예술이 아름답게 묘사했던 삶에 대한 사랑과 성애의 기쁨을 마귀의 계략으로 치부하고는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재앙으로 양민들을 겁주었던 광신도였다. 사실 당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이 사보나롤라 혼자서 망쳐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현대에 와서도 미술사가들은 당시 피렌체 미술이 쇠퇴했던 이유를 프랑스 군대의 침입과 사보나롤라의 등장으로 보고 있다. 여하튼 사보나롤라가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다니면서 요한계시록을 제멋대로 해석한 궤변과 요설로 혹세무민하고 다녀도 알렉산데르 6세는 무한한 인내력을 가지고 이 광신도에게 갱생의 삶을 걷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자신의 인기에 더욱 신명이 난 사보나롤라는 급기야 피렌체 지방에 독립된 정부를 세울 음모를 꾸미기에 이르렀고, 결국 알렉산데르 6세는 1498년 그를 이단으로 선포한 후 붙잡아 교수형에 처한 뒤 시체를 불에 태운다. 크롤리 스스로가 평가하는 이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서의 전생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때 그에게 주어졌던 임무는 르네상스를 최대한 꽃피우고 로마 가톨릭 교회에 다신교의 가르침을 주입시키는 것이었는데, 사보나롤라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알렉산데르 6세는 지나친 선량함으로 인해 사보나롤라를 처형하는 것을 끝까지 미루었고, 결국 그 광신도가 정의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는 그로 인해 르네상스가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다음이었다.

 

(중략)

 

크롤리가 이렇게 죗값을 치르고 난 뒤, 다음 전생에는 이반 신부(Father Ivan)라고 불리는 군인 출신의 수도승으로 환생한다. 이반 신부는 한 종교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동유럽의 외딴 수도원에 들어가 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되는데, 그리스어에 능통하며 매우 박학했고 역사를 주제로 한 책들도 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겉보기에는 존경받는 성직자이자 지식인이었던 이반 신부의 진정한 관심사는 일종의 정치적인 음모와 악마숭배였다. 그가 수도원에서 남몰래 올렸던 마법제식들은 잔인함의 극치를 이루었다 한다. 특히 이반 신부는 여자를 제물로 바치거나 고문하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이런 제식들과 함께 이반 신부는 마왕에게 거의 습관처럼 자주 기도를 올렸던, 흑마법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었다.

 

다음 생애에 크롤리는 하인리히 폰 도른(Heinrich von Dorn)이라는 이름의, 별 볼일 없는 흑마법사 지망생으로 환생한다. 폰 도른의 마법 제식은 사탄도 비웃었다고 하며, 그의 범죄는 마녀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크롤리의 폰 도른으로서의 전생은 문자 그대로 ‘실수’였던 것이다(여기서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크롤리가 폰 도른으로서 저지른 실수는 흑마법에 손댔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흑마법을 행한 ‘방법’이 유치하고 서툴렀다는 것이다).

 

바로 이 폰 도른으로서 저지른 마법적인 실수로 인해 크롤리는 다음 전생에서 참혹한 형벌을 받게 된다. 폰 도른 다음의 생애에서 크롤리는 창백하고 바싹 마른 체구의 허약한 청년으로 환생한다. 커다랗고 총기 없는 눈은 검푸르게 패어 있었고, 무엇에 홀린 듯 언제나 멍청한 표정의 소유자였다. 이 생애에서 그는 극도의 정서불안 증세로 괴로워하다 26세에서 28세 사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나쁜 업보를 정화한 크롤리의 다음 전생은 놀랍게도 저 전설적인 칼리오스트로 백잡(Count Cagliostro)이었다고 한다. 본명이 주세페 발사모였던 이 18세기 마법의 대가는 1743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하류층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어린 시절에 가출하여 떠돌이가 된 그는 유럽 전역과 이집트에다 페르시아까지 여행하면서 희귀한 은비학의 지식을 배우게 되는데, 이 바로 이때 만난 알토타스(Althotas)라는 이름의 아르메니아인 마법사는 쇠붙이를 황금으로 변환하는 능력을 지닌 현자의 돌의 소유자로, 그로부터 칼리오스트로는 연금술을 배우게 된다. 방랑을 마치고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온 칼리오스트로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귀족여성 로렌차 펠리치오니(Lorenza Felicioni)를 유혹하여 결혼한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로렌차에 의하면, 칼리오스트로가 최면술로 자신을 조종했으며 그에게 최면술을 가르쳐 준 자는 바로 18세기 정신의학의 선구자였던 안톤 메스머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최면의 영향력에서 깨어난 로렌차는 남편을 종교재판에 마귀의 하수인으로 고발한다(당시만 해도 최면술이 이런 미신적인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칼리오스트로는 자신에게 최면술을 가르쳐 준 안톤 메스머를 프리메이슨 조직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프리메이슨에 가입하지 않은 유명인사는 거의 없었으며 프리메이슨 단체는 중요한 사교장이자 인맥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칼리오스트로가 프리메이슨에 입회했던 것은 독일에서였는데, 그는 동시에 혁명주의 단체인 일루미나티의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한다. 일루미나티에서 비밀 임무를 받은 그는 프랑스 파리로 향했고 곧 파리 상류사회의 스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하는 일이 없이 지루해하던 프랑스 귀족들과 호사가들은 칼리오스트로가 보여주는 이국적인 마법의 세계에 흠뻑 빠졌던 것이다. 

 

이렇게 귀족사회의 이목을 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저 유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에 연루된다. 사건의 내용인즉, 파리의 존경받는 성직자였던 로앙 추기경이 공교롭게도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다름 아닌 프랑스의 국모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였다. 자신의 불타는 사랑을 왕비에게 은밀히 전할 길을 찾던 로앙은 평소 알고 지내던 칼리오스트로에게 조언을 구해고 그는 비싼 목걸이를 하나 사서 왕비에게 보내지 그러냐고 부추긴다. 이 권유에 넘어간 추기경은 칼리오스트로에게 부탁해서는(자신이 가면 얼굴이 알려지니까) 보석 가게에서 외상으로 천문학적인 가격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하여 왕비에게 소포로 부쳤다. 하지만 이 목걸이는 왕비에게 전달되기는커녕 궁궐에서 드 라 모트 백작 부인에게 가로채였고, 백작 부인은 목걸이를 자신이 가질 속셈으로 왕비인 척 가장하고 추기경에게 잘 받았다는 답장을 보낸다. 한편 추기경은 보석 가게에 외상값을 갚는 데 실패했고 상점 주인은 추기경이 애초에 가격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목걸이를 외상으로 샀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고는 목걸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추기경은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문제의 목걸이를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실토해 버렸고 상점 주인은 왕비에게 목걸이를 돌려달라고 하였다. 본 적도 없는 목걸이를 돌려달라는 말에 앙투아네트 왕비는 어안이벙벙할 따름이었다. 결국 이렇게 사건의 전모는 탄로나 버렸고 격노한 루이 16세의 어명으로 칼리오스트로를 포함한 관련자 전원은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사건은 평민들의 눈 앞에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이 얼마나 퇴폐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되었고 곧 저 피비린내나는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칼리오스트로가 일루미나티에게서 받은 비밀 지령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을 위한 준비작업이었으니 그는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완수했던 셈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혁명 직후 감옥에 갇혀 기요틴에 목이 잘리기를 기다리던 왕비에게 전설적인 생 제르맹 백작이 편지를 보내 “이 모든 것이 저 악마 칼리오스트로의 작품”이라고 통탄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칼리오스트로는 아내 로렌차의 고발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언도받지만 그가 마법의 힘으로 감옥을 탈출하여 자유로운 여생을 보냈다는 소문도 떠돈다.

 

크롤리의 다음 전생, 곧 크롤리로 태어나기 바로 전의 전생은 19세기 프랑스의 마법사였던 엘리파스 레비(Eliphas Levi, 1810~75)였다고 한다. 본명이 알퐁스 루이 콩스탕이었던 엘리파스 레비는 19세기 유럽에 마법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켰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저작 “고등마법의 이론과 제식”이나 “광휘의 서” 등은 아직도 열광적인 독자들을 보유한다(하지만 엘리파스 레비로서의 전생은 그 자체에 어떤 커다란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알레이스터 크롤리로서의 생에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