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세가 의도적으로 만든 고행의 길 by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유럽편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유럽편 p40
흐응~
유대인의 일신교 & 선민 사상은
모세 주도하에 '이집트계 유대인 스카우트 잼버리'한거라고........
말되네!?
울 찻집에 있는 여러 모세 글들과 함께 읽어보세용~
모세가 의도적으로 만든 고행의 길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모세다.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장,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가 직접 썼다고 하고, 이를 모세5경 혹은 토라라고 부른다. 우주의 창조와 에덴동산,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과 이삭, 십계명 등 성서의 고전적인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는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이집트 왕가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혈통이 모호한 인물인 모세는 기원전 1300년경 노예로 살고 있던 동족을 모아 이집트를 탈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을 찾아 떠나는데 이때가 일신교로서의 유대교가 성립되는 시점이다. 유대교 신앙은 그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했지만 이를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형태로 정리하고 고착시킨 것이 모세이기 때문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모세의 일화 가운데 인상 깊은 장면은 시나이 산에서 그가 십계명판을 받아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연락이 두절된 채 산 아래에서 40일간 기다리다 지친 동족이 금송아지(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을 상징)를 맨들어 섬기는 것을 본 그는 분노한 나머지 십계명판을 땅바닥이 던져 깨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모세는 새 십계명판을 받기 위해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이 일화는 당시 일반인에게 일신교사상이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모세와 연락이 끊어진 지 얼마 되지 않나 지역신의 우상을 만들어 절을 하고 있던 모습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 나타난 유대인의 강철 같은 종교적 신념과는 상반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역할의 신과 그 상징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은 모세의 시대에 당연한 일이었고 그때까지는 유대인도 그 전통과 관습에 젖어 있었다. 허나 약속의 땅을 찾아 시나이 반도의 광야를 헤매던 40년 동안 모세는 강력한 권위와 함께 홍해를 가르고 신과 대화하여 십계명을 받아오는 기적을 통해 유일신 하느님의 전능함과 강력한을 유대인들의 뼛속 깊이 심게 되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섬긴 죄로 동족 3000명을 처형했는데, 이 시절 동족의 죄를 잔혹하게 다스리던 그의 독재 행각에는 오랜 방랑 기간 동안 겪은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심을 유대인의 심중에 심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사실 가나안은 이집트에서 천천히 걸어도 불과 몇 달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지역이다. 그런데도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모세에 의해 기획된 의도적인 고행의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고행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구설원을 배타적으로 방어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고 결국 일신교로서의 유대교 신념을 더욱 강하데 담근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특수한 여건에 더해 모세가 신에게서 직접 받았다는 십계명과 그것을 안치한 성궤 등 스스로가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증거물이 마련되고, 그 결과 모세가 도입한 야훼 신앙은 공허한 금송아지 숭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권위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성궤가 신의 증표를 넘어 신 그 자체와 동일시되고, 이후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에 안치됨으로써 신이 직접 거하는 장소로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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