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양의 연금술 by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p211
2. 서양의 연금술
서양의 연금술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로부터 연금술의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수세기에 걸친 연금술의 침체기(6~12세기)가 지난 후 아랍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다시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연금술 이론과 실험에 기초를 제공했다. 앞서 중국의 도교 철학자들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다섯 가지 원소로 파악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질이 네 개의 원소(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물질들은 갖가지 비율로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물질은 항상 변화한다고 믿었다. 그것들은 생성한 후, 성장하고, 부패하고, 감소하다 결국 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물질 내의 원소들이 항상 유동하며 이 원소에서 저 원소로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물질에 들어 있는 네 가지 성분 원소의 비율을 바꿈으로써 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다는 연금술사들의 생각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죽음으로부터 생명이 잉태된다는 생각은 연금술사들이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생각이었다. 이 사고로부터 비천한 물질을 원물질로 환원시키는 연금술사들의 최초의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것은 나중에 불순물질의 죽음, 정화 혹은 부패작용을 통해 그것을 금으로 변화시키게 하는 과정으로 이르게 된다. 연금술사들은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일곱 가지 금속(은, 구리, 수은, 주석, 철, 납, 금)중에서 금이 가장 완벽한 금속이며, 여섯 개의 금속은 완벽한 금속인 금이 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닌다. 이 금속들은 충분한 시간과 물리적 여건이 조성되면 금으로 변할 수 있다. "금속 중에는 완벽함을 갖추고 금속성질에서 최고의 완전함의 단계에 도달한 금속이 유일하게 존재하는데, 이른바 금이 이 금속이다. 다른 모든 금속들은 이 금으로 변화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라고 14세기의 페트루스 보누스는 말하고 있다.
유럽 연금술의 기본적인 원리는 유황, 수은 이론이다. 즉 모든 금속에는 유황과 수은 성분이 존재하며, 그것들이 각각 다른 비율과 순도로 섞임으로써 다양한 금속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유황이나 수은을 결합하면 황화수은을 만들게 되므로 금속의 성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16세기 과학사에서 가장 괴기한 인물로 알려진 파라켈수스는 금속의 구성요소에 유황과 수은 외에 소금을 첨가함으로써 유황 수은 이론을 수정한다. 그리고 파라켈수스와 그의 제자들은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정신, 영혼 그리고 육체에 연결시킴으로써 연금술 이론을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만난다. 즉 수은은 정신이요, 유황은 영혼이며, 소금은 육체이다. 연금술사들의 작업에서 소금과 유황과 수은, 혹은 육체와 영혼과 정신은 사랑을 통해 결합하여 현자의 돌이 만들어지고 이 돌은 결국 모든 물질의 왕이 된다.
연금술의 과정은 탄생과 죽음의 여정이다. 연금술사들은 대지를 어머니로, 땅 속의 광석을 자궁 속의 아이로 파악했다. 현자의 돌을 만드는 과정은 탄생, 성장, 결혼 그리고 죽음과 같은 용어들로 묘사되며 연금술 용기들은 자궁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남성 유황과 여성 수은의 화학적인 결혼이나 성적인 결합은 연금술의 중심적인 이미지이다. 그들은 그들이 잉태할 현자의 돌의 부모이다. 한편 나무의 이미지는 현자의 돌에 이상적으로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나무처럼 돌도 계속해서 새로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헤르메스와 에메랄드 평판
그리스 신들의 사자인 헤르메스는 서양 연금술의 아버지이자 보호자로 여겨진다. 또한 그는 이집트의 치료의 신이자 지혜의 신 그리고 동시에 학문의 신인 토트와도 동일시된다. 원래 그리스어로 헤르메스는 학문의 능력을 뜻한다. 그는 막 태어난 신생아로 묘사되기도 하고, 풍요와 음악의 수호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연금술서에서는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두 마리의 뱀이 감겨 있으며 꼭대기에 쌍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지팡이는 순환성을 상징하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모양을 한 우로보로스와 함께 연금술의 상징화에 자주 등장한다. 헤르메스는 연금술에 관하여 3만 6천 권의 원전을 집필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작은 난해한 표상들로 가득한 에메랄드 평판이다. 에메랄드 평판에 대해서는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연금술사들의 바이블이 되었고, 13세기 이래 연금술의 저작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허구가 아니라 확실하고 진실한 것을 말하라.
2. 한 물질의 기적을 완수하는 데서는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으며,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3. 한 존재에 대한 한 단어로 모든 사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모든 사물들은 개작을 통해서 이 하나의 사물로부터 만들어진다.
4. 그의 아버지는 태양이며 그의 어머니는 달이라. 바람은 그것을 자궁에 옮겨주고 그의 양분은 흙이라.
5. 그것은 전 세계를 통들어 완전함의 아버지이다.
6. 만일 이것이 흙으로 변하게 되면, 그 힘은 강하리라.
7. 흙을 불로부터 분리해내고 정교한 것을 거친 것에서 분리해 내어 신중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라.
8. 가장 위대한 총명함으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라. 그리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우등한 것과 열등한 것의 힘을 하나로 모으라. 그러면 너는 전 세계의 영광을 얻고 불명료함은 너에게서 멀리 날아가 버리리라.
9. 이것은 용기 그 자체 이상의 용기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미묘한 사물을 정복하며 또한 모든 단단한 물체를 뚫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 그리하여 이 세계는 형성되었다.
11. 따라서 여기에 나와 있는 경이로움에 따르라.
12. 그러므로 나는 전 세계 철학을 이루는 세 부분을 갖고 있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 불린다.
13. 태양의 영향에 대해서 내가 말해야만 할 것은 완전하다.
이 수수께끼 같은 글들은 연금술에 대한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연금술에서 모든 창조물은 하나의 신성한 영적 물질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각 물질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성은 생명의 필연적인 법칙이며 연금술 영기 안에서의 변성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반영할 뿐이다. 현자의 돌은 모든 완벽함의 아버지이며, 태양과 달, 유황과 수은은 돌의 부모로 표현된다. 이 돌의 변성 과정에서 금속에 들어 있는 거친 원소들은 떨어져 나간다.
연금술에서 과학으로
서양의 연금술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지만, 많은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아랍인들에 의해 역수입되었다. 기원전 7세기부터 10세기경까지 연금술과 과학은 아랍인들에 의해 생생히 보존되고 발전되었다. 아랍의 칼리프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트, 아르키메데스, 히포크라테스 등의 저작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 문헌들을 아랍어로 번역, 소화하도록 했다. 11세기 초 유럽인들은 시실리와 스페인 일부를 다시 점령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유산을 재발견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스페인을 정복하면서 다양한 장서들의 필사본을 찾아내어 번역 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과정에서 최초의 연금술 문헌들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유럽 연금술 문헌들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유럽 연금술의 전성기는 11-13세기경인 중세 시대였으며, 당시의 연금술은 그노시스의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지만 합리적인 실험 역시 중시되었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자 연금술은 순수하게 정신주의적인 것에 몰두하게 된다. 16세기에서 17세기는 영적인 연금술의 전성기로, 종교적 권위의 붕괴와 그 맥을 같이한다. 사실 연금술에 내재하는 그노시스적인 요소, 즉 인간이 신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이교도적 생각은 항상 교회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1317년 교황 요한 22세에 의한 연금술 금지령은 교회와 연금술의 갈등을 드러내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연금술이 명상과 묵시, 그리고 도덕적 정화를 요하는 정신적인 수양을 필요로 하는 것인 만큼 많은 경우 수도사들이나 신부들이 연금술사였던 것도 사실이다.
서양의 연금술은 원자론, 뉴턴의 물리학 등 새로운 과학 혁명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한다. 보일이나 라부아지에의 원소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연금술에 존재하는 영적인 요소를 배제시키기에 이르렀다. 비밀이나 신비에 대한 혐오가 17세기에 전반적으로 확산되어갔고, 연금술은 물질 변화의 모든 측면과 관계된 물질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발전한다. 17세기 이후 대륙 탐험과 더불어, 망원경, 현미경, 공기펌프, 기압계 등의 발명은 서구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연금술 역시 실용적인 화학으로 변모해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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