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기적의 대마법

Realize 2021. 8. 28. 13:08

 

 

"흠. 그 얼굴을 보니까 아직도 진상을 깨닫지 못한 것 같군. 어쩔 수 없이. 카미양은 마술에 대해서는 초보니까."

 

균열이 넓어지고 유리처럼 깨져 흩어진다.

 

거기에 있는 것은 카미조 토우마가 아는 츠치미카도 모토하루가 아니다.

 

좀 더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치를 파악할 수 없는.

한 마법사였다.

 

"잠깐, 기다려, 츠치미카도, 넌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것도 모르겠어? 이봐, 어쩌면 엔젤폴의 범인도 다른 사람인건-."

 

"아니, 범인은 토우야야. 틀릴 리가 없어. 다만 본인이 엔젤폴을 무의식중에 발동시켰기 때문에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 말에 토우야는 발끈한 것 같았다.

 

"뭐, 뭐가 범인이냐! 처음 만나는 주제에 무례하군, 연예인들은 다 이래?!!"

 

카미조는 그런 토우야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았다. 그가 엔젤폴의 범인이라면 그 영향을 받는게 이상할텐데...

 

"그래 맞아. 츠치미카도. 아버지는 평범한 일반인이야. 너희들 같은 마술사가 아니라고. 이런 전 세계적인 규모의 복잡한 술식 따윈 할 수 없어. 애초에 대마술에는 마법진이니 의식장이 필요하다고 말한건 너잖아. 그런게 어디에-."

 

"본가야. 카미양네 집에. 자각이 부족했어?"

 

츠치미카도의 말에 카미조는 저도 모르게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말했잖아. 내 전문은 풍수. 그리고 풍수란 방의 구조나 가구의 배치에 의해 회로를 만들어내는 술사를 말해."

 

"뭐... 라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방의 구조나 가구의 배치에 의해서 마법진을 만드는 술식이랄까."

 

카미조는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너 바보 아니야? 그런 평범한 집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식장이 된단 말이야?! 그런..., 그런 방의 배치 하나를 바꾼다고 해서 마법진이 생기다니, 그런 웃기는 이야기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그건 평범한 집이 아니야. 거기에 있었을 텐데. 여러가지 부적, 민속공예품, 오컬트 물품. 하나하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기념풀'이고 그 힘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작은 것. 하지만 단순한 레플리카라도 우습게 볼 수는 없어. 그게 풍수적이나 음양적으로 올바른 위치에 놓이면 상승효과가 생기거든."

 

츠치미카도는 왠지 즐거운 듯이,

 

"예를 들자면 현관 근처에 키 작은 노송나무가 심어져 있었을거야."

 

"그런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있었어. 새 집이 달려 있는 작은 나무가. 그건 쉼나무야. 작은 새가 앉아서 쉬기 위한. 그리고 신도에서 신사 부지 입구에 쉼나무를 두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어. 알겠어, 카미양?"

 

"뭐, 뭘?"

 

"토리이 말이야. 글자의 뜻은 새가 있는 곳이라고 읽히는 글자를 쓰지. 토리이라는건 원래 신의 사자인 영조를 쉬게 하기 위한 물건이야. 그리고 노송나무 토리이하면 이세신궁이 떠오르는데 이건 대체 무슨 우연일까?"

 

츠치미카도는 유쾌한 듯이 웃으며,

 

"더 있지. 남향의 현관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었어. 남의 속성 색깔은 적이야. 목욕탕에는 수의 수호수인 거북 장난감이 있었지. 부엌에는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위에 호랑이니 뭐니 장난감이 있었고. 금의 수호수인 하얀 호랑이가. 확실히 하나하나는 싼 물건이지만 거기는 삼천 개가 가뿐히 넘는 부적으로 넘쳐나고 있었어. 그만큼 있으면 상승효과로 하나의 커다란 힘이 되지. 그 집은 하나의 신전으로 변한 상태야."

 

그런 말을 들어도 카미조는 믿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츠치미카도의 말은 왠지 트집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흠. 아마 카미조 부부가 '바다'로 오기 위해 집을 비운 시점에서 '의식장'은 완성 및 발동되었겠지만."

 

츠치미카도는 흥미로운 듯하면서도 잔혹한 웃음을 띠고 토우야를 본다.

 

"정말이지. 카미양의 오른손도 예외지만 토우야는 그 이상으로 특별하단 말이야. 우연이라 해도 너무 굉장해. 마치 천연 다이아몬드라도 보는 것 같은 심정이었거든. 하긴 그 멋진 우연성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말이야."

 

"웃기..., 지 마! 그런건 누가 어떻게 생각해도 억지잖아!!"

 

"그래, 억지야. -그래서 더더욱 나도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어."

 

처음으로 츠치미카도에게서 여유 같은 것이 사라졌다.

 

카미조가 그것을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있지, 카미양. 분명히 내가 한 말은 전부 억지야. 그냥 트집일 뿐이지. 하지만 실제로 엔젤폴은 가동했어. 기적이라는건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런데 카미양, 기적이라는거 믿어? 만에 하나의 우연이라는걸 믿을 수 있어?"

 

"뭐야, 그게. 있을리 없잖아! 마술 같은건 모르지만 전자회로나 정밀기기 같은건 대충해서는 완성되지 않잖아!"

 

"하지만 실제로 엔젤폴은 발동되고 있어.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없을까, 카미양? 만에 하나의 기적을, 100% 확실하게 일으키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뭐..., 라고...? 하고 카미조의 생각이 멈춘다.

 

그런 카미조에게 츠치미카도는 웃음을 지으며,

 

"카미조가에는 여러가지 '기념품'이 있었어. 그건 특별히 '엔젤폴'을 만들려고 배치한건 아니었지. 초보인 토우야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쩌다 일어난 우연, 아무 생각 없이 골라서 장식해두었을 뿐이잖아. 엔젤폴의 마법진은 수없이 많이 배치된 레플리카(기념품)에 의해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았어."

 

하지만 하고 츠치미카도는 말을 이었다.

 

"설령 엔젤폴이 발동하지 않았다 해도 다른 대마법이 발동했을 거야. 아주 조금 '기념품'의 배치가 바뀌기만 해도 마법진이라는 '회로'가 바뀌어서."

 

츠치미카도는 손바닥을 뒤집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마법진에 '실패'는 없어. '기념품'을 어떻게 배치한다 해도 반드시 어떤 대마술이 발동하니까."

 

이번에 발동한 것이 우연히 엔젤폴 이었을 뿐.

 

발동한 것이 엔젤폴이 아니었다면 완전히 다른 사건이 일어났을 뿐이라는 이야기.

 

"카미양. 어째서 내가 카미조가에서 카미양에게 모든걸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 같아? 지금은 어떻게든 안정되어 있는 마법진을 부쉈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이야. 엔젤폴은 그나마 나은 편이야. 거기에는 어스 셰이커(극대지진)에 팬텀 하운드(이계반전), 코키토스 레플리카(영구빙토) - 발동하면 나라 한두 개가 지도에서 사라질 만한 택티컬 서클(전술마법진)이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고... 이 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리지널 서클(창작마법진)까지 존재했어. 알겠어? 초보인 카미양이라면 몰라도, 마술사 - 그것도 풍수 전문가인 츠치미카도 씨마저 알 수 없는 마법진이야. 그건 발동해서는 안돼. 절대로 발동해서는 안되는 종류의 것이야."

 

카미조가 기념품을 건드림으로써 엔젤폴을 막아버리면,

 

그 순간 스위치가 바뀐 듯이 다른 대마술이 발동하고 만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건 꽤 위험한 상황이었어. 카미조 토우마, 칸자키 카오리, 미샤 크로이체프, 히노 진사쿠, 그리고 츠치미카도 모토하루 - 카미양의 집에 있던 누군가가 하나라도 '기념품'을 이동시켜버리면 그 시점에서 다른 진으로 바뀌었을 테니까."

 

카미조는 그제야 떠올랐다. 츠치미카도가 이상할 정도로 집에서 빨리 떠나자고 재촉한 이유. 그것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미조는 그래도 부정할 거리는 찾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하지만... 맞아. 아버지는 일반인이야.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마술을 쓰려면 마력이 필요한거 아니야? 아버지가 마력을 다루는 법을 알리가 없어!"

 

"필요 없어, 카미양. 전에 말했을텐데 풍수란 대지의 '기'를 에너지로 해서 식을 움직여. 인간의 마력따윈 상관없어."

 

츠치미카도는 검지를 흔들며, "뭐, 사이클로는 발전기(대지의 기) -> 변압기(카미조 토우야) -> 전자회로(기념품 술식)이라는 루트를 통하고 있어. 토우야가 중요한 술사(공범)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카미조 토우야가 어설프게 엔젤폴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은 아마 그 때문... 일까?

 

토우야는 엔젤폴을 일으킨 범인중 하나이지만 마스터(주범)가 아니라 슬레이브(공범)였다.

 

엔젤폴은 사람의 손을 이용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메인(주범)은 풍수에 의해 악마적으로 갖추어진 서킷(세상의 구조) 자체였다.

 

빌어먹을 하며 카미조는 할 말을 잃는다.

 

츠치미카도는 그런 카미조의 모습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 집은 무수한 변환 레버가 있는 레일 같은 거라서 말이지. 변환 레버(기념품) 하나를 부수면 다른 레일(마법진)으로 바뀌어버려."

 

츠치미카도는 막힘없이.

 

"그렇기 때문에 엔젤폴을 파괴하려면 기념품을 하나씩 없애고 어쩌고 하는게 아니라 마법진 전체를 일격에 파괴할 필요가 있었어. 그래서 일단 카미양을 마법진에서 멀어지게 하고 거기 있는 아저씨의 신병도 확보하고 크로이체프하고도 화해하고, 칸자키에게 협력을 청해서 다시 한 번 본가로 돌아가서 마법진을 격파... 하는게 가장 좋은 미래 설계도였는데, 스케줄이 좀 빡빡해져서 이렇게 된거야."

 

제길 하고 카미조는 욕설을 퍼부었다.

 

"뭐야, 그거. 어째서 그렇게 돼버린 거야. 아버지는 마술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런데, 어째서, 뭐가 어떻게 되면, 그런-."

 

"이유 따윈 없겠지."

 

절망하는 카미조에게 츠치미카도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유는 없어. 원인은 없어. 논리도 없어. 이론도 없어. 인과가 없어. 목적이 없어. 의미가 없어. 가치가 없어.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어, 카미양, 너라면 알텐데."

 

그런 말을 들어도 카미조는 아무것도 모른다.

 

츠치미카도는 당혹스러운 어린아이 같은 카미조의 얼굴을 향해 잔인하게 웃으며,

 

"결국 단순히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거잖아."

 

 

-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4권 p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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