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3단계 by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이슬람

Realize 2021. 3. 7. 13:22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이슬람 p97

에 있는 내용으로~

베리베리 중요한 내용이라 함께 나누고자 올려용ㅎ

챕터6 이슬람의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기

시대를 불문하고 철학자는 선과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다. 선한 인간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악한 인간을 개과천선 시킬 수 있는가? 모든 종교는 이런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이슬람도 예외가 아니다. 여타의 종교가 죄악의 주요 원인으로 외적인 힘을 강조하는데 반해 이슬람은 영혼에 우선 눈을 돌린다.

이슬람의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게 태어났으나 육신의 본질적 성격, 즉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에서 기인하는 선천적인 약점이 있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이런 본능과 샤이탄과 이블리스 때문에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알라는 인간에게 샤이탄이나 이블리스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수단을 이미 내려주었고, 이 때문에 이들은 인간에게 제한적인 영향만 미쳐왔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높은 차원의 영성에 도달할 수도 있고, 저열한 도덕적 상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영혼의 세 단계

이슬람에 따르면 인간은 알라가 실재한다는 깨달음, 알라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3가지 단계를 겪어야 한다. 태어날 때의 인간의 영혼은 순진무구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육신을 갖춘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속세에 물들어 육신의 쾌락에 이끌리게 된다. 이것은 어린아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대개 선하게 태어나지만, 욕구와 갈망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 절제력을 쌓을 기회마저 없다면, 참을성 없고 버릇없는 아이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이슬람에서는 그릇된 출발점에서 영혼의 여정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피뜨라, 혹은 내적 본성은 이런 성향을 억누른 후 정신을 고양시켜 알라를 추종하게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이 점에 비춰볼 때 영혼의 여정의 첫 번째 단계, 즉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의지를 기초로 알라와 굳건하게 결속하는 단계가 가장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처절한 노력의 마지막 단게에 도달했을 때 받게 되는 상은 말 그대로 영원한 상이다. 꾸란은 91장의 7절부터 10절까지를 할애하여 '영혼 그 자체와 영혼에 부여된 균형과 질서 감각, 옳고 그름에 대한 영혼의 타고난 지식에 비춰볼 때, 영혼을 순결하게 하는 인간이 성공한 인간이며 영혼을 더럽히는 인간이 실패한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인간이 자기의 잠재력을 완벽히 실현시켜 그런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은 이러한 인간의 영혼 상태, 즉 자아를 3단계로 나누어서 구분한다.

1) 동물적 자아 : 기본적인 본능과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차원의 자아

2) 자책하는 자아 : 인간의 존재 목적에 관해 고차원적인 의문을 품는 자아

3) 편안한 자아 : 세속성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초월한 자아

인간 내면의 동물적 본능 : 동물적 자아

영혼의 첫 번째 단게는 태어날 때부터 활성화되는 자아로, 흔히 '동물적 자아'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식욕이나 성욕, 물욕, 안락욕 등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삶의 선택을 좌우한다.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기 자신, 혹은 자기의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된다. 쾌락주의자라고 분류되기도 하는 이들에 대해 꾸란은 '이승의 삶'에 대해서 오로지 '재미와 놀이, 상호경쟁, 부의 축적, 자기 과시'만을 추구한다고 설명하며, '알라가 무에서 너희를 창조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는데도 너희는 어째서 알라를 거부할 수 있느냐? 그러면 알라는 너희의 생명을 거두어들일 것이고, 너희는 알라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동물적 자아 단계에서 알라를 찾으려는 노력은 샤이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악한 진 때문에 한층 더 힘들어진다. 샤이탄과 샤이탄을 추종하는 사악한 진들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괴해 궁극적으로는 알라를 잊게 만들기 위해 사람의 두려움이나 욕구, 감정을 교묘하게 비집고 파고든다. 샤이탄과 사악한 진의 협박에 굴복한다면 인간은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된다.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 자책하는 자아

인생은 질펀하게 놀고먹는 잔치라는 태도를 버리고 피뜨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할 때 한 줄기 통찰력이 생기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바로 이때 영혼의 두 번째 발달 수준, 즉 자책하는 자아의 수준에 도달할 기회가 열리고 '나는 누구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사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세가 존재하는가?'와 같은 물음이 엄습한다.

이처럼 삶의 의미를 화두로 삼아 오랜 시간 고민하다 마침내 영성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힐 때, 그때가 마침내 신을 찾을 준비가 된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종교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래서 기독교, 유대교, 불교 등의 열렬한 신자가 되는 사람이 눈에 띈다. 이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슬람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영적인 깨달음을 주는 그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 커다란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자기 주변의 전통 종교로부터 영적인 갈증을 달래지 못해 다른 종교를 시험 삼아 신봉하거나 깊이 탐구하는 사람도 간혹 있을 수 있다.

'깨달음'으로 향하는 경로의 시작이 무엇이었든, '자책하는 자아'의 단게에 접어들어 알라와 이슬람의 건전한 가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나면 알라의 보편적인 가르침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현세의 삶에 덜 집착하고 불안과 스트레스에 덜 시달리게 되고, 자기의 내면을 깊게 성찰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이슬람이라는 경로로 가게될 경우에는 일상적인 기도와 성찰, 단식, 연구를 수행하게 되고, 엄격한 계율로 늘 도덕을 의식하고 살아가게 함으로 한결 더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최고 수준의 성취 : 편안한 자아

일상적인 기도와 성찰, 단식을 실천하고 계율을 따르며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완전한 평화와 평온에 도달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때가 바로 영혼 발달의 세 번째 단게인 편안한 자아의 상태이다. 현세의 무언가에 흔들리고 얽매이지 않으며, 조용히 사색하는 삶을 살아가고, 일상적으로 만나는 행운과 불행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죽으면 알라에게로 귀의할 것이라는 사실, 현세의 삶은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상태이다.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긴 안목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영혼이 편안한 자아의 단계의 단계에 접어들면 알라를 기다리는 세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여기에도 직업과 가족, 휴가가 존재한다. 이슬람은 수도원이 없을 뿐만아니라 금욕주의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일상 속에서 희사와 자기 희생, 진리,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영혼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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