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랭크셔 마녀사냥 관련 대충 글 모음

Realize 2023. 2. 13. 23:11

심심할 때 읽어보세

용 Dragon 龍 ડ્રેગન Δράκων

Draak ມັງກອນ Drage Дракон Змеј

Pūķis Dragun Joka Draigon Zmaj Dreki Draakon

Ejderha Smok Lohikäärme Sárkány דְרָקוֹן

암울하고 어두운 테마의 관광자원 개발

죽음, 잔혹함, 공포, 테러의 장소를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것을 '다크 투어리즘 마케팅'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제만을 탐구하는 연구소가 영국의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에 설립되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랭커셔 지역은 400여 년 전에 영국에서 소위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지역입니다. 죄 없는 사람들을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마녀로 몰아서 처형했던 곳으로, 지금은 마녀와 관련된 각종 기념품과 이야깃거리를 개발해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ash_86/221581408807

펜들 마녀재판(8.18)

유럽의 마녀재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영국 랭커셔 펜들 힐(Pendle Hill)의 마녀재판이 1612년 8월 18일 열렸다. 마녀로 체포된 이는 모두 12명이었지만, 조사 도중 고문으로 한 명이 숨졌고, 11명(여성 9명)이 재판에 회부돼 10명이 마녀(악마)로 교수형 당했다.

1595년 마을 주민 크리스토퍼 너티와 아들 로버트가 영문 모르게 급사하는 일이 생겼다. 유족들은 이웃집 노파 앤 위틀(Anne Whittle)과 그의 딸 앨리자베스가 마법을 걸었다고 여겼다. 중세인들은 대개 마녀로 심술궂은 노파와 그의 가족을 의심했다.

1612년 3월 또 다른 의혹 사건이 터졌다. 앨리슨(Alizon)이라는 여성이 한 도붓장수와 흥정을 하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던지 돌아서는 도붓장수를 향해 주문 같은 저주를 퍼부었는데, 그 직후 도붓장수가 쓰러진 거였다. 법원 서기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앨리슨은 자신이 마법을 걸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시인했다. 다행히 도붓장수는 무사했고, 그 일도 유야무야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야심가였던 치안판사가 그 일을 안 뒤 대대적인 마녀 사냥을 시작했다. 제임스1세 치하였다. ‘ 악마론(Demonology)’이란 책을 쓸 만큼 마녀(악마)의 존재를 믿던 제임스1세는 마녀 사냥을 영국인의 의무라 여겼다. 치안판사의 마녀 사냥은 그러니까 출세의 방편이었다. 가톨릭 혁명단체 회원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제임스1세 폭탄암살 기도도 있었던 터였다. 마녀 재판 법정에는 앨리슨 일가와 위틀 일가 외에 가톨릭 가족들도 포함됐다. 당시 법원 서기가 재판 과정과 진술 등을 기록한 ‘랭커스터 지역 마녀들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란 책을 썼다. 그 책은 당시 영국 각 지역 법원과 식민지 미국에까지 전파됐다.

한편 그 재판에서 유죄의 결정적인 증거는 앨리슨의 9살 동생 재닛 드바이스(Jennet Device)의 진술이었다. 재닛은 법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 일가족 전부와 이웃들을 마녀라고 고발했고, 배심원단은 그의 진술을 신뢰했다. 그 재판을 기점으로 14세 미만 청소년의 법정 진술 효력을 부정하던 관행이 폐지되고 더 어린 아이들의 진술을 인정하게 됐다. 1692년 19명의 마녀를 처형한 미국 ‘세일럼(Salem) 마녀재판’의 유죄 근거도 대부분 아이들의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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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들 마녀재판(8.18)

1612년 영국 펜들힐 마녀들의 교수형 장면. thedraculasociety.org.uk유럽의 마녀재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영국 랭커셔 펜들 힐(Pendle Hill)의 마녀재판이 1612년 8월 18일 열렸다. 마녀로 체포된 이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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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마녀재판 1. 마녀는 무엇을 했는가

(중략)

이 마녀사냥왕은 나중에(1603년) 잉글랜드왕을 겸했는데(제임스 1세로서), 혈액순환론으로 근대 생리학의 문을 연 윌리엄 하비가 그의 왕실 소속 의사였다. 하비는 차기 왕 찰스 1세의 시대에도 왕실 소속 의사로 계속 근무했다. 찰스 1세의 시대는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시대와 함께 잉글랜드 마녀 선풍의 절정기이기도 했는데, 1633년에 랭커셔에서 30명 이상의 마녀가 체포되었고 그중에서 마녀 마크가 발견된 16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하비와 국왕이 직접 신체검사를 실시했는데 마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근대적 과학자인 그가 바늘로 찌르는 검사를 했는지 여부는 안타깝게도 알 수 없다.

- 마녀사냥 (모리시마 쓰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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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 모리시마 쓰네오 - 교보문고

마녀사냥 |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의 기치를 내걸었던 15~17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마녀사냥’의 광풍이 휘몰아친다. 밀고, 고문, 자백 강요, 날조된 증거, 잔혹한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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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하비는 해부학과 생리학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의사였다. 그는 혈액이 심장으로부터 두뇌와 신체로 전달되는 순환의 과정을 세밀하고 완전하게 묘사한 최초의 인물로서 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의학을 배웠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까지 여행하여 의학으로 유명한 파도바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거기에서 해부학의 권위자로 ‘발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브리키우스에게 배웠다.

하비는 스승으로부터 의학의 지식은 직접적인 실험과 관찰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비는 스스로 인체를 해부하여 연구하며 이론을 세웠다. 많은 동물을 생체해부 실험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실험과 관찰에 기반을 둔 연구는 기존의 학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니 하비는 스승에게 배운 방법으로 스승마저 비판하게 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방식은 근대 과학에서 설정한 연구 방법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점차 하비는 히포크라테스 이래 서양 의학의 정설로 추앙되던 갈레노스마저 넘어서게 되었다. 그의 저서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는 의학계의 과학혁명을 이끌었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이렇게 명성을 떨치던 하비는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의 주치의가 되어 부와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일 뿐으로 그는 계속하여 연구와 진료를 병행했다.

그의 합리적 태도는 의학이 아닌 다른 문제에도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이 난무하던 1634년 영국의 랭커셔 주에서 네 명의 여인이 마녀 혐의를 받았다. 그에게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의뢰되었다. 네 명은 하비의 보고서 덕분에 방면될 수 있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9649.html

 
 

[조한욱의 서양 사람] 그 많던 의사들은 어디로 갔을까

조한욱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윌리엄 하비는 해부학과 생리학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의사였다. 그는 혈액이 심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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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엔 마녀 소품! 진짜 마녀가 살았다는 영국 랭커셔 펜들 힐(Pendle Hill)의 마녀재판.

할로윈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을 보면 유령, 뱀파이어 등과 마녀가 빠지지 않죠. 해리 포터나 넷플릭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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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들 마녀

12 명의 사람들이 마술을 비난하고 맹세했다.

1612 년에 12 명의 사람들이 이웃 십대를 살해하기 위해 요술을 사용했다고 비난 받았습니다. 랭커 셔 (Lancashire)의 펜들 힐 (Pendle Hill) 지역에서 2 명의 남성과 9 명의 여성이 결국 재판에 갔으며이 11 명 중 10 명은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15 세기에서 18 세기에 걸쳐 영국 에서 일어났던 다른 요술 재판 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즉시 비난 받아 재판을받는 일은 드문 일이었으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처형 될 수있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300 년이 넘는 영국의 요술로 처형 된 500 명 중 10 명이 펜들 마녀였습니다. 피고인 중 한 명인 Elizabeth Southerns 또는 Demdike가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마녀로 알려졌지만 공식 청구 및 시범 자체를 초래 한 비난이 Demdike의 가족 사이의 불화에 뿌리를 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합니다 다른 지역 일족. 펜들 마녀의 사건이 - 시대의 다른 시련과 마찬가지로 - 발생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시간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 정치, 미신

16 세기와 17 세기의 영국은 상당히 격변적인 시기였습니다. 영국 종교 개혁은 잉글랜드 교회가 카톨릭 교회에서 파산 한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신학보다 정치에 관한 것이 었으며, 그의 첫 번째 결혼을 무효화하려는 헨리 8세 왕의 요구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헨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딸 마리아는 왕위에 올랐고 왕좌에 대한 교황의 통제권을 다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메리는 죽었고, 그녀의 여동생 엘리자베스(Elizabeth)로 대체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개신교 인이었습니다 . 주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영국의 종교적 우월주의를위한 싸움이 있었지만 새로운 루터 교회와 청교도 같은 프린지 그룹도 포함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60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멀리 떨어진 사촌 제임스 6세와 제임스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제임스는 초자연적이고 영적으로 매료 된 고도로 교육받은 남자였습니다. 특히 마녀가 나라를 돌아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장난을 일으킨다. 그는 덴마크와 스코틀랜드에서 마녀 재판에 참석하고, 고소 된 여러 마녀들의 고문을 직접 감독했다. 1597 년에, 그는 자신의 논문 악마학(Daemonologie) 를 썼다. 이 책에서는 마녀를 사냥하고 처벌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펜들 마녀가 기소되었을 때, 1612 년에 영국은 정치적, 종교적 대변동을 겪은 나라 였고,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요술의 습격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발명품의 발명 덕분에 정보가 전보다 더 빠르게 퍼져 나갔고 모든 사회 계층의 일반 대중은 마술을 사회 전체에 대한 진정한 위협으로 보았습니다. 미신은 사실로 받아 들여졌다. 악령과 저주가 합법적 인 불행의 원인이었으며 그러한 일을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비난받을 수있었습니다.

피고인

엘리자베스 수테른 (Elizabeth Southerns)과 그녀의 가족 중 몇 명은 피고들 가운데 하나였다. 어머니 Demdike라고 알려진 엘리자베스(Elizabeth)는 당시 80 대 였고 딸 엘리자베스 디바이스(Elizabeth Device)는 조사의 최전선에 서있었습니다.

또한 Elizabeth Device의 아들이자 딸인 James와 Alison이 기소되었습니다.

Chattox라고도 불리는 Anne Whittle과 그녀의 딸 Anne Redferne은 재판에 기소되었습니다. Whittle의 법원 서기관 인 Thomas Potts는 "Chattox라는 별명 인 Anne Whittle은 아주 오래 동안 시들어 버린 소모되고 쇠약해진 생물이었으며, 그녀의 시야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위험한 마녀, 매우 긴 지속성; 항상 옛 Demdike의 반대편 : 어느 누구를 위해 좋아하는, 다른 하나는 치명적 : 그리고 그들이 부러워하고 서로 비난하는 방법, 그들의 시험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주장은 또한 농부 인 Jane Bulcock과 그녀의 아들 John, Margaret Pearson, Katherine Hewitt 및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의 부유 한 과부 인 Alice Nutter와 평등했습니다.

요금

재판 중 Lancaster Assizes가 수집 한 증거에 근거하고 Potts의 광범위한 세부 사항으로 문서화 된 바에 따르면, 펜들 마녀의 경우는 Elizabeth Southern 및 Anne Whittle, 노인 각자의 가족 그녀의 일족의 과부가 된 여자. 두 가정 모두 가난하며, 종종 만나는 것을 구걸하는 것에 의지합니다. 타임 라인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1612 년 3 월 : 어머니 Demdike의 손녀 인 앨리슨 디바이스(Alison Device)가 구걸을 하면서 행상인에게 핀을 달라고 합니다. 그는 그녀가 그 (것)들을 있게 하는 것을 사절하고, 추정되게 그가 그녀를 저주한다 - 그리고 그후 곧, 그는 발작이있는 아래로 넘어진다. 앨리슨 (Alison)은 로저 위웰 (Roger Nowell) 판사 앞에 체포되어 운반되며 요술에 고백합니다. 심문에서 그녀는 할머니가 마술사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마술을 사용하여 지역 소녀의 죽음을 초래할 책임조차 있었다. 또한 Alison은 Chattox라고도 불리는 Anne Whittle도 마녀이며 점토 인형으로 여관 주인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1612 년 4 월 : Nowell은 Demdike, Chattox 및 Redferne이 증언을 받기 위해 명령을 내리고 Demdike는 마법을 연습한다고 고백합니다. Nowell은 Alison Device와 함께 3 명을 Lancaster Castle에 보냅니다. Demdike의 가족 중 몇 명은 Malkin Tower에서 Device Family home을 만나 Demdike와 Device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아 내고 Nowell은 나중에이 모임에 마녀들의 모임을 생각합니다. 한편, Demdike의 딸 Elizabeth Device와 그녀의 자녀 인 James와 Jennet이 심문의 대상이됩니다. 9 년 된 Jennet은 Nowell에게 Alice Nutter는 물론 가족 모임에 참석 한 사람들의 이름을 알립니다. 지명 된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보내지 만 Demdike는 재판이 열리기 전에 사망합니다.

1612 년 8 월 : 재판이 열릴 때, 노웰은 젠넷을 증인으로 데려오고, 그녀는 친척과 다른 마을 주민들에 대해 증언한다. 누구도 변호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Elizabeth Device는 딸을 비명 지르고 Nowell을 저주하기 시작할 때 법정에서 삭제됩니다. Chattox는 Redferne 자신과 Redferne에 대한 자비와 용서를 요구합니다. Alison Device는 행상인이 그녀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만 나중에 그를 저주한다고 고백하면 기절합니다. Nowell은 모두 유죄라고 판결합니다. 8 월 20 일, Chattox와 Redferne, Elizabeth, James, Alison Device, Alice Nutter, Katherine Hewitt, Jane Bulcock, 그녀의 아들 John, Margaret Pearson의 공적 행진을 관람하기 위해 Lancaster성에 군중이 모입니다.

펜들 (Pendle) 재판의 유산

1634 년 Jennet Device라는 여성이 랭커스터에서 마법에 대한 비난을 받았고 William Nutter의 아내 인 Isabel Nutter의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자녀로 증언 한 것과 동일한 Jennet인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와 19 명의 다른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처형 당하지 않고 그들의 사건은 찰스 왕에게 직접 전달되었습니다. 십자가 검사를 받은 한 증인 (열 살짜리 소년)은 자신의 간증을 철회했습니다. 20 명의 피고인은 결국 랭커스터에서 감옥에 갇혔다.

메사추세츠 주 살렘 (Salem) 과 마찬가지로 펜들 (Pendle)은 주술 재판으로 유명해졌으며 그 유명세를 이용했습니다. 주술 상점과 가이드 투어뿐 아니라 Pendle Witches Brew라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도 있습니다. 재판 400 주년 인 2012 년에는 인근 Gawthorpe Hall에서 전시가 진행되었으며 Roughlee 마을의 집 근처에있는 Alice Nutter를 기념하여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2011 년에는 펜들힐 근처에서 별장이 발견되었으며, 고고학자들은 Elizabeth Southerns와 그녀의 가족이 살고있는 Malkin Tower 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및 추가 정보 :

시련을 매혹적인 모습으로 보시려면 Lancaster Assizes의 점원 인 Thomas Potts의 사건에 대한 기사 인 Lancaster county의 The Wonderfull Discoverie of Witchches를 읽어보십시오.

17 세기 잉글랜드를 요술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채우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대한 관점을 원한다면 온라인 역사 공동체 인 모든 제국에서 영국 근대의 마법에 관한 신념을 읽어보십시오.

https://ko.eferrit.com/%ED%8E%9C%EB%93%A4-%EB%A7%88%EB%85%80/

 

펜들 마녀 예심, Lancashire, 1612

12 명의 사람들이 마술을 비난하고 맹세했다. 1612 년에 12 명의 사람들이 이웃 십대를 살해하기 위해 요술을 사용했다고 비난 받았습니다. 랭커 셔 (Lancashire)의 펜들 힐 (Pendle Hill) 지역에서 2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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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마녀 사냥 : 타임 라인

고발 된 마녀의 추적의 역사

유럽의 요술의 역사는 민중 신앙과 종교 및 고전 문학으로 시작됩니다. 본문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및 로마의 역사에 뿌리를두고 있습니다. 요술의 의미에 관한 신념의 발전 - 특히 이단의 일종으로서의 점진적 신분 확인의 역사 -는 수 백년 동안 효력을 발휘합니다. 요술쟁이 재판과 사형 집행의 역사에 대한 관점으로 미국과 세계의 몇몇 사건도 포함 시켰습니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은 15 세기 중반 (1400 년대)에서 18 세기 중반 (1700 년대)까지 최고조에 달했던 마녀에 대한 높은 박해를 보았습니다.

요술에 대한 혐의로 기소 된 수는 분명하지 않고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견적은 약 1 억에서 9 백만에 이릅니다.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은 공공 기록에 근거하여 40,000에서 100,000 범위의 숫자를 수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혐의로 고소하거나 마법에 대한 시도를했을 가능성이 두 배에서 세 배가 될 것입니다. 기존 기록에서 약 12,000 건의 사형 집행이 확인되었습니다.

요술에 대한 사형 집행 건수의 약 4 분의 3은 오늘날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의 일부를 포함하여 신성 로마 제국에있었습니다. 고발과 사형의 최고봉은 다른 지역에서 다소 다른시기에 나타났습니다.

주술에 대한 유로 파에서의 가장 많은 처형은 1580 년에서 1650 년 사이의 기간이었습니다.

타임 라인

기원전 히브리어 성경은 출애굽기 22 장 18 절과 레위기와 신명기의 여러 구절을 포함하여 요술을 다루었습니다.

약 200 - 500 CE 탈무드 (Talmud) 는 요술에 대한 처벌과 처형의 형식을 묘사했습니다.

약 910 Canon Episcopi 는 신성 로마 제국 이 시작되기 직전 프란시아의 민중 신앙을 설명하는 Prümm의 Regino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 본문은 나중에 캐논 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은 불량 ( malficium )과 불행 ( sorilegium) (운세)을 비난 했으나 , 이들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판타지이며, 마술처럼 날아간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망상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약 1140 년경 Mater Gratian의 Canon Episcopi (위의 "약 910"참조)에는 Hrabanus Maurus의 저서와 Augustine의 발췌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154 년 솔즈베리 (Salisbury)의 존은 밤에 마녀가 타고있는 현실에 대해 회의론을 썼다.

1230 년대 이단에 대한 종교 재판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1258 교황 알렉산더 4 세는 마술과 귀신들과의 대화가 일종의 이단이라고 인정했다. 이로써 이단에 관한 종교 재판의 가능성이 열렸으며 마술 수사와 관련되었다.

13 세기 후반 그의 Summa Theologiae 와 다른 글에서 Thomas Aquinas 는 마법과 마법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그는 컨설팅 악마가 정의와 배교에 관한 협약을 맺는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귀신들이 실제 사람들의 형상을 취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악마의 행위는 실제 사람들의 것으로 그렇게 오인됩니다.

1306 - 15 교회는 기사단 을 없애기 위해 이사했습니다. 혐의 중에는 이단, 주술, 악마 숭배가 있었다.

1316 - 1334 교황 요한 12 세는 이단으로 마술을 식별하는 여러 황소와 악마와 협약을했습니다.

1317 년 프랑스에서는 교황 요한 22 세를 살해하려고 주교가 암살을 위해 사형을 당했다. 이것은 교황이나 왕에 대한 그 당시의 암살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1340 년대 블랙 데스 (Black Death)는 유럽을 휩쓸고, 기독교계에 대한 음모를 사람들이 기꺼이 보게했다.

약 1450 년 교황의 황소 인 에르레레스 가자 지오 룸 (Errores Gazaziorum )은 카타르 족과 마술과 이단을 발견했다.

1484 년 교황 인 노노 첸 8 세는 Summis desiderantes affectibus를 발급하여 2 명의 독일 승려에게 요술의 비난을 이단으로 조사하여 자신들의 일을 방해 한 사람들을 협박하도록 승인했습니다.

1486 년 Malleus Maleficarum 이 출판되었습니다.

1500-1560 많은 역사 학자들은이시기를 요술 시련 (protestantism)과 요술 시식

1532 년 Constitutio Criminalis 캐롤라이나 , 황제 찰스 브이, 그리고 전체 신성 로마 제국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한 요술 화재에 의해 죽음에 의해 처벌되어야한다고 선언; 아무런 해를 끼치 지 않은 마술은 "달리 처벌된다"는 것이었다.

1542 년 영국 법은 마법 요법을 요술로 세속 범죄로 만들었습니다.

1552 년 러시아의 Ivan IV는 마녀 재판이 교회 문제 라기보다는 민사 문제라고 선언하면서, 1552 년 법령을 발표했습니다.

1560 년대와 1570 년대 마녀 사냥의 물결이 남부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563 년 Cleves 공작의 의사 인 Johann Weyer의 De Praestiglis Daemonum 출판. 요술로 여겨지 던 것의 대부분은 초자연적 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영국 요술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1580 - 1650 많은 역사가들은이시기를 마술사 사건의 수가 가장 많은 기간으로 간주하며이 기간 동안 1610 ~ 1630 년이 정점에 이른 것으로 간주합니다.

1580 년대 영국에서 빈번한 마술 재판의시기.

1584 년 요술의 발견 자 (Discoverie of Magic) 는 켄트의 레지날드 스콧 (Reginald Scot of Kent)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요술 에 대한 회의론을 표현했다.

1604 제임스 1 법은 요술과 관련된 처벌 가능한 범죄를 확대했다.

1612 년 영국의 랭커 셔 (Lancashire)에있는 펜들 (Pendle) 마녀 재판은 열두 마녀를 비난했다. 혐의에는 요술에 의한 열 살인 사건이 포함됩니다. 10 명은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으며, 1 명은 감옥에서 사망했고 다른 하나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618 년 마녀를 찾는 영국 판사를위한 핸드북이 출판되었습니다.

1634 년 Loudun 마녀 예심 프랑스. Ursuline 수녀는 소유되고 있다고보고, Urbain Grandier 신부의 희생자인데, 그는 마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문을하더라도 고백을 거부하면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랜저 신부가 처형 된 후, 그 소유물은 1637 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640 년대 영국에서 빈번한 마술 재판의시기.

1660 년 북부 독일에서 마녀 재판의 또 다른 물결.

1682 년 프랑스의 루이 14 세 왕은 그 나라에서 더 많은 요술 재판을 금지했다.

1682 년 메리 트렘블 즈 (Mary Trembles)와 수전나 에드워드 (Susannah Edward)는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마지막으로 문서화 된 마녀가 영국에 매달려있다.

1692 년 매사추세츠의 영국 식민지에서 살렘 마녀 재판 .

1717 년 요술에 대한 마지막 영어 시험이 열렸습니다. 피고인은 석방되었다.

1736 년 영국 요술 법은 폐지되었고 마녀 사냥과 시련은 공식적으로 끝났습니다.

1755 년 오스트리아는 마술 재판을 마쳤습니다.

1768 년 헝가리는 마술 재판을 마쳤습니다.

1829 년 Etienne Leon de Lamothe-Langon에 의한 프랑스의 Histoire de l' Inquisition 이 출판되었는데, 14 세기에 엄청난 요술 사형 집행을 주장한 위조 문서. 증거는 본질적으로 허구였습니다.

1833 년 테네시 남자는 요술로 기소되었습니다.

1862 년 프랑스의 작가 쥘 미셸 (Jules Michelet)은 여신 숭배로의 복귀를지지했고, 여성들은 마술에 대한 긍정적 인 성향을 보았다. 그는 마녀 사냥을 카톨릭 박해로 묘사했다.

1893 년 Matilda Joslyn Gage는 여성, 교회 및 국가 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9 백만 명이 마녀로 처형되었습니다.

1921 마거릿 머레이 (Margaret Murray)의 서유럽에있는 마녀 숭배 (Witch Cult) 가 출판되었고 그녀의 마녀 재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됩니다. 그녀는 마녀가 기독교 이전의 옛 종교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논쟁 중 하나 : Plantagenet의 왕은 마녀의 보호자 였고, Joan of Arc는 이교도 제사장이었다.

1954 제럴드 가드너 (Gerald Gardner) 는 살아남은 기독교 이전의 이교도 종교에 대한 요술 에 관한 요술 적 투데이 (Witchcraft Today)를 발표했습니다.

20 세기 인류학자는 요술, 마녀 및 마법에 대한 다른 문화의 신념을 바라본다. 1970 년대 현대 여성 운동은 페미니스트 렌즈를 사용하여 요술 박해를 조사합니다. 2011 년 12 월 Amina Bint Abdul Halim Nassar는 요술 연습을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참수를당했습니다.

왜 대부분 여자들인가?

처형 된 여성의 약 75 % ~ 80 %가 여성이었다. 일부 지역과시기에는 주로 남성들이 고발 당했다. 다른시기와 장소에서, 기소되거나 처형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소 된 여성과 관련이있었습니다. 그 비난받은 ​​대부분의 여자들은 왜 여자였습니까?

교회 자체는 교리를 교리와 교리를 훼손시키는 미신과 교단을 훼손시킨 악마와의 진정한 교섭을 교대로 보았습니다. 문화적 가정은 여성이 본질적으로 약하고 따라서 미신이나 악마의 접근에 더 취약하다는 것이 었습니다. 유럽에서 여성의 약점에 대한이 생각은 악마의 유혹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비록 다른 문화에서조차도 마술 혐의가 더 많이 제기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난받은 ​​여성의 비율에 대한 이야기 ​​자체는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여자들.

일부 작가들은 또한 피고인 중 다수가 남성 상속인의 재산 상속을 사실상 지연시킨 독신 여성 또는 과부 인 것으로 상당한 증거를 가지고 주장했다. 또한 미망인 보호를 목적으로 한 과부의 권리 는 생명이 약한 여성이 여성이 일반적으로 행사할 수없는 자산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요술 비난은 장애물을 제거하는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비난 받고 처형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가깝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성과 비교 한 여성의 경계 성은 고발에 대한 감수성에 추가되었습니다.

더 많은 연구

유럽 ​​문화의 마녀 사냥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려면 Malleus Maleficarum 의 역사를 확인하고 1692 년 Salem 마녀 재판 에서 매사추세츠의 영국 식민지 사건을 확인하십시오.

더 깊이 들어 보려면이 에피소드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역사에서 살펴보고 싶을 것입니다. 이들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럽 ​​요술 박해의 연구와 역사

중세와 근대 초기 유럽에서 마녀로 주로 여성의 박해는 독자와 학자를 매료 시켰습니다. 연구는 여러 접근법 중 하나를 택하는 경향이있다.

유럽의 마녀 사냥에서 가장 초기의 역사 중 일부는 예전의 시대 나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관행을 사용했습니다. 그러한 치료의 목적은 현재를 "더 계몽 된"것으로 승진 시키거나 현 상황에 적용될 수있는 과거로부터의 교훈을 배우는 것입니다 - 새로운 "마녀 사냥"은 글자 그대로 또는 은유 적으로합니다.

일부 역사 학자들은 마녀를 박해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고생하는 고령 종교를 대표하는 영웅적 인물로보고있다. 그 목적은 종종 그들의 힘을 축하하거나, 오늘 영감을 주거나, 그 시대의 현재 신앙 체계의 뿌리를 축하하기위한 것입니다.

또 다른 접근법은 요술이 문화와 사회에 의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살펴 본다. 목적은 성별과 계급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가 기대치를 창출하고 형성하는 방식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접근법은 비난, 신념 및 사형에 대한 인류 학적 시각을 파악하고 누가 참여했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신념이나 관습이 적용되었는지를 조사합니다. 그 목적은 시간과 사람들의 관습과 신념에 대해 사람들에게 비춰주는 것입니다.

대표 자원

다음 책들은 유럽에서 마녀 사냥의 역사를 대표하며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거나 현상에 대해 생각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합니다.

Bengt Ankarloo와 Gustaf Hennigsen, 편집자. 초기 현대 유럽 요술 : 센터 및 주변 . 1990.

마이클 베일리. 악마와의 전쟁 : 중세 후기의 요술, 이단과 개혁. 2003.

이안 보스 트리지. 요술과 그 변형들, c. 1650 - c. 1750. 1997.

로빈 브릭스. 마녀와 이웃 : 초기 현대 요술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 1996.

한스 피터 브로델. Malleus Maleficarum 및 요술의 건축 : 신학 및 대중적인 신념 . 2003.

조지 링컨 버. 요술의 사례들, 1648-1706의 내러티브들. 1914.

스튜어트 클락. 악마와 함께 생각하기 : 근대 유럽의 요술에 대한 생각. 1997.

Owen Davies와 William De Blécourt. 마녀 재판을 넘어서 : Enlightenment Europe의 마술과 마법. 2004.

Richard Kieckhefer. 마녀 예심 : 대중적이고 및 배우는 문화에있는 그들의 기초, 1300 - 1500. 1976 년.

존 데모스. 2000 년 동안의 적 : 서양 세계에서 마녀를 굶주린 자. 2008.

앨런 찰스 코르스와 에드워드 피터스. 유럽의 요술, 400-1700 : 다큐멘터리 역사. 2000 년

Brian Levack. 마녀는 초기 현대 유럽에서 사냥을합니다. 1995.

Brian P. Levak. 마법 책 원본. 2003.

제프리 파인더. 요술 : 유럽과 아프리카. 1963.

린달 로퍼. 오이디푸스와 악마 : 현대 유럽 초기의 요술, 섹슈얼리티, 종교. 1994.

James A. Sharpe. 어둠의 도구 : 초기 근대 영국에서의 요술. 1997.

애나 가르린 스펜서. "대학원 어머니의 사회적 이용." 1913 에세이. 그것을 읽으십시오 : 모성 후.

Montague Summers, 번역가. Malleus Maleficarum . 1486, 1928 년 번역.

https://ko.eferrit.com/%EC%9C%A0%EB%9F%BD%EC%9D%98-%EB%A7%88%EB%85%80-%EC%82%AC%EB%83%A5-%ED%83%80%EC%9E%84-%EB%9D%BC%EC%9D%B8/

 

유럽의 마녀 사냥 : 타임 라인

고발 된 마녀의 추적의 역사 유럽의 요술의 역사는 민중 신앙과 종교 및 고전 문학으로 시작됩니다. 본문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및 로마의 역사에 뿌리를두고 있습니다. 요술의 의미에 관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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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들 마녀재판과 『후기 랭커셔 마녀들』을 통해 본 마술적 상상력

허필숙

*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8S1A5B5A07070800)

1. 마술적 상상력에 대하여

마녀 이야기에서 우리는 흔히 마법의 주문, 온갖 독초와 짐승들 혹은 인간의 신체의 일부를 넣고 달밤에 비약(秘藥)을 끓이는 솥단지,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춤을 추는 마녀들의 무리, 악마들과 마녀들의 잔치인 사바스(Sabbath), 비상(飛上)과 변신, 악마의 심부름꾼으로서 각양각색의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퍼밀리어(Familiar), 꿈속에 찾아오는 악마들인 인큐버스(incubus)와 서큐버스(sccubus) 등등을 떠올린다. 마술과 마녀를 둘러싼 이러한 상상은 비록 구체적 내용은 조금씩 달리 하더라도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이를 ‘마술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15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란 이름 하에 20만에서 50만에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술 죄로 고소당하고,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마녀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문화사적 시각에서 볼 때 이 시기의 마녀관이 특별한 이유는 악마와 무관한 독립적인 존재였던 마녀를 악마의 하수인으로 규정해서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악마는 신의 적대자이며 그의 종인 마녀 역시 반란의 화신으로서 처단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이 이 시대에 생겨난 독특한 마술 신앙이다.

마녀사냥의 추동력이 되었던 근세 초 마술적 상상력은 두 가지 면에서 기존의 마술적 상상과 다르다. 하나는 그것에 담긴 강력한 여성 비하, 성(性)에 관한 노골적인 언급 및 해학 등이며 다른 하나는 상상력에 대한 과학적 탐구이다. 이 시기의 악마론 연구가들은 성경이나 신학적 연구에 근거를 두면서 환상과 실제의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해서 일종의 상상력 이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들에 따르면 악마는 환상술의 대가로서 물질세계는 물론 인간의 상상력까지 지배할 수 있으며 마녀는 악마의 기술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조종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경향을 마술 신앙의 고전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Malleus Maleficarum)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야콥

슈프랭거(Jacob Sprenger)와 하인리히 크래머(Heinrich Kramer)라는 두 명의 수사가 집필하였고 교황 인노첸시오 8세(Innocentius VIII)의 인가를 받은 이 책은 대륙의 마녀사냥 당시 마녀 색출과 취조, 고문과 처형에 신학적이며 사법적인 근거로 사용되었는데, 악마와 마녀가 사용하는 마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그 내용을 기독교 신학에 부합되는 용어로 객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체적인 언급을 몇 가지 들자면 저자들은 “추악한 여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죄악 세 가지는 불신(不信), 야심 그리고 육체적 쾌락에 대한 탐욕이다. 그리고 이런 죄악을 범하는 여자들이 바로 마술에 탐닉하는 여자들이다”(Sprenger and Kramer 111)라고 말하며, 곳곳에서 그런 사례를 든다.

남자의 성기를 새 둥지에 숨겨두는 마녀들의 에피소드는 여성과 성(性)을 희화화하고 조롱한다. 저자들은 “남자의 성기를 스무 개, 서른 개씩 새 둥지(또는 상자)에 숨겨두는 마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문에 의하면, 새 둥지나 상자 안에 든 성기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들처럼 움직였고 심지어 음식까지 먹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다음 “이 모든 일은 악마의 미혹, 즉 감각의 기만에 기인하는 것이다”라고 답변하는데(260–61), 우리는 여기서 악마의 사주, 마술과 감각의 작용, 그리고 상상력을 동일한 문제적 범주에 위치시키려는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저자들은 이 문제를 천착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상상은 지각, 관념, 판단과 구별되는 어떤 특별한 힘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든 내적 인식 능력을 포괄하는 힘이다. 물론 상상의 힘이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령 길 위에 널판이 놓여있다고 하자. 이때 사람이 그 위를 걸 어가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널판이 깊은 강물 위에 매달려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위를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강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그의 영혼이 온몸을 마비시켜 버릴 것이다. 상상의 경우 그 영향이 자기 자신에게 미치지만 어쨌든 신체에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상상의 힘과 악마의 눈길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37–38, 필자강조)

린달 로퍼(Lyndal Roper)에 따르면 환상과 실제의 상관성은 상상력의 본질에 속한 것들로서 예술적 행위의 핵심 요소이다(119–20). 근세 초 마술적 상상력이 여타의 상상력과 차별되는 부분은 그것이 지금껏 금기시되었던 영역, 소위 악마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는 데 있다. 로퍼는 특히 성(性)에 대한 거침없는 유머와 전복성을 매개로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수용하면서 악마적 상상력은 도덕적 다의성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젖혔다고 말한다(119).

특히 이 시기의 연극 무대는 장르적 특성상 마술과 가장 호소력 있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극장과 관련해서 ‘마술’은 긍정과 부정의 양가적 메타포로 사용되었다. 근세 초 등장한 극장들, 특히 공설 극장은 우범 지대인 런던 외곽의 자유지역(Liberties)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 이유도 있었지만 극적 환상을 매개로 관객을 격정에 빠지게 하고 그들의 이성적 판단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극장 반대론자들에 의해서 악마의 소굴로 비난받았다.

극장 예찬론자는 관객의 심장을 주무르는 연극의 마법에 찬탄을 보냈으나 17세기 후반 청교도들이 득세했던 시절에 필립 스텁스(Philip Stubbs) 목사는 “연극은 애초에 악마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하면서 극장에 가는 자들은 악마의 회중(Satan’s Synagogues)에 참석해서 악마를 숭배하고 예수를 배반하는 자들이라고 공격했다(Purkiss 181, 재인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세 초 마술적 상상력의 유산이라고 할 환상과 실제에 관한 과학적 호기심은 점차로 연극 무대가 제공하는 예술적 실천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르네상스 연극 무대는 극적 환상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마술’의 메타포를 시사적인 문제들에서 형이상학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삶과 사회를 다각도에서 진단하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본 논문에서는 근세 초 펜들 힐(Pendle Hill) 지역의 2차 마녀재판을 소재로 하여 1634년에 글로브 극장(The Globe Theatre)에서 공연된 리차드 브롬(Richard Brome)과 토머스 헤이우드(Thomas Heywood)의 『후기 랭커셔 마녀들』(The Late Lancashire Witches)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과 연극의 상관성 하에서 마술적 상상력이 다양하게 발현되는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시기는 근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마술 신앙이 쇠퇴하면서 마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상충하며 공존하던 때였다. 펜들 힐과 같이 고립되고 낙후된 지역은 마녀사냥의 주동자들이 유포한 마술 신앙이 민간의 전승담과 결합해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반면 런던의 시민들이나 지식인들, 그리고 고위 관료들이나 위정자들은 대체로 마술은 허구라는 견해에서 회의적 입장을 견지했다. 16세기 중반에 출현한 런던의 공설 극장들은 다양한 견해가 무대에서 충돌하는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었다. 이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랭커셔 지역의 마녀재판, 중앙 정부에서의 반대 심문, 그리고 런던의 극장에서 공연된 마녀극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마술적 상상력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효과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는 몇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다이앤 퍼키스(Diane Purkiss)나 아이린 스포토(Irene S. Spoto), 앤 루이즈 피셔(Anne Louise Fisher)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이룩한 성과이다. 이들은 당시 마녀재판이 가부장적 사회 속의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통로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여성을 마녀 재판의 일방적 희생자로 보는 관점에 반대한다. 특히 퍼키스는 17세기 초반 연극 무대를 장악했던 마녀극들을 분석하면서 그 포커스를 가부장적 제도 하의 가족 시스템으로 이동시킨다. 그녀는 마녀재판의 기록들과 관련된 기타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자료들을 연극 무대와 병치시키면서 어떻게 마녀들이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식으로 재현되었는지를 설명한다(Fisher 4, 재인용). 그녀의 연구는 마녀를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보는 이 극의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할 근거가 된다. 스튜어트 클라크(Stuart Clark)는 자코비안(Jacobean) 무대의 마녀를 전통적 축제에 등장하는 무질서의 왕(Lord of Misrule)과 동일시한다. 마술은 기존 질서의 전복과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고전적 프레임을 답습하는데 이런 관점은 극중에서 벌어지는 마녀들의 축제와 마녀들의 처단을 당대의 마녀 프레임과 연결해서 조망하게 한다. 연극과 마술의 상호 침투성을 분석한 샬롯 코핀(Charlotte Coffin)이나 앨리슨 핀들리(Alison Findlay)는 무대에 재현되는 마술은 마녀들이 무대에서 연출하는 일종의 놀이이며 이런 맥락에서 연극과 마술, 마녀와 극작가를 동일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코핀에 따르면 이 극에는 메타연극성(metatheatricality)이 내재하며 작가들은 이를 통해서 연극이 허구이듯이 마술 또한 허구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본 논문은 마녀재판과 연극 무대에서 상연된 극작품의 분석에서 이들의 연구 성과에 일정 부분 의존을 하되, 특히 코핀의 메타연극성에 대한 논의를 극장 밖의 현실까지 확장해서 연극 무대의 마술적 상상력을 관객들의 인습화된 가치관이나 인식의 프레임을 성찰하는 수단으로 승화시킬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근세 초 악마론자들이 시도한 “상상력의 과학”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마녀사냥을 선동했지만 연극과 같은 예술적 실천 범주를 통해 마술적 상상력은 각자가 속한 시대의 가치 체계를 자의식적으로 성찰하는 수단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2. 마녀재판: 정치권력과 문화의 상관성

『후기 랭커셔 마녀들』을 통해서 우리는 마술적 상상력이 극장이라는 문화적 공간뿐 아니라 실제 마녀재판이 행해진 역사적 공간, 즉 재판정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또한 정치권력의 지속적이고도 암묵적인 압박속에서 극작가들은 마술적 상상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기존의 마녀재판이나 가부장적 권력의 허구성을 폭로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1, 2차 펜들 마녀재판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당대 마술을 둘러싼 전승담이나 기타 담론들을 병치시켜서 재판정은 하나의 연극 무대였으며, 고발자와 피의자의 증언과 진술은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연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두 차례의 마녀재판이 있었던 펜들힐은 랭커셔의 낙후되고 고립된 지역이었다. 펜들 마녀재판의 발단과 전개는 당시 영국 농촌의 마녀 신앙의 내용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키스 토마스(Keith Thomas)에 따르면 영국의 마녀재판은 도시와 농촌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상부상조의 전통이 파괴되고 경제적인 궁핍과 역병, 기근 등으로 살기가 각박해진 농촌의 경우 구성원들을 사로잡은 마술적 상상력은 마녀들이 보내는 저주 염력(Maleficium)이었다(토마스 455). 대체로 마을에서 미움을 받던 소외되고, 늙고, 험상궂고, 욕 잘하는 드센 노파들이 마녀로 고발되었는데 가족 중 한 사람이, 혹은 키우던 가축들이 이유 없이 죽거나 병들었을 때, 심지어는 짜놓은 우유가 간밤에 상했을 때도 주민들은 이 모든 것들을 마녀의 저주 탓으로 돌렸다. 영국 전체로 볼 때는 이렇듯 저주 염력에 기초한 마녀 신앙은 17세기 중반에는 이미 쇠퇴하고 있었지만 펜들 힐의 주민들은 여전히 마술과 마녀의 존재에 강력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 이유는 펜들 힐이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외부와 격리되어 오로지 가톨릭 신앙에 의지하는 맹신적인 성향이 강한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국의 마녀재판의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1차 재판이 일어났던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2

이 작은 마을의 주민들에게 1차 재판의 기억은 생생히 남아 있었다. 1612년 마술 죄로 수십 명이 고발당했고 심문 결과 최종적으로 12명이 마녀로 체포되었다. 그중 한 명은 고문으로 숨졌고 남자 2명을 포함해서 11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그중 10명이 마녀(악마)로 처형되었다. 1633년에 시작된 2차 마녀재판 역시 1차 재판과 유사하게 어린이 고발자로부터 시작되었고 마녀들의 집회나 변신, 비상 등의 증언 내용들도 별 차이가 없는데 핀들리는 이를 통해서 “마술”과 “마녀”는 개인의 환상인 동시에 “생생한 문화적 기억”(a vivid cultural memory)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146). 2차 랭커셔 마녀재판의 발단은 열 살 된 소년인 에드먼드 로빈슨(Edmund Robinson)의 증언에서 시작되었다. 사건의 상세한 내용은 이러했다. 1633년 2월의 어느 날 로빈슨이 숲에서 야생 자두를 줍고 있을 때 검은색, 갈색의 두 마리 사냥개가 눈앞에 나타났고 그것들은 곧 마을의 노파와 낯모르는 소년으로 변신했다. 노파는 은화 한 닢을 건네면서 자기와 만난 것을 발설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로빈슨은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면서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러자 노파는 옆에 있던 소년을 흰 말로 둔갑시켜서 로빈슨과 함께 말에 올라탄 뒤에 마녀들이 축제를 벌이는 곳으로 날아갔다. 로빈슨은 그곳에서 고기와 빵을 먹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음료를 마셨으며 마당 한 귀퉁이의 헛간에서 여섯 명의 마녀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빵, 버터 덩어리 등을 밧줄에 매달아 끌어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축제에서 그는 마을 아낙네들과 특이하게 갈라진 발굽을 한 소년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Findlay 147).

이런 에피소드들은 『후기 랭커셔 마녀들』에서 고스란히 재연되었다. 로빈슨의 증언에 등장하는 늙은 마녀, 변신, 비상, 마녀들의 축제, 갈라진 발굽을 한 악마 등등은 1차 재판을 통해서 학습된 이야기들을 그대로 옮긴 것들이거나 아니면 시골에서 흔히 전래되는 민담 정도였다. 사실 로빈슨은 어머니의 심부름을 안 하고 놀다가 집으로 늦게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오늘날이라면 야단맞을 것이 두려웠던 소년의 거짓말 정도로 치부되었을 이야기는 외부와의 교류가 별로 없던, 무지하고 맹신적인 농촌 사람들의 마술적 상상력에 불을 지핀 셈이 되었다. 마녀들의 존재를 굳게 믿었던 로빈슨의 아버지는 마녀들을 색출하고자 아들을 데리고 그 지역의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참석한 신도들 중에서 소년이 축제에서 목격한 마녀들을 지목하게 했고 그 결과 수십 명의 마녀 피의자들이 체포되었다.

1차 재판과 2차 재판의 내용과 증언을 비교해보면 비록 이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펜들 힐 주민들을 사로잡은 마술적 상상의 내용은 동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법적인 처리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제임스 샤프(James Sharpe)는 두 재판을 비교하면서 1612년의 처형이 영국의 마녀 박해의 극단적인 양상이었다면 1633–34년 재판은 중앙 정부, 교회의 고위 관계자,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저주 염력의 마술에 얼마나 회의적이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5). 2차 재판의 경우 1차 재판과 마찬가지로 수십 명의 피의자가 체포되었으나 아무도 처형되지 않았다. 또한 순회재판소의 판사는 이들과 소년을 심문할수록 모든 사건들이 가짜이며 소년의 증언 또한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보다 자세한 조사를 위해서 중앙 정부에 보고되었고, 5월 16일 추밀원은 찰스 왕의 명령에 따라 최종적으로 4명의 피의자들을 소환했다. 로빈슨 역시 반대 심문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향했다(Ostovich 14).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마녀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는 물론 판사나 청중들까지도 포함해서 관련자들의 환상과 상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이 마녀재판과 기타 사법 재판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펜들 마녀재판은 사실상 ‘펜들 마녀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 재판관이 주도하는 고문과 심문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마녀재판과 달리 재판관과 배심원, 청중들이 배석한 가운데 원고의 고발과 피고의 변론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마녀재판은 본질적으로 연극의 성격이 짙었다.

1차 펜들 힐 사건 때 사형 판결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증거는 9살 난 소녀인 재닛 드바이스(Jennet Device)의 진술이었다. 재닛은 법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언니, 오빠, 친지들 전부와 이웃들을 마녀(악마)라고 고발했다. 이 어린 소녀의 진술은 마을에서 주워들은 얘기나 자신이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을 이뤘다. 똑같은 상황이 2차 펜들 재판에서도 10살 난 소년 증인을 통해 재연되었다. 런던에서 반대 심문을 받으면서 로빈슨은 모든 이야기들은 거짓으로 지어낸 것들, 전혀 사실이 아니고 주워들은 이야기와 여자들이 옮긴 소문들을 다시 옮긴 것이라고 자백했다. 퍼키스는 중앙 정부가 랭커셔 순회재판 절차에 개입하기 전에 어린 고발자의 증언은 일종의 순회공연(travelling show)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하는데(233), 이 또한 마녀재판의 연극성을 확인시켜주는 지적이다.

마녀재판에서는 종종 고발자뿐 아니라 피의자까지도 강력한 극적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마거릿 존슨(Margaret Johnson)이라는 60살의 노파는 애초에 로빈슨이 지목한 마녀들에 들어있지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재판에 출두해서 자신이 마녀라고 열렬히 주장했다. 그녀의 증언 중에서 특히 청중들에게 공포와 경악, 그리고 아마도 은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 부분은 “내 앞에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서 내 영혼을 바친다면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겠다”고 말했다는, 악마의 심부름꾼인 마밀리온(Mamilion)과의 성적(性的)인 관계에 대한 진술이었다(Findlay 147). 마녀재판에서 이런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었는데 퍼키스는 이렇듯 마녀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근세 초 여성에게 큰 쾌감을 주면서 자신의 상품 가치를 확인하게끔 해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237). 소외되고 멸시받던 입장에서 비록 환상일망정 잠시나마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서, 지켜보던 청중에게 그녀가 가했을 위협과 공포는 그녀에게 짜릿한 희열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러한 존슨의 증언 역시 『후기 랭커셔 마녀들』에 각색되어 등장한다. 극중에서 존슨은 악마의 하수인으로 재현되었지만 마녀재판에서 마녀 연기를 했던 피의자들 모두가 이렇듯 무력한 희생자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이들은 자코비안 마녀극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녀들의 모델이 되면서 앞으로 출현하게 될 새로운 여인상을 예고했다.

특히 가족의 일상을 다룬 극에서 이런 마녀의 원형적 이미지는 자유분방한 성도덕이나 반항심 등으로 무장해서 가부장적 권력에 맞서는 여성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동시에 마녀가 주인공이 되는 마녀극의 출현은 이 시기에 마술과 마녀의 이미지는 급격히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회의적이거나 현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마술은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는 정교한 환상이자 가상적인 범죄였다.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마녀로 의심받아 재판받은 사람들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기심과 가혹한 사법제도가 낳은 죄 없는 희생자일 확률이 높았다. 마녀재판은 마술적 상상력이 발화되는 장소로 흔히 사용되었고 그 안에서 고발자와 피의자들이 연기를 하는 상황은 계속되었다. 재판관과 청중들 또한 마술적 상상력이 빚어낸 환상에 동참하면서 나름대로 사실과 허구의 스펙트럼 그 어디쯤에 자신의 믿음을 위치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관중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호기심의 복합적인 감정은 연극 무대의 마녀극을 통해서 예술적 체험으로 승화되었다.

마술과 마녀를 둘러싼 논쟁은 재판정에서 연극 무대로 이동하였는데 펜들 마녀재판과 이를 소재로 한 『후기 랭커셔 마녀들』은 이런 과도기적 전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극장은 다양한 정치 및 문화 세력들이 충돌하는 공간이자 여론 형성의 중심지였고 무대에서 전개되는 마술적 상상은 마술과 마녀에 관한 논의를 재점화시켰다. ‘펜들 재판정에서의 마녀극’은 런던의 글로브 극장이라는 문화 공간으로 이동했다. 퍼키스는 당시 공설 극장의 성격에 대해서 “단일한 지배 담론에 대한 단순한 저항이라기에는 다소 복잡하고, 왕실의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복제라고 하기에는 좀 더 실용적이고 상업적이었으며, 사회적이거나 연극적인 트렌드가 그린 지도를 따라가기에는 좀 더 개성적이었다”고 말한다(181).

이송된 4명의 피의자는 당국의 심문과 마녀 여부를 판별하는 신체검사 등을 거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특히 로빈슨이 자신이 했던 말은 다 꾸며낸 이야기였다고 자백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Ostovich). 유죄의 근거는 이 극이 공연되기 전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펨브로크 백작 4세인 필립 허버트 경(Philip Herbert, 4th Earl of Pembroke)을 비롯한 추밀원의 일부 청교도 구성원들은 아직 왕의 판결이 나지 않은 이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마술과 마녀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경고하고자 했다. 추밀원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더 강력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마술적 상상력에 기댔다. 무죄로 방면될 여지가 있는 이 사건을 이슈화하고자 허버트 경을 비롯한 청교도들이 자신들이 악마의 마술이라고 거부해왔던 극적 환상을 이용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 극은 재판의 사법적인 기록물에 의거해서 창작된 극적 저널리즘(dramatic journalism)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극의 대본을 보면 당시 이 사건이 화젯거리이긴 했지만 재판에 직접 관여한 관계자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세부적인 사항들, 예를 들면 재판 당시 로빈슨의 증언과 존슨의 고백들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추밀원에서 재판 관련 서류들을 이들 극작가들에게 넘겨주면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극을 의뢰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핀들리는 이 사건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특종감이며 재판 기록물들을 독점한 대가로 극작가들은 검사 측에 유리하게 사건을 이끌어가는 극을 써야 했으리라고 추측한다(150).

런던의 관객들 또한 랭커셔 재판에 관해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실제 마녀재판에 대한 작가나 대중의 반응은 오늘날 센세이셔널한 사건을 두고 대중이 보이는 반응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 관객들은 사법권과 정부 관료들이 대립하는 이 사건의 진위를 두고 그것의 상세한 내용, 즉 마술이라는 게 진짜 있는지, 혹은 당시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사기성 사건인지, 그리고 극작가들은 어떤 시각으로 이 재판을 해석하고 결말을 예측하는지 등등을 알아보고자 극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당시 런던의 공설 극장은 농촌의 저주 염력과 도시의 현학적인 회의주의가 만나는 문화적 공간이었고, 극작가들은 마녀와 마술에 대한 진지한 논의뿐만이 아니라 상업적 이익을 취하는 목적에 맞게 선정성과 오락성도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또 극장을 정치 선전의 장(場)으로 쓰려는 정치권과의 갈등도 작가들에게는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헤더 허슈펠드(Heather Hirschfeld)는 이들 극작가들이 블랙 프라이어즈(Blackfriars)와 같은 소규모 극장을 피하고 대형 상업극장에 이 작품을 올렸을 때는 의도적으로 마녀들의 사건을 판단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고 주장한다(339–74). 다양한 계층과 신분, 정치적 성향들을 갖는 관객들이 운집한 대형 극장의 무대에서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4명의 여자들이 별다른 조치 없이 여전히 런던 감옥에 구금된 상태에서 극은 1634년 8월 국왕극단(King’s Men)에 의해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연극의 프롤로그를 통해서 작가들은 이 연극이 “뚱뚱한 간수가 이곳 런던으로 데려온 마녀들”(Those Witches the fat Jaylor brought to Towne;Prologue 7)을 둘러싼 “소요 사건”(the scene that’s now in agitation; Prologue 5)에 관한 것으로 그 사건은 “여기 오신 많은 분들도 잘 아실 것”(The Projetunto many here well knowne; Prologue 6)이라고 말하면서 실제 재판과의 관련성을 강조한다. 비록 마녀들은 처형되는 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작가들은 마녀재판에서 나온 증언들, 에피소드들, 그것들을 둘러싸고 상상이 만들어낸 추측과 허구 등등을 무대 위의 멋진 마술과 스펙터클로 변형시켰다. 극은 3일 연속으로 성황리에 공연되었는데 너새니얼 톰킨스(Nathaniel Tomkyns)가 로버트 펠립스 경(Sir Robert Phelips)에게 보낸 관람 평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런던의 관객들 역시 대체로 마녀들에게 혐오와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무대 위의 스펙터클, 춤과 노래에 더 매료된 듯이 보인다.

그는 “이 극에는 시적 천재성(poetic genius)이나 예술성, 혹은 언어적 탁월함이나 마녀들의 강령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으나 우스꽝스러운 음담패설, 바보 놀음, 천박하고 기상천외한 것들로 가득 찬 연극, 웃음을 유발하고 다양한 춤과 노래가 어우러져서 즐기기에 딱 좋은 새로운 연극”이라고 논평했다(Ostovich).

『후기 랭커셔 마녀들』의 에필로그는 사법 당국의 권위와 작가적 양심, 그리고 관객들의 다양한 마술에 대한 관점들 사이에서 특정 입장을 공공연하게 지지할 수 없는 작가들의 딜레마를 반영한 듯 보인다. 작가들은 “마녀들이 사법적 정의에 입각해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지만”(the witches must expect their due / By lawful justice; 1–2) 그런 판결 또한 잠정적인 것임을 언급한다.

그들이 지은 죄가

어떤 벌을 가져올지는, 아직 시간이 무르익지 않아서

알 수 없습니다. 아마 크나큰 자비가 있어

정당한 판결 뒤에 그들에게 더 긴 삶을

허락할지도 모르겠습니다.

What their crime

May bring upon ’em, ripeness yet of time

Has not reveal’d. Perhaps great mercy may

펜들 마녀재판과 『후기 랭커셔 마녀들』을 통해 본 마술적 상상력 155

After just condemnation give them day

Of longer life. (Epilogue 3–5)

그러면서 작가들은 오직 법의 판결에 맡길 뿐 이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에필로그는 “마녀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 우리는 시간에 맡겨야겠죠. 이 극을 관객 여러분에게 맡기듯이”(What of their story further shall ensue,/ We must refer to Time, ourselves to you.; 17–18)라고 끝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극이 춤과 노래, 여흥을 동반하는 “즐기기에 딱 좋은 새로운 연극”이라는 톰킨스의 지적은 마술을 카니발의 공간과 결부시킨 클라크의 분석과도 상통한다. 특히 3막에서 벌어지는 마을의 결혼 잔치는 엉망진창이 되며, 마술이 표방하는 카니발의 쾌락은 절정에 달한다. 혼례의 음식들은 살아있거나 죽은 동물들의 일부로 변하고, 악사들이 연주하는 멜로디는 불협화음을 이룬다. 헛간에서 마녀들이 벌이는 잔치는 마을 잔치에 대한 패러디인데, 그녀들은 퍼밀리어와 함께 흥겨운 여흥을 통해서 본능과 동물성에 탐닉할 때의 쾌락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마녀들이 스스로 변신을 하거나 다른 존재들을 동물로 변신시키는 장면들은 단순한 여흥을 넘어서 전복적인 의미를 지닌다. 클라크는 카니발에서 변신은 전복과 직결되는데 본능이 이성을 대신하고, 동물성이 미덕을 대체한 상태를 변모된 형상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87). 로빈슨의 증언은 대체로 영국의 농촌에서 전해지는 저주 염력과 연관된 마술 신앙을 반영한다. 사람과 동물의 변신, 마녀와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아서 마녀들의 축제에 가고, 거기서 목격한 말의 발굽을 한 악마 등은 극 중에서 초자연적인 공포보다는 연극적 여흥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당시 마술적 상상력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적 분위기를 알려준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극에는 농촌의 민담 성격이 짙은 마술적 상상과 근세 초 가부장적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 마술적 상상이 공존한다. 추밀원의 의뢰자들은 당연히 후자를 추구했고 극작가들 역시 표면적으로는 정치권의 요구를 따른 듯이 보인다. 극은 마술에 걸렸다가 풀려나는 두 집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부분은 로빈슨

의 증언에는 없는, 작가들이 창작한 내용들로서 두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들은 마술로 인해 야기된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불복종을 가장 큰 죄악으로 규정하고 궁극적으로 마녀들의 처단을 통해 질서가 재구축되는 과정을 그린다. 퍼키스는 근세 초 가족 제도와 가부장적 질서의 맥락에서 마술 신앙을 분석하는데 이 극은 그녀의 주장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사례이다. 두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근세 초 마술적 상상력의 두드러진 특징인 여성 비하와 성의 희화화를 볼 수 있다.

3. 작품 분석

작가들은 로빈슨의 증언에 자신들의 창작물인 또 다른 허구를 가미해서 중층의 허구들로 구성된 한 편의 연극을 완성했다. 로빈슨의 증언이 들어간 대목은 저주 염력이라든가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설들, 그리고 축제의 변형된 형태로서 마술에 관한 민중의 정서들을 전달한다. 작품의 2막 5장에서 사냥개와 소년이 등장해서 마녀 질리언(Gillian)과 만나는 장면이나 4막 1장의 헛간에서 벌어지는 마녀들의 잔치에 소년이 등장하고, 밧줄에 매달린 음식들을 굴뚝을 통해 내리는 장면들은 로빈슨의 증언에서 나온 내용이다. 또 5막 5장 처형장에서 메그(Meg)가 고래고래 외치며 자기의 퍼밀리어인 마밀리온을 찾는 대목은 존슨의 자백에서 건져 올린 에피소드이다. 마녀 길리언과 소년이 외설스런 모습으로 말을 타고 연회에가는 장면에서 마술은 성적(性的) 유희와 직결된다. 마녀극의 카니발적 유희는 3막 3장과 4막 1장에 걸쳐서 진행된 로렌스(Lawrence)와 파넬(Parnell)의 결혼식에 마녀들이 못된 장난을 치면서 절정에 이른다. 마녀 몰(Mall)은 신랑 로렌스를 성 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주머니를 선사하고 나머지 마녀들도 성대하게 차려진 잔치 음식들을 살아있는 새들과 고양이들로 채워진 파이들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차갑게 식게도 하며, 차마 먹을 수 없는 역겨운 것들로 바꿔 버린다. 성불능이나 망쳐진 잔치 음식 모두 마술의 불순함을 상징하며 결혼식은 환락과 광기가 뒤섞인 장소로 변해 버린다.

메그

그만하면 됐어, 됐어. 이제 가서

신부가 화내는 꼴,

신랑이 화내는 꼴, 그리고

길길이 날뛰는 모든 이들 구경가자구

결혼식의 즐거움이 날아갔으니.

Meg

Enough, enough. Now part

To see the bride’s vex’d heart,

The bridegroom’s too and all,

That vomit up their gall

For lack o’th wedding cheer. (4.1.131–32)

이렇듯 펜들 재판의 기록들과 민간에서 전해지는 마술 이야기를 코믹한 스펙터클로 재현한 것 외에 작가들은 실리(Seely) 집안과 제너러스(Generous) 집안의 플롯을 가미했다. 여기에서도 재판 때 등장했던 에피소드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마술의 실체, 성적인 욕망이 강한 마녀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이는 로빈슨의 증언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부분으로서 이미 자코비안 무대를 장악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새로운 분위기의 마녀 피의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실리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마술은 하극상, 불복종을 불러오며 위계질서를 파괴시키는 힘으로 묘사된다. 마술 때문에 부모와 자식, 주인과 하인의 위치는 뒤바뀌고 집안은 엉망진창이 되었다가 마녀들을 처단하자 다시 질서가 회복되고 아버지와 아들은 마술의 위험을 실감한다.

코핀이 지적하듯이 마녀들의 공격 목표는 가부장적 규율이다(94). 마술에 걸린 아들 그레고리(Gregory)는 아버지를 “헤픈 사람”(spendthrift), “방탕한 신사”(a prodigal sire)라고 비난하고(1.2.85–86), 딸 위니(Winny)는 어머니 조안(Joan)을 “스코틀랜드의 마녀 같다”(one o’the Scottish weird sisters;1.2.161–63)고 조롱한다. 그 와중에 등장한 하인 로렌스는 주인인 실리에게 “대체 뭘 잘못하셔서 이 난리냐?”(what the foul / evil do you, here’s suh a din?;1.2.113–14)고 질책하고 하녀인 파넬 또한 위니에게 일을 시킨다. 실리의 친구인 다우티(Doughty)는 “집안 꼴좋다”(Here’s a house well governed!; 1.2.187)고 한탄하면서 이 모두가 틀림없이 마녀들의 소행이라고 단언한다.

다우티 [방백]

거 참 완전히 뒤집혔군. 아들놈은

아버지를 제멋대로 휘두르려고 하고 하인 놈은

주인 양반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 하니, 십중팔구 마술에 걸

린 게야.

Doughty [aside]

This is quite upside down: the son controls

the father and the man overcrows his master’s

coxcomb - sure they are all bewitched. (1.2.120–23)

마녀는 더 이상 어둡고 외딴 숲에 사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 가정의 어머니나 아내, 혹은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욕 잘하는 여자(scolding women), 어느 집에나 있을 수 있는 반항적인 아이들이나 하극상을 벌이는 하인들과 동격이 된다. 마녀극이 재현하는 하극상은 마술이 초래한 것이며, 정치나 기타 분야에서 위계질서가 파괴될 때 그것 또한 악마의 조종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등식이 암암리에 설정된다. 마녀들은 사회적이며 도덕적인 제약이나 금기들을 거침없이 파괴하면서 핀들리의 말을 빌리자면 “‘일탈된 욕망의 장소’(a locus of outlawed desires)가

되고, 마술의 내러티브는 자체의 생명력을 얻어가면서 권위에 도전하고 가부장적 불안에 맞서고 조롱한다”(Ostovich, 재인용).

제너러스 집안의 이야기는 마녀 제너러스 부인(Mrs Generous)을 매개로 여성의 성적 일탈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전달한다. 마녀는 반역자로서 성적 쾌락에 탐닉한다. 마술이 실리 집안의 기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면 제너러스 집안에서는 가부장적 권위를 조롱하면서 전통적인 남녀의 성(性) 역할을 전도시킨다. 제너러스 부인은 남편의 명령을 무시하고 밤에 말을 타고 나가서 자신의 삶을 즐기는 마녀이다. 3막 2장에서 말고삐를 들고 등장한 제너러스 부인은 남편이 타는 “거세된 말”(gelding)을 가져오라고 하인 로버트(Robert)에게 명령한다. 거세된 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내의 행동을 통제 못하는 무능력한 남편을 상징한다. 제너러스 부인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을 통해 마녀는 쾌락의 주체이자 사회적이며 성적인 질서를 전도시키는 반항적인 주인공으로 극 중심에 서게 된다.

제너러스 부인

그래? 내가 뭘 하는지 네가 일일이

남편한테 알려준다 이거지, 그럼 나는

남편에게 묶여 살다가 이젠 너한테까지 묶여 살란 말이냐?

이 못된 하인 놈 같으니라구!

로버트

좋을 대로 말씀해보세요. (부인에게서 몸을 돌린다)

제너러스 부인

좋다, 이 놈. 내 마음대로 할 테다. (그에게 고삐를 채운다)

Mrs Generous Oh, is it so? And must he be made acquainted

with my actions by you, and must I then be

controlled by him, and now by you? You are a

saucy groom!

Robert You may say your pleasure. (He turns from her)

Mrs Generous ‌ No, sir, I’ll do my pleasure. (She bridles him) (3.2.96–101)

마법의 고삐에 채워진 로버트는 말로 바뀌고 부인은 그를 몰고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부인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마법의 고삐는 다시 로버트의 손에 들어가고 그는 자유자재로 부인을 변신시킨다. 로버트는 말로 변신한 제너러스 부인을 타고 와서는 주인 앞에 대령시키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신시킨다. 자기 눈앞에서 말이 아내로 바뀌자 제너러스는 놀라서 “방금 탈바꿈한 이것”(this new transformed creature; 4.2.118)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제너러스

내 손에 있는 이것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눈 깜짝할 새에

네 발 달린 짐승에서 아내 같은

형상을 만들 수 있단 말이냐?

로버트 고삐입죠, 나리, 짤랑거리는 고삐 말이에요.

Generous What? What’s this in my hand, that at an instant

Can from a four-legged creature make a thing

So like a wife?

Robert A bridle, a jingling bridle, sir. (4.2.124–27)

하인을 태우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제너러스 부인의 모습은 마녀에 대한 이중의 처단을 의미한다. 자기의 실체가 발각되자 부인은 남편에게 참회하는데 그녀의 말에서는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를 비롯한 근세 초 악마론 저자들이 마녀에게 씌웠던 혐의들이 고스란히 나열된다. 그녀는 자신이 “저주받은 존재”(such a cursed creature; 4.2.146)로서 “악마에게 영혼을 바쳤다”(I have promis’d him my soul; 4.2.165)고 고백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녀는 “아시다시피/한 번 마녀는 영원한 마녀”(once and ever / Awitch, thou knowst.; 4.4.28–29)라고 남편을 배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장면들에서 그녀는 사기꾼일지언정 사악한 존재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마녀들은 한밤중에 고양이로 변신해서 방앗간에서 소동을 피우는데 그것은 그저 하나의 놀이일 뿐이다.

제너러스 부인

오늘밤 우리 모두 맘껏 놀아보세.

그저 여흥을 즐기자는 거지, 해를 끼칠 마음은 없어.

Mrs Generous This night we’ll celebrate to sport:

’Tis all for mirth, we mean no hurt. (4.4.61–62)

마녀들이 마술을 놀이와 재미를 위한 수단으로 강조하는 사례는 비단 제너러스 부인의 대사뿐 아니라 작품 곳곳에 등장하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작가들이 로빈슨의 증언에 의존하되 펜들 지역에 널리 퍼진 민간전승이나 1차 재판의 마녀 담론을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의식 없이 클라크가 말한 카니발과 같은 공간에 자유분방하게 풀어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에너지는 가부장적 질서로 흡수되면서 체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마녀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한밤중 방앗간에서의 소란을 멈추기 위해서 방앗간 주인은 군인 한 명을 매복시키고, 제너러스 부인은 고양이로 변신해서 축제를 즐기다가 결국 그에게 앞발을 잘리게 된다. 군인은 마을 사람들 앞에 마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그것을 제시한다. 톰킨스가 “이야기의 유일한 비극적 부분”(Ostovich, 재인용)이라고 관람평에서 말했던 이 대목에서 극의 희극성이 일시에 사라지며 여성 우위의 게임은 끝난다. 극은 아무리 악의 없는 놀이라고 해도 마술은 진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가부장적 법이 결국에는 마녀들의 거침없는 에너지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의미심장하게도 잘린 고양이의 발에는 부인의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다. 반지는 제너러스 부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보장하는 것이며, 반지가 몸에서 분리된 순간 그녀를 마녀라는 비난에서 보호해 줄 제도적 장치는 사라진다.

제너러스 [방백]

놀랍고 기가 찰 일이로다, 어찌 이런 일이?

확실한 징표가 있으니 틀림없는 것인데.

이것이 한때 신성한 서약을 했던 그 손이란 말인가?

이것이 신성한 서약을 묶어준 그 반지란 말인가?

Generous [aside] Amazement upon wonder, can this be?

I needs must know’t by most infallible marks.

Is this the hand once plighted holy vows?

And this the ring that bound them? (5.3.97–100)

5막 5장은 군중 앞에서 재연되는 마녀들의 재판 장면으로서 그녀들은 마을의 남성들과 “공식적으로 대면하는 의식”(a ritual of public confrontation)을 치른다(Purkiss 31). 여기서 마녀재판은 마녀의 악행을 만인 앞에서 폭로함으로써 실추되었던 남성성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ritual)으로서 상징성을 띤다. 남자들은 비로소 환상에서 깨어나면서 실추되었던 자기의 위상을 회복하고, 마녀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로서 규정된다. 실리는 자기가 마술에 걸렸던 순간을 알아차린다. 그는 “사악한 눈길과 쉰 목소리로 / 마녀가 저주를 퍼부었지. 머지않아 / 너 자신이 네 아들에게 복종해야 할 거라고”(When, with an ill look and an hollow voice, / She mutter’d out these words: ‘Perhaps ere long / Thyself shalt be obedient to thy son.’; 5.5.92–93) 라고 되뇌인다. 순종적인 아들로 되돌아온 그레고리는 “마녀들이 사법 당국에 의해 / 비밀리에 체포되었고 / 그녀들의 저주들은

일시에 효력을 잃었습니다”(witches apprehended under hands / Of lawful authority do lose their power, / And all their spells are instantly dissolv’d.; 5.5.96–99)라고 말하면서 사법권의 막강한 힘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다우티는 “마녀들이 우글대는 개집”(a whole kennel of witches; 5.5.117–18)을 소탕했

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그의 대사를 통해서 클라크가 지적한 변신의 상징적 의미가 현실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녀들은 객관적인 기준에선 물론 마을 사람들의 내면적 기준에서도 인간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동물로 취급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제너러스 부인은 이러한 공식적인 마녀 만들기에 맞서 침묵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한다. 모드(Maud), 질리언, 몰이 그녀의 침묵에 동조하면서 “너희들은 우리에게서 아무런 자백도 받아내지 못할 것”(Other confession you get none from us,; 5.5.201)이라고 말할 때 남성들이 마련한 공식적인 의식은 무력해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존슨이 실제 펜들 재판정에서 그랬듯이 메그가 그녀의 퍼밀리어인 마밀리온을 목청껏 외쳐 부르자 나머지 마녀들도 악을 쓰면서 무대는 일시에 아수라장이 된다. 작가들은 에필로그에서 마녀 피의자들에게 동정적인 제스쳐를 취하지만 마녀들이 벌이는 혼란상은 에필로그의 내용보다 더 강력하나 설득력을 갖는 “시각적 레토릭”(visual rhetoric)이 된다(Ostovich). 작가들의 공식적인 언술은 제스쳐에 지나지 않으며 관객의 내면에 호소하는 것은 미친 듯이 날뛰는 무대 위의 마녀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이다. 즉 마녀들은 광란의 무리로 재현되며 비록 놀이라고는 했지만 그녀들이 불러온 혼란과 무질서를 보면서 관객들은 강력한 권력의 통제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마술과 마녀의 실체를 믿었던 사람들은 물론 마술 신앙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사람들까지도 마술의 위험성을 새삼 피부로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근세 초 마술적 상상력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작가들은 마녀가 초래하는 혼란상을 경고하고 가부장적 질서의 필요성을 극적 스펙터클로 재현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마술과 마녀의 위협적인 실체를 연극 무대에서 설득력 있게 재현해 달라는 추밀원의 요구를 수용한 것일까.

4. 마술과 연극의 삼투성

여기서 근세 초 마술적 상상력을 다뤘던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를 비롯한 악마론 저작들은 현실과 환상의 상관성을 놓고 소위 “상상력의 과학”을 시도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극에서도 이런 특징을 극의 액자식 구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극은 마술에 걸렸다가 풀려나는 실리 집안과 제너러스 집안의 프레임,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와 그것의 전도된 형식인 마녀들의 놀이라는 프레임, 두 개의 프레임 사이를 오가며 마술과 마녀에 대한 코멘트를 하는 다우티, 그리고 가장 바깥쪽에는 마술과 마녀의 실체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적인 대화를 나누는 아서(Arthur), 셰익스토운(Shakestone), 밴텀(Bantam)이라는 세 명의 신사가 만드는 프레임과 같은 다층의 프레임들로 구성된다. 실리 집안과 제너러스 집안을 통해서 마술과 마녀의 위험이 경고되고 결국 이들의 처단을 통해서 사회는 안정을 되찾지만 세 명의 신사들과 다우티와 같은 인물들을 통해서 관객들은 끊임없이 극적 환상에 대한 일방적인 몰입을 차단당하면서 무대와 미학적 거리를 두게 된다. 극의 첫 장면은 마술에 대한 합리적 회의주의와 미신 사이의 논쟁으로 시작된다. 토끼 사냥을 하던 중 그들이 쫓던 토끼가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지자 아서는 그것이 틀림없이 마녀였다고 주장한다.

아서

토끼라고?

내가 보기엔 마녀, 아니 악마야!

자, 말해보게나, 자네들, 도대체 가당키나 한 일이야?

이렇게 탁 트인 길에, 근처에 숨을 구멍도 없는데

우리는 쫓고 토끼는 눈앞에 계속 보였는데

한눈팔지 않고 계속 눈으로 쫓으면서

개들의 추격에 막 잡힐 뻔 했는데

바로 그때 말이지, 목숨 걸고 장담하건대

내 사냥개가 토끼를 막 물었을 그 순간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져 버릴 수가 있어?

셰익스토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자네가 흥분해서 우기는 만큼은 아니야.

Arthur A hare?

A witch, or rather a devil, I think!

For tell me, gentlemen, was’t possible

In such a fair course and no covert near,

We in pursuit and she in constant view,

Our eyes not wandering but all bent that way,

The dogs in chase, she ready to be ceas’d,

And at the instant, when I durst have laid

My life to gage my dog had pinch’d her, then

To vanish into nothing?

Shakestone Somewhat strange,

But not as you enforce it. (1.1.7–18

눈앞의 동물이 홀연히 사라지는 에피소드는 로빈슨의 증언에 나오는 내용이며, 감각의 작용, 특히 그 중에서도 시각은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에서 악마의 환영술을 분석하며 거론되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아서는 과연 내가 본 것이 환상인가, 아니면 진짜인가를 놓고 어리둥절해 한다. 셰익스토운과 밴텀 또한 아서의 의문에 동참하는데 마술과 마녀의 실체를 놓고 세 사람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찬성과 반대, 혹은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극중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다각도에서 분석한다. 그 결과 관객들 또한 극이 전개되는 내내 극중의 사건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취하면서 이들의 의문과 대화에 동참한다. 극은 믿음과 불신, 거짓과 진실, 현상과 실제에 관한 개념들로 충만하다. 작가들이 작품을 쓸 무렵 이미 로빈슨은 자신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자백했지만 작가들은 소년의 증언의 토대를 이루는 일체의 마녀 담론을 연극적 틀 속에 던져놓고 다각도에서 바라본다. 이런 극적 구성은 랭커셔 마녀재판의 내용과 절차 뿐 아니라 마술 신앙 자체를 허구적 구축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극적 환상에 대한 몰입과 거리두기의 이중적 체험은 극장 내에 국한되지 않고 극이 소재로 하는 극장 밖의 현실, 즉 마녀재판의 진실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마술과 마녀가 두려운 이유는 다우티의 말대로 그것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는 “쳇, 눈앞의 자네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 살아있는 것들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솔직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해악들은 / 생각만 해도 무섭다”(‘Zooks! I fear nothing living that I can / See more than you, and that’s nothing at all. / But to think of these invisible mischiefs / Troubles me, I confess.; 3.1.133–36)고 고백한다. 근세 초 마녀 사냥이 정교한 상상력의 과학을 필요로 했던 이유도 악마의 환영술이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의 영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극중에서 밴텀은 마지막까지 악마의 존재를 믿는 반면 셰익스토운은 계속해서 회의적인 어조를 유지하면서 방관자로 남는다.

이러한 극적 구성을 두고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았다. 핀들리는 작가들이 극히 모호한 입장을 미묘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이 극을 종교적 풍자로 사용했으리라고 추측했고(160), 코핀은 이 극에는 “모호한 전복성”(ambiguous subversiveness)이 있으며, 극장을 마술과 동일시함으로써 재판의 허구적 근거를 노출시킨다고 보았다(102). 코핀은 마녀들이 극의 작가이자 연출자가 되어서 자신들의 연회를 기획하는 부분에 주목했다.

일동

오! 잘 만났군, 잘 만났어.

메그

뭐 새로운 장치나 기발한 거 없을까,

이득보다는 재미 좀 보게

한 판 연출해 볼 만 한 거 없을까?

아니 그러지 맙시다.

또 다른 놀이를 하기 전에

먼저 조금 웃고 감사를 해야죠,

우리 재주꾼인 퍼밀리어들에게 말이에요,

일전에 우리에게 재주를 피우며 놀아주었으니.

All Ho! Well met, well met.

Meg What new device, what dainty strain,

More for our mirth now than our gain,

Shall we in practice put?

Moll Nay, dame,

Before we play another game

We must a little laugh and thank

Our feat familiars for the prank

They played us last. (2.1.2–9)

이런 대사들은 “연극으로서의 마술”(witchcraft as theatre)을 노출시키며 마녀가 구사하는 마술을 작가의 재현 전략과 동일시하게 만든다. 코핀은 이를 “메타연극성”이라고 부르며 실제 재판의 허구적 근거를 노출시킨다고 지적했다. 극은 마녀를 만드는 사회를 직설적 화법으로 비판하는 리얼리즘의 기법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메타연극적 기법을 통해서 마녀 만들기의 진실을 말한다.

앞서 지적한 메타연극성과 더불어 가부장적 불안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면서 극은 실제 재판이 허구에 관한 것이며, 공연과 다름없는 환영이라는 가장 전복적인 시사를 한다. 그러나 이런 명백한 도전은 회의주의가 팽배해가는 맥락에서 볼 때 보기보다 그렇게 대담한 것은 아니다.

Articulating that patriarchal insecurity along with pointed metatheatricality, the play offers its most subversive suggestion that the actual trial is about fiction and performance-like illusion. Yet the apparent challenge is perhaps not as daring as it seems in the context of growing scepticism. (92)

코핀이 지적한 메타연극성을 연극 무대와 관객의 관계에 국한시키지 않고, 연극 장르가 표방하는 “인생은 꿈”(Life is a Dream)이라는 존재론적 성찰로 확장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극작가들은 무대에 재현된 마술의 세계는 실제 마녀재판에 등장하는 환상과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은밀히 삽입하면서, 무대 위의 세계는 ‘허구’라는 안전망을 깔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세계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피셔에 따르면 악마 연구자들은 일종의 과학으로서 마술적 상상력을 분석했다면 연극은 관객들에게 마술적 상상력 자체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205). 마술 신앙의 추종자들은 이 극을 통해서 아서처럼 마술과 마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도 있는 반면 셰익스토운과 같은 회의주의자는 연극이 허구이듯이 재판 또한 허구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극에서 마술적 상상력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그린다. 이런 극적 구성은 ‘메타’(meta)라는 접두어가 의미하듯이 마녀 프레임은 조작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현실의 관객들 또한 유사한 인식의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경고를 주는 식으로 연출될 수 있다.

5. 맺는 말

근세 초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를 비롯한 악마론 저작들이 상상 속에서 구축한 악마와 마녀, 그리고 마술의 개념은 대대적인 마녀사냥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마술은 환상을 만드는 기술이고, 악마는 탁월한 기술자였으며, 마녀는 악마와 성적인 밀약을 통해 악마의 기술을 세상에 전파하고 적용하는 하수인이었다. 유럽 전역을 휩쓸던 마녀사냥의 열기가 잦아들면서 마술적 상상력은 문화의 영역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녀와 마녀재판은 최고의 문화상품이 되었다. 여기에는 15세기 중반 인쇄술의 발명도 큰 역할을 했다. 마녀재판은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센세이셔널한 뉴스거리였고 마녀가 처형을 기다리며 자신의 죄를 참회한 고백록, 재판 기록물과 같은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 자료에서 선정적인 발라드나 코믹한 인형극, 인쇄업자들의 팸플릿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마녀 담론이 생산되었다. 성직자를 비롯한 지식인 계급이 상상 속에 구축하여 유포시킨 내용들은 민중의 체험에 녹아들면서 사회 전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당시 문화적 중심 기구로 부상하던 극장은 이를 예술적 체험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후기 랭커셔 마녀들』은 실제 재판의 기록과 허구적 창작물의 복합적 구성을 통해 전래되어 온 마술 신앙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다양한 마술적 상상력에 관해 말해준다. 이 작품은 근세 초 마술적 상상의 특징인 가부장적 권위에 가해지는 위협, 성적 무능력, 자유분방한 성(性) 등등에 관한 깊은 내면적 두려움이나 욕망을 재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메타연극적 구성을 통해서 작가들은 사법적 진실과 정치권력의 판결 또한 허구일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연극 무대의 환상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마술과 다를 바 없지만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자들이 그것을 악마의 기술로 사용했다면 극작가들은 선악이 규정되는 프레임 자체를 문제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녀 색출과 처형의 근거로서 파괴적인 기능을 담당했던 마술적 상상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은밀하고 금기시되었던 상상의 영역을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것은 도덕과 이성이 단단히 걸어놓은 빗장을 열고,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환상 문학과 문화의 세계를 선보이면서 고전이나 민간 전승되는 여타의 마녀 담론과 상호 침투하였고, 드라마와 예술, 기타 문화적 형식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오늘날 미디어의 핫이슈들처럼 당시 마술과 마녀 또한 대중의 관심을 끄는 뉴스거리였다. 대중이나 정치권력은 그것의 진위를 둘러싸고 서로 충돌했으며, 극작가들은 연극을 통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런 상황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랭커셔 마녀들의 사례를 놓고 이들 작가들이 정치적 권위에 순응했는가 혹은 도전했는가에 대한 정답을 찾고자 한다면 그런 시도는 작품을 화석화하고 단순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한 편의 작품은 독자나 관객의 마술적 상상력 속에서 매 순간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 잠재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의 주동자들은 제거할 대상이 되어야 할 마녀를 만들기 위해서 마술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신과 악마, 선과 악, 남자와 여자, 현모양처와 마녀 등등의 이항 대립의 체계를 세우고 그것을 고착화시키며 그중 한쪽을 처단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이런 체계는 궁극적으로 다른 한쪽을 처단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본 논문에서 살펴보았듯이 연극 무대의 마술적 상상력은 마녀 프레임의 허구성을 노출시키고 인습화된 가치관을 자의식적으로 성찰하는 수단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주제어: 마녀사냥, 회의주의, 마녀극, 극장, 메타연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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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ak.go.kr/repository/journal/24851/jmemes_2021_31_1_14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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