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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의 호루스' 하르마키스(스핑크스) 1 by 살아있는 오천년의 문명과 신비 이집트

달빛정화 2021. 5. 7. 23:03

 

살아있는 오천년의 문명과 신비 이집트 p158
에 있는 내용이에요~☆



공포의 아버지 '스핑크스'

피라미드와 함께 기자의 대표적인 명물인 스핑크스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안흔다. 기자 언덕에 위치한 3개의 웅장한 피라미드를 뒤로 하고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내려오면 스핑크스가 길 오른쪽 아래에 나타난다.

높이 약 20미터, 길이 72미터, 폭 4미터에 달하는 이 스핑크스가 이집트에서 가장 큰 스핑크스이다. 그러나 막상 가까운 곳에서 보면 너무 작아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스핑크스는 바위언덕을 깎아 전체적인 모양을 만든 후, 제2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남은 돌을 덧붙여 만들었다고 한다. 스핑크스 건설 당시에는 빨간색으로 얼굴이 칠해져 있었지만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는 그 흔적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스핑크스는 인간의 얼굴과 사자의 몸통을 하고 있는데, 인간의 지혜와 사자의 용맹함을 상징한다. 스핑크스 얼굴의 실제 모습은 제2 피라미드의 주인공 카프라 왕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지만 파라오 시대에 만들어진 다른 조상들의 얼굴이 한결같이 젊고 잘생긴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이 말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것 같다.

스핑크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2미터나 되는 스핑크스의 입이 비웃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수천 년 동안 미소를 머금은 스핑크스가 바라보는 방향은 동쪽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앙에서 ‘동쪽’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방향의 의미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해가 뜨는 동쪽은 흔히 생명과 부활의 세계와 동일시되는 반면 서쪽은 죽음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집트의 모든 피라미드가 전부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스핑크스를 ‘지평선의 태양신’이란 뜻의 하르마키스라고 불렀고 후대의 그리스인들은 스핑크스라고 불렀다. 스핑크스의 아랍어 이름은 ‘아불 하울(공포의 아버지)’이다. 건설된 지 약 2500년이 지난 후에 이집트에 온 그리스 사람들은 스핑크스를 보고 자신들의 신화를 생각했다. 인간의 얼굴과 사자의 몸통을 한 이 신기한 기념물을 보고 그리스 신화 속의 스핑크스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는 얼굴은 여자, 몸통은 사자의 모습으로 날개를 달고 있다. 테베에 나타나 주민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지 못할 경우 잡아먹었다는 괴물이다.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4발, 점심에는 2발, 저녁에는 3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정답은 사람.)

스핑크스가 낸 문제의 정답을 맞추어 스핑크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코린토스(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걸쳐 있는 주) 출신의 오이디푸스였다. 테베의 시민들은 오이디푸스를 그들의 왕으로 모시고 여왕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왕이 자기를 낳은 어머니였음을 후에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두 눈을 뽑아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낳은 딸들과 함께 속죄의 의미로 평생을 방랑하였다.

스핑크스는 기자 외에 이집트의 다른 지역에도 있고 다른 나라에도 있으나, 규모는 기자의 것보다 훨씬 적다. 스핑크스의 생김새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스핑크스는 머리가 2개이며 카이로 박물관에 있는 스핑크스는 고양이나 사자의 머리를 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이라크에 있는 스핑크스는 털이 많은 왕관을 쓰고 있고 에티오피아에 있는 스핑크스는 갈색 털에 2개의 젖가슴이 있다.



스핑크스와 꿈의 비석

스핑크스하면 유명한 것이 스핑크스의 코가 떨어져 나간 것에 관련된 일화이다. 흔히 알려지기로는 1798년 이집트에 원정을 온 나폴레옹의 군대와 이집트 군대가 벌인 피라미드 전쟁 때 프랑스군이 쏜 대포에 맞아 코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지만 이집트학 전문가들은 이 주장에 신빙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코가 떨어져 나간 진짜 이유는 오스만 터키 지배기간 동안 이집트인들이 스핑크스의 코를 향해 사격 연습을 하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1380년경 아랍 통치 기간중 성상파괴주의자였던 한 쉐이크가 스핑크스의 코를 부셨다는 내용을 믿는 사람도 일부 있다. 스핑크스의 코가 왜 떨어졌는지에 상관없이 떨어진 코와 그 턱수염은 현재 대영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한편,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 유물이 널려 있는 이집트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석상들의 코가 떨어져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관광 가이드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기독교 시대와 이슬람 시대에 동상들을 우상으로 생각한 신자들이 코를 부셨다고 대답한다. 석상을 완전히 부수지 않고 코만 살짝 부순 이유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코만 없애면 최후의 심판날에 부활할 수 없다고 본 이집트인들의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앞발 사이를 유심히 보면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는 붉은색 화강암 비석이 있는데 상형문자로 적힌 이 비석의 내용은 신왕조 투트모세스 4세의 등극 이야기이다. 이른바 ‘꿈의 비석’이라고 알려진 이 비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이 되기 전, 투트모세스 왕자가 이집트 남부에 사냥을 나왔다가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잤는데 꿈에 하르마키스 신이 나타났다. 신은 투트모세스에게 모래가 자기를 덮고 있어 답답하니 그 모래를 치워주면 상, 하 이집트의 왕관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잠에서 깨어난 왕자는 곧 멤피스로 가서 스핑크스를 덮고 있던 모래를 제거하고 제물을 바쳤다. 그 결과 원래 왕이 될 서열에서 멀었던 투트모세스 왕자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집트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어떤 목사는 원래 왕이 될 서열이 아니었던 투트모세스 4세가 갑자기 왕이 된 이유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그 목사에 의하면 투트모세스가 낮잠을 자던 당시, 이집트의 왕은 아멘호테프 2세였으나 출애굽 사건이 발생하여 모세를 쫓아갔다가 홍해에 빠져 죽는 바람에 투트모세스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에 홍해에서 익사한 파라오는 아멘호테프 2세가 아니라 람세스 2세라는 설이 있으며, 그의 아들 메르네프타가 출애굽의 왕이란 설도 있다. 출애굽 당시의 이집트 왕이 누군지는 보다 정확한 자료에 의해 차차 밝혀질 것으로 ‘꿈의 비석’ 이야기를 단정적으로 믿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