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금성)이 땅으로 떨어지는 명계하강 내용의 가나안 신화
고대문명이 숨쉬는 중동신화 p24
루시퍼 신화와는 좀 다르지만 샛별(금성)이 땅으로 떨어지는 내용의 신화로
이난나 = 이슈타르 = 샛별 = 금성이 지하세계로 가서 죽고 다시 부활하는 내용입니다.
지하세계의 여왕 에레슈키갈
먼 옛날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신들의 잔치가 열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다만 죽은 자를 지배하는 지하세계의 여왕인 에레슈키갈은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 때문에 신들의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에레슈키갈은 신들의 잔치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하를 보내 음식을 얻어 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세계에서 올라간 에레슈키갈의 부하는 네르갈이라는 신에게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부하는 빈손으로 돌아와 에레슈키갈에게 그 사실을 전했습니다.
"아니, 이런 무엄한 놈이 있나? 감히 나를 욕보이다니 가만 두지 않겠어."
에레슈키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하를 보내 네르갈이 직접 지하세계에 내려와서 사과를 하라고 전했습니다. 신들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에레슈키갈은 무서운 지하세계의 여왕이었기 때문에 신들은 그녀를 두려워했습니다.
"자네가 가서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겠네."
네르갈은 울상을 지었습니다. 신들은 네르갈을 불쌍하게 생각했지만 에레슈키갈이 화를 내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신들은 지하세계에 내려가면 조심해야 할 일을 일러 주었습니다.
"만약에 지하세계로 내려가면 절대로 의자에 앉아서는 안 되네."
"음식을 주더라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돼."
"게다가 지하세계에서 주는 것은 무엇이라도 받으면 안 돼. 만약 하나라도 받으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거야."
네르갈은 신들의 말을 깊이 새기고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지하세계로 내려갔습니다. 네르갈이 지하로 내려가자 에레슈키갈의 부하가 빵과 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배가 고프지도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네. 거절하겠어."
네르갈은 신들이 시키는 대로 빵과 물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네르갈 앞에 에레슈키갈이 나타났습니다. 네르갈은 깜짝 놀랐습니다. 에레슈키갈이 마녀처럼 무섭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네르갈은 에레슈키갈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네르갈은 에레슈키갈과 함께 지하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지하세계는 우울하고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네르갈은 슬슬 지하세계가 싫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늘로 돌아갈 핑게를 생각했습니다.
"하늘로 돌아가 당신과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에레슈키갈은 네르갈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선선히 네르갈이 하늘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하늘로 올라온 네르갈은 지하세계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에레슈키갈은 전보다 훨씬 크게 화를 냈습니다. 에레슈키갈은 부하를 보내 신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네르갈을 보내지 않으면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덮치게 하겠다."
큰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나타난다면 세상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들은 급히 모여 회의를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네르갈, 네가 다시 지하세계로 내려가야겠다."
그러나 네르갈은 질색을 하며 싫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곳은 어둡고 축축하고 우울해요. 미칠 것만 같다고요."
신들은 네르갈을 동정했지만 세상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네르갈은 지하세계로 다시 내려갈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레슈키갈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아주 흉하고 무섭게 변장을 하고 신들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에레슈키갈은 네르갈을 곧바로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고를 보냈습니다.
불쌍한 네르갈은 에레슈키갈의 부하를 놀렸다가 결국 지하세계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했습니다. 네르갈은 에레슈키갈의 남편이 되어 아주 우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
에레슈키갈 여왕이 다스리는 지하세계는 아주 어둡고 우울한 데다가 건조해서 먼지가 풀썩거리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주 절망적인 땅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죽음의 세계였습니다.
에레슈키갈에게는 이난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난나는 에레슈키갈을 만나기 위해 지하세계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난나는 언니를 만나 자기의 권위를 주장할 생각이었습니다.
"누가 더 아름답고 힘이 센지 보여 줄 거야."
이난나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온갖 장식물을 달아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그리고 지하세계로 떠날 준비가 되자 부하인 닌슈브르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내가 사흘 이내에 돌아오지 않거든 신들을 찾아가 나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여라. 최고신 엔릴이나 달의 신 난나, 지혜의 신 엔키 가운데 누군가는 도와줄 것이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이난나는 지하세계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하세계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언니에게 자기의 권위를 보여 주기 위해 한껏 아름답게 꾸미고 갔는데 옷을 벗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하세계의 여왕 에레슈키갈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모두 7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에레슈키갈의 명령에 따라 옷과 장식을 하나씩 벗어야 했습니다. 처음에 이난나는 옷벗기를 거부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나는 너희들의 주인인 에레슈키갈의 동생이다."
그러나 에레슈키갈의 부하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레슈키갈님의 명령입니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는 누군든지 옷을 하나씩 벗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실 에레슈키갈은 전쟁의 신이기도 한 이난나가 무서워서 일부러 무기를 없애기 위해 옷을 하나씩 벗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이난나는 어쩔 수 없이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이난나는 옷과 장식을 벗었습니다. 마침내 이난나가 에레슈키갈과 7명의 재판관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에레슈키갈은 이난나에게 잔인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난나를 말뚝에 거꾸로 매달아라."
아무런 방어 무기도 없는 이난나는 벌거벗긴 채로 꼼짝없이 말뚝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말았습니다.
한편 사흘이 지나도 이난나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의 부하인 닌슈부르는 신들을 찾아갔습니다.
"이난나님이 지하에 갔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하늘의 신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에레슈키갈이 다스리는 지하세계에는 그들만의 법이 있다네. 그곳은 우리가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곳이지."
신들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지하세계와의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들은 귀찮은 일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닌슈부르는 하는 수 없이 엔키를 찾아갔습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엔키님뿐입니다. 제발 이난나님을 도와주십시오. 어쩌면 이난나님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엔키는 고민 끝에 이난나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엔키는 원래 신들 가운데에서도 정이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엔키는 어떻게 지하세계에 있는 이난나를 구할지 궁리했습니다.
엔키는 먼저 자기 손톱에 있는 때를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존재 2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지하세계로 보냈습니다. 지하세계의 여왕 에레슈키갈은 두 사람이 잘생겼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이들이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존재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지하세계에 살면서 몰래 이난나를 찾아가 생명의 음식과 생명의 물을 주어 이난나를 살려 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이난나는 살아서 지하세계를 나왔지만 지하세계의 악마들이 이난나의 뒤를 따라다닌 것입니다. 이난나를 대신해서 지하세계로 갈 사람이나 신을 찾을 때까지 이난나의 뒤를 계속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하세계의 법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를 대신할 생명을 끌고 가야 하는 법입니다.
가장 먼저 악마들이 데리고 간 것은 이난나의 부하인 닌슈부르였습니다. 그러나 이난나가 곧바로 닌슈부르를 구해 냈습니다. 악마들은 다른 신들을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이난나가 방해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난나는 악마들을 떼어 내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쳐 다녔습니다. 그러나 악마들은 끈질기게 이난나의 뒤를 좇았습니다.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군."
이난나는 우루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이난나는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 두무지는 이난나가 지하세계로 잡혀갔는데도 걱정은커녕 즐거운 듯이 웃으며 잔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두무지는 쿨라브라느는 지역의 왕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지하세계에서 심한 고통을 당했는데 그 동안 희희낙락 즐기고 있었단 말이지."
화가 난 이난나는 자기 대신 두무지를 지하세계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보기 싫은 남편을 보지 않아도 되고 자기를 따라다니는 악마들도 떼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무지는 지하세계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태양신에게 빌었습니다.
"제발 저를 숨겨 주십시오."
태양신은 두무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술을 만드는 양조장에 두무지를 숨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두무지는 이난나에게 들켜 사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악마들에게 남겨져 지하세계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