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진실은 하나가 아니랍니다.

플로렌치아가 벌떡 일어나 빌프리트 겉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슬픈 미소를 지으며 빌프리트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빌프리트, 할머님의 진실을 알게 되었군요.
하지만 진실은 하나가 아니랍니다.
페르디난드가 처음에 말했듯이,
사람은 모두 관점이 다르고 제각각의 진실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실로는 로제마인은 베로니카 님의 피해자라는 것.
오히려 음모를 꾸미고, 영지에 혼란을 초래한 사람은 베로니카 님이랍니다."
"어머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가!?"
빌프리트는 믿을 수 없다며 눈을 크게 뜨고, 어머니의 말을 뿌리치듯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들을 꼭 껴안은 플로렌치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어나자마자 아들을 베로니카 님께 빼앗겼어요.
이렇게 쓰다듬어주게도, 안아주게 해주시지도 않으셨지요.
심지어 아들에게 이렇게 큰 죄를 범하게 만드셨네요.
그것이 이 어미가 아는 진실입니다."
빌프리트는 움직임이 딱 멈췄다.
의아한 듯이 눈을 끔뻑이며, 당장에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플로렌치아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죄를 지었나요?"
빌프리트의 물음에 "그렇다."라고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중략)
"그 자리에 있던 자 중에 죄를 지은 사람은 빌프리트, 당신 뿐입니다.
영주가 유폐한 중죄인의 도망을 도왔다는 방조죄를 묻는다면
차기 영주의 지위 박탈 정도의 처벌로 끝나진 않겠지요.
......그럼 이 엄마는 또다시 아들과 떨어져 버리게 되는군요."
겨우 자기 품에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라며 중얼거린 플로렌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중략)
페르디난드는 계속 메모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진실은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
로제마인, 그대의 진실을 빌프리트에게 알려줘라.
빌프리트의 조모 때문에 잃은 게 있겠지?"
(중략)
"그건 제 진실이 아니에요, 빌프리트 오라버니."
페르디난드가 무슨 생각인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준비된 설정을 얘기했다.
신전에서 몰래 키워진 사실,
전 신전장이 평민이라 착각해서 귀족에게 그 사실을 유포한 사실,
전 신전장이 자신의 누이인 베로니카에게 부탁하여 타 영지 귀족을 끌어들였고,
그 대문에 팔려갈 뻔했던 사실,
나를 지키려던 호위 기사와 시종이 다친 사실,
마력을 목적으로 접근하던 타 영지 귀족에게서 날 지키기 위해 영주가 양녀로 삼은 사실.
조모가 죄를 범한 사실은 알아도 그 죄가 나와 어떤 식으로 관련되었는지 몰랐던 빌프리트는 아연실색했다.
"그, 그래서 넌 대체 뭘 잃었는데?"
가족, 하고 마음속으로 대답한 나는 살짝 눈을 내리떴다.
"......제가 잃은 것은 자유에요, 빌프리트 오라버니.
그때까지 전 어떤 평민과 자유롭과 책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평민촌에 갈 수도, 평민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조차 금지되었죠.
그리고 영주의 양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엄격한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가 세례식이 끝난 직후에 신전장직을 맡게 된 건 마력으로 구멍을 메꾸기 위해서예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빌프리트 오라버니는 잘 아시지요?"
"그건...... 할머님이 하신 말씀과 달라......"
빌프리트가 입숙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솔직한 사람이다.
입으로는 내 음모다, 뭐다 하면서 내 말을 그대로 들어준다.
그런 모습을 슬프게 바라보던 플로렌치아가 빌프리트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빌프리트, 베로니카 님이 저지른 죄 때문에 로제마인은 위험에 처할 뻔했습니다.
그렇다고 로제마인이 베로니카 님 탓으로 돌리던가요?
당신이 폐적당할 위기에 빠졌을 때는 성심성의껏도와주었지요?
그건 당신의 진실이 아닌가요?"
깜짝 놀란 빌프리트가 나를 보았다.
(중략)
"빌프리트, 넌 지금 세 가지 진실을 알게 되었다.
조모에 해당하는 선대 영주의 부인에게 들은 진실과
부친인 아우브 에렌페스트에게 들은 진실,
그리고 로제마인에게 들은 진실이다.
이 모든 진실을 들은 넌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말해봐라."
(중략)
오즈발트가
'웃으며 접근하는 자가 꼭 자기 편이라고 할 수 없다'
라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
(중략)
미묘한 얼굴로 빌프리트가 납득했고,
너무 무겁지 않은 처벌이 내려지면서 방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샤를로테가 "다행이야......"하고 가슴팍을 눌렀고,
플로렌치아가 "정말로......"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살짝 닦으며 빌프리트를 껴안았다.
"네가 또 내 품에 남아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 엄마는 정말 기쁩니다.
로제마인, 고맙게 생각합니다."
- 책벌레의 하극상 제3부 영주의 양녀 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