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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라그라마톤에 대한 연구 by 이집트인 모세

달빛정화 2021. 7. 20. 23:55

 

 

이집트인 모세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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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이집트 최강의 마법사 모세 (신의 42글자 이름, 신의 72가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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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인들의 조상은 이집트인들이다.

2. 유대인들의 지도자이자 입법자인 모세는 이집트의 제사장이자 군주였다.

3. 자연은 모세에게 있어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신이었다.(환언하면 그는 이신론자였다)

4. 모세는 비용이나 도취의식, 제례 없이 지내는 숭배의식을 정초했다.

5. 순결, 할례 그리고 다른 율법들과 의식들은 그의 시대가 가고 난 후에 도입되었다.

6. 모세는 미노스, 리쿠르고스, 잘목시스, 그리고 다른 이들처럼 뛰어난 입법자들 군에 속한다. 이것은 그가 인격을 가진 신성을 창안했고, 그 신성을 율법과 그것의 권위의 근원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케로가 그의 책 "신의 본질에 관하여"의 1권에서 보여 주었듯이 신들은 정치적 허구였다. 하지만 모세는 자연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철학적, 물리적 개념을 감추지 않고 여호와, 즉 '필연적 존재'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이집트인 모세 p214

 

모세 신학에 관하여 라인홀트는 주로 스트라본의 설명을 근거로 모세가 문자 이전의 스피노자주의자라는 주장을 하는 톨런드를 따른다. 하지만 스트라본과 톨런드와는 달리 라인홀트는 모세 종교가 반종교가 아니라 비밀종교라는 것을 보여 준다. 모세가 이집트에 등을 돌리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종교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스트라본의 부정이란 요소는 은폐로 대체된다. 하지만 라인홀트와 워버턴이 말하는 신비 우상의 개념은 비밀스런 가르침이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다신교를 반박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반종교의 특징으로 남는다. 종교적 입문은 미혹이다. 더 작은 신비에서 더 큰 신비로 가는 문턱을 지나감으로써 입문자는 자신의 예전 믿음을 버리며, 자신들의 잘못된 허구적 본성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아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워버턴이 말한 것이기도 하다.

 

라인홀트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이런 담론에 기여한 바는 하나님의 사자음문자(테트라그라마톤)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이 구절은 볼테르의 "이집트 의식"에 대한 설명을 근거로 하고 있다. 볼테르가 이집트인들은 최고 존재자를 유대인들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이름, 다시 말해 I-ha-ho, 혹은 Iao라 불렀다고 주장하는 반면, 라인홀트는 소리가 아닌 의미를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그는 하야아란 말에서 유대교 어원을 받아들이고 그 이름을 "나는 나다"라고 아주 전통적으로 바꾸지만 사이스의 베일에 가려진 성상의 비문("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과 이 공식을 일치시킨다. 이 같은 동일시는 그의 예시가 보여주는 절정이다. 그는 그것을 극화시켜 신비적 행위와 계시로 보여 주면서 자신은 해설자가 된다.

 

형제들이여! 우리중 누가 고대 이집트의 비문들을 모르겠는가. 그 하나는 사이스 피라미드에 있는 "나는 존재하는, 존재했던, 존재할 모든 것이며 이제껏 어떤 인간도 내 베일을 거두지 못했다"라고 쓰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라고 이시스 조각상에 쓰인 것이다. 우리들중 누가 이집트 입문자들의 시대보다 이 말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으며, 그들이 본질적 존재자, 즉 여호와라는 이름읠 뜻을 표현하고 있음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플루타르코스는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관하여"의 9장에서 사이스의 베일에 가려진 성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여기서 이집트인들은 진실이 오직 수수께끼나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을 3가지 예를 들어 보여 주고자 한다. 그 첫째는 스핑크스를 신전의 문 앞에 두어서 이집트 신학이 수수께끼 같은 지혜를 지닌다는 사실을 넌지시 암시하는 관습이다. 둘째는 사이스의 베일에 가려진 성상이다. 셋째는 이집트 최고의 신, 아문의 이름이 "숨겨진 자"라는 뜻인 것이다. 사이스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사람들이 이시스라고 생각하는 아테네에 있는 좌상의 조각상에는 다음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나는 존재하는, 존재했던, 존재할 모든 것이며 이제껏 어떤 인간도 내 베일을 거두지 못했다.'"라고 쓴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는 피라미드나 다른 비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이 구절에서 라인홀트가 인용하고 있는 짧은 비문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를 볼테르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프로클로스는 똑같은 비문을 다르게 인용한다. 그는 그 비문을 신전의 지성소에 놓고, 여신의 옷을 페플로스라 부르는 대신 키톤이라 부르고, 플루타르코스가 "아무 인간도 못했다"라 한 것을 (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못했다"라고 바꿔 인용하였고,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내 자궁의 열매는 태양이다"라는 문장을 추가한다.

 

여기서 "아무도 여신의 옷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라는 진술은 여신이 남신의 개입 없이도 태양을 낳았다는 사실을 말한다. 프로클로스의 해석은 플루타르코스를 모방한 것일리 없다. 만약 그렇다면 공통되고 이집트적인 출처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네이트는 양성이고 태양을 낳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추가적인 문장은 정확히 사이스 신학에 해당한다. 이집트에서는 베일에 가려진 성상 같은 것이 있을리 없다.

 

왜냐하면 이집트 숭배의식의 우상들은 나무로 된 함에 감춰져 있고 오직 매일의 예식을 위해 함을 열었던 제사장만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각상을 어떤 필멸의 존재가 봐서는 안된다는 개념이 이집트 숭배의식적 맥락에서 생겨났을리 없다. 왜냐면 '신을 보는' 의식은 매일 의무적으로 제사장이 치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문객들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홀이나 궁정에 있었던 성상이 그런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신성문자적 비문을 지니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만약 사이스 문구의 마지막 부분이 이집트어로 재번역된다면 nn kjj wp hrj 처럼 읽혀질 수 있고 그것은 2가지 방법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올바른 번역은 "나를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케나톤의 찬가에 2번이나 등장하는 유일신교적 문구이고, 이는 "나는 존재했던, 존재하는, 존재하게 될" 모든 것이다.(이것은 이집트어로 "나는 어제이고 오늘이며 내일이다"로 해석될 수 있고 이것에 대해 몇가지 비슷한 인용이 있을 수 있다)와 같은 문구의 맥락에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고전 언어에 아주 능통하지 않은 제사장이나 통역사들이 ("~를 제외하고"를 의미하는) 단어 wp hr의 의미를 자구대로 "얼굴을 드러내다"로 이해하였고, 그래서 전체 구를 "내 얼굴을 드러내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로 바꾸어 버렸다. 그 제사장들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이고 다른 내용들도 비밀스런 뜻으로 파악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플루타르코스와 프로클로스의 사이스 비문 해석을 원래 이집트 문서 및 신학과 연결 짓기는 쉽다. 하지만 그 비문을 야훼의 이름과 자기표현인 aehyaeh asher aehyaeh, 즉 "나는 나 자신이고 존재해야 할 자다"와 동일시하기란 훨씬 어렵다. 라인홀트는 이 2가지 명제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와 "나는 나 자신이다" 사이의 분명한 차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첫번재 경우, 신성이란 가시적인 세계나 동일시의 모습을 한 '자연'을 가리킨다. 그에 비해 두번째 경우는 신이 자신 이외의 다른 그 ㅜ엇이 아님을 지시하고, 따라서 모든 우주적 동일시나 '우주신교'의 기초를 거부하고 있다. 히브리적 공식 aehyaeh asher aehyaeh는 모든 우주적 지시성에 대한 부정이거나 거부다. 그것은 내재와 초월 사이의 구별을 기획하거나 당시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자연'과 '문자'(성서)의 구별을 기획하고 있다. 라인홀트는 사이스적 공식을 취하여 히브리 이름을 정확히 해석한다. 그가 옳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그가 옳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두 명제를 이름의 계시로서가 아니라 보류로서, 즉 익명성의 계시로서 해석하는 점이다. 신성의 본질은 한 이름으로 나타내기엔 너무 포괄적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신의 익명성은 그에게 2가지 공식의 공통분모를 나타낸다. 이런 익명의 신에 대한 생각은 락탄티우스에게서 온 것인데, 이 사람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말을 다음과 같이 따왔다.

 

"그(트리스메기스투스)는 많은 책들을 - 신에 관한 지식을 포함하고 있는 정말로 많은 책들을 - 저술했는데, 그 안에서 그는 높은 보좌에 앉으신 유일 신의 권세를 증거하고 그 신을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인 주님, 아버지로 부른다. 어느 누구라도 그의 이름을 묻지 않도록 그 분은 '이름이 없다'고 하신다. 그 분은 오로지 유일자이므로 어떤 이름을 붙여 표시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말들이 그를 나타낸다. '신은 하나다. 그러나 유일자는 이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이름이 필요 없는 유일한 존재자다' 이렇게 신은 유일한 자이므로, 그리고 특별한 이름을 가질 필요가 없으므로 이름이 없다. 이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다수가 존재하므로 구별을 해야 할 때일 것이다. 가령 네가 각 개별자를 그의 특별한 표시와 호칭을 통해 구별해야 할 경우다. 그러나 신은 항상 유일자이시므로 하느님이란 이름이 옳은 명칭이다."

 

이 신이 바로 실러와 괴테가 그토록 중요시하였던 익명의 신인데 이 점은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다.

 

그러나 히브리 '이름'은 벌써 고대에 라인홀트가 해석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이해되었다. 사실상 라인홀트는 70인역에 근거하고 있는 고대의 전통을 따르는데, 이 형식은 히브리적인 형식인 "나는 나다"를 Ego eime ho on, 즉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로 재현하고 있다. 시빌의 신탁에서는 우주신이라는 의미에서의 신이 성서에서 자기소개를 한 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나는 유일한 존재다. 너의 정신에서 이를 인식하라. 나는 하늘로 내 옷을 지어 입고, 바다로 치장하였다. 땅은 내 발끝이요, 공기는 내 몸이며, 별들은 내 주위를 돌리라." 야훼의 정체성을 우주의 신 - 신 즉 자연 - 으로 규명하면서 라인홀트는 고대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라인홀트가 사자음문자 해석과 익명의 신에 대한 헤르메스적 관념을 동일시한데 대한 유사한 사례를 우리는 한 텍스트에서 발견하는데 이 텍스트는 스피노자의 "윤리학(1677)"이 출판되기 200년 전인, 마르실리오 피치오의 "헤르메스 전집" 라틴어 번역판(1471)이 나오기 전에 쓰인 것이다. 그것은 니콜라우스 쿠사누스가 쓴 "데독타이그노란티아(무지의 지)"인데, 여기서 쿠사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름도 가장 위댛나 존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그와 구별될 만큼 특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름들은 다른 이름으로부터 하나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인 곳에서는 적합한 이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이렇게 말한다. "신은 모든 사물들의 총합이며 그에 적합한 이름은 없다. 만약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이름이거나 혹은 모든 사물이 그의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왜냐하면 신은 그 단순함 속에 모든 사물의 총체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의 적합한 이름에 - 말로 표현하기 힘들고 사자음문자여서 - 일치하려면 그 이름은 '하나이자 전체' 혹은 '하나 속의 전체'로 해석되어야 그 뜻이 훨씬 낫다."

 

이 텍스트에서 우리는 이미 히브리의 사자음문자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익명의 신이 일찍부터 동일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신은 레싱이 사용한 표현대로 헨 카이 판 혹은 '하나이자 전부'이다.

 

워버턴이 이 문서를 알았다는 단서가 있다. 신의 익명성에 대한 신비적 개념을 말하자면 워버턴은 "즈가리야" 14장 9절 "그날부터 온 세상에서 하느님은 야훼뿐.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을 부르게 되리라"를 인용한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신은 하나다. 그러므로 신은 이름이 필요없다"로 말한 반면, 즈가리야는 "신은 하나이고 그의 이름은 하나일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워버턴의 논거가 다소 평범하다는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뛰어난 것이다. 이 비교는 놀랍다. 하지만 이미 니콜라우스 쿠사누스는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하지만 '하나 속의 전체'보다 좀더 적합한 것은 '하나'이다." 그래서 예언자가, "그날에 신은 '하나'가 될 것이고 그의 이름은 '하나'일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즈가리야" 인용이 적절한 맥락에 등장하고 워버턴이 이것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다.

 

'나 자신'과 '사상'을, 야훼와 이시스 혹은 자연을 동일시함으로써 라인홀트는 워버턴의 주장을 거꾸로 뒤집었다. 한편으로 워버턴은 모세율법을 신적인 법률로, 다른 한편으로 이교도 우상숭배를 인간적 법률로 명확히 구별하길 원했던 반면, 라인홀트는 이집트 법률과 모세율법 모두 인간적 법률이고 그 어느 것도 절대적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인홀트는 신이 항상 모든 곳에서 똑같은 신(본질적 존재)이고 필수적 존재, 혹은 비법전수와 숭배의 대상물인 (이스스에 해당하는) 자연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서 숭배된다는 점 또한 보여 준다.

 

워버턴은 신비주의자들의 신과 철학자들의 신 사이를 구별하느라 큰 노력을 경주했다. 특히 그는 근원적 이집트 신비주의자들이 유일신적이고 개인적이며 영적인 형태의 유일신을 숭배했던 반면,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러한 유일신의 개념을 자연의 물질적 개념으로 체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했다. 철학자이자 석공이었던 라인홀트는, 자신의 주교 관할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정통교리를 위반할 수 없었던 계몽된 영국 국교회 주교들에게나 필요한 이 다소 인위적이고 정교한 구별 없이도 자신의 논지를 펼 수 있었다. 라인홀트는 워버턴을 반박할 필요조차 느끼질 못했으며 오히려 그를 자신의 주장의 출처로 인용하면서 논증의 완벽함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라인홀트는 워버턴이 정립한 그 구별을 없애고 신비주의자들의 신과 모세의 신, 그리고 철학자들의 신을 동일시했다. 아래의 것들은 모두 같은 신의 개념을 지칭한다.

 

1. 신의 히브리식 이름.

2. 에우세비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의해 전해지는 입문식 찬가.

3. 라인홀트가 하나는 조각상에, 다른 하나는 피라미드에 재현한 사이스 조각상에 있는 비문. 그는 이 점에서 볼테르를 따랐고 다음으로는 실러가 그를 따랐다.

 

이 모든 출처들은 이름이 아니라 이름이 없는, 다시 말해 익명성에 의해 구별되는 신을 지칭한다.

 

베토벤이 자신이 좋아했던 시인 실러에게서 문장 2와 3을 베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베토벤은 실러의 '모세의 파송'을 알고 있었다. 1825년 대화록에 보면 마티아스 아르타리아의 이런 기록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실러가 쓴 모세의 파송을 읽어봤나요?") 베토벤은 자신의 책상 유리 밑에 이 문장들을 평생 지니고 있었다. 흔히 이 문장들은 고대 이집트의 불가해한 신학에서 유래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개화된 지성들의 깊은 신앙심을 표현하는데도 가장 적절하리라 여겨진다.